오늘을 기억하기로 했다

2021. 1. 3.

by 그런썸

내일이 졸업이다. 교실에 현수막을 걸고 풍선을 붙여서 한껏 꾸미고 아이들 줄 선물과 앨범을 책상 위에 놓고 퇴근하는 길, 집으로 오면서 문득 오늘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숱한 시작과 끝을 맞았지만 이번만은 시원섭섭하다는 말로도 뭔가 한참 모자라다. 줌 수업과 등교 수업을 오가며 아낌없이 소진한 느낌. 막상 졸업식을 앞두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그 어디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졸업이 다가온 것이 아직 믿어지지 않는 것인가.


오늘 마지막 수업이 줌으로 진행되었다. 아이들과 일 년 동안 지낸 소감을 공책에 써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표할 때 제일 먼저 나서 주는 고마운 D. 무리 중 제일 먼저 차가운 물속에 뛰어드는 용감한 펭귄 역할을 자처한다. 그렇게 영리하고 재치 있던 아이가 학기 말로 가면서 장난꾸러기로 급부상하여 내 속을 몰래 태웠웠다. 그런 D가 말하는 도중 울컥하면서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쩌나 우리. 줌 화면으로는 감출 수 없는 이 감정을. 여자 아이들 몇이 눈물을 몰래 훔쳤다.


올해는 유난히 아이들과 궁합이 좋았던 한 해였다. 진지하게 중심을 잡는 아이들과 유쾌하고 밝은 아이들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 분위기가 내내 편안하고 즐거웠다. 우리 반뿐만 아니라 동학년 선생님들도 이런 아이들은 다시는 없을 거라고 내내 입을 모으셨던 아이들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지난 3월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건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유례없이 전력을 쏟아부어야 가능했던 일 년이었기에.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어서 좋았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좋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느낌으로 안다. 담임이 어떤 교과에 진심인지 말하지 않지만 마음은 전해진다. 나는 글을 썼던 공이 큰 것 같다. 글로 체화된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어 아이들에게 전해졌고 덩달아 아이들을 보는 눈도 순해졌던 것 같다. 내년에도 6학년을 지원했는데 큰 변동이 없으면 맡게 될 것 같다. 쓰고 있는 4층 교실도 옮기지 않고 그대로 쓰니 아이들만 새롭게 바뀌는 셈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나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글쓰기를 지속해야 하는 나만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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