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네잎 Mar 16. 2022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미래로 도피한다. 그들은 시간의 진로에는 하나의 선이 있어, 이 선을 넘으면 현재의 고통이 중단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테레사는 자기 앞에 그러한 선을 보지 못했다. 오직 뒤돌아보는 것만이 그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다. 다시 일요일이 찾아왔다. 그들은 프라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1993, p202.          




굴절     




버스가 커브를 돈다

유연함은 그런 것

엉거주춤 일어서는 노파

또한 굽힘은 그런 것 

어제와 오늘의 날씨는 곳에 따라 산발적인 비

창문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리지 않고

빗방울이 내내 유리창에 부딪치고 깨어진다 더 먼 강가에서 안전하게 태어나게 될 거야

가슴지느러미 아래 초승달 모양의 예쁜 쇄골을 가진 물고기를 만나려면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할까요? 기사에게 묻는다면 미친놈,

버스는 저지대를 향해 달린다

비를 맞는 건 내가 아닌데 내가 흘러내린다

몸을 웅크린다

의자에 남겨진 우산처럼 

두리번거린다

왜 너는 매번 떠나는 걸까 그 많은 정류장, 한 번도 내리지 않으면서

월요일에 출발한 버스가 아직 일요일 오전을 지나고 있다면

비둘기가 허공의 등을 긁으며 날아오르던 방향에서 

멀미를 해야지

등을 두드려줄 손은 없고 토해 낼 슬픔은 많으니까

버스가 다시 한번 크게 커브를 돌 때

튕겨 나가는 상상을 하며

반드시 종점 전에 내려 울지 않고 굴절돼야지

너는 끝내 같이 내릴 필요 없지    

 

처음부터 다른 버스를 타고 있었으니까 

     -김네잎,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 천년의시작, 2020.

이전 16화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