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만난 여성 동료가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기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묘한 연대감을 느낀다. 평소에 자녀가 없는 줄 알았던 타 부서 동료가 워킹맘이란 걸 뒤늦게 알았을 땐 그간에 마치 아이가 없는 것처럼 업무를 해 온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다음에 만날 때 더 친근하게 바라보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아이의 연령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 즉시 나를 보던 건조한 눈빛이 따뜻하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를 기르는 여성 직장인. 이 공통분모만으로도 매일 어떤 상황 속에 있을지 서로의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니까. 눈빛으로 보내는 찌찌뽕이랄까.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고 남녀를 떠나 비슷한 직급의 직장동료는 알게 모르게 또는 노골적으로 경쟁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경쟁에서 내가 이기길 원하지만 워킹맘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니가 됐든 내가 됐든. 제삼자가 아닌 '우리'가 이겨야 한다는 연대의식이 있다. 전쟁 영화에서 주위에 포탄이 터지는 위급한 순간에 나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동료의 멱살을 잡고 너라도 살라고 먼저 보내는 장면들이 나온다. "너라도 먼저 가! 내가 꼭 살아서 뒤따라 갈게, 가! 가라고!" 회사에서 크고 작은 기회나 자리가 주어졌을 때에도 마치 전쟁 상황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승진이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배정되는 기회가 나에게 온다면 좋지!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면 내가 아닌 워킹맘 동료가 차지해서 보란 듯이 잘해주길 기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지만 회사 내에서, 사회에서 워킹맘이란 말로 보이지 않게 패키징 되어 있으니까. 우리 중 누구라도 기회를 잡아서 잘 해내야 우리 뒤에 오는 워킹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에 여성 임원이 나오면 평소 그분을 모르더라도 속으로 박수를 치게 된다.
큰 일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잔잔한 일상에서도 워킹맘은 연대한다. 사내 행사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수십 개에 달하는 전체 계열사가 모여서 하는 큰 규모의 행사에 주요 스태프가 되어 참석하게 되었는데 중요한 행사이다 보니 다양한 부서에서 관련된 인원이 많았다. 행사일이 다가올수록 야근도 잦고, 회의도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다급해지고 해내야 할 업무도 많았지만 내게 중요한 업무가 있다고 해서 어린이집이 내 야근 시간에 맞춰 연장근무를 해주는 것은 아니다. 행사가 아니라 행사 할애비가 와도, 아니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늦어도 저녁 7시까지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함께 일하는 타 부서 동료 중에 그런 내 사정을 아는 또래 워킹맘 ㅎ책임이 있었다. 평소 똑 부러지고 회사에서 불필요한 대화도 잘하지 않는 타입인데 이 프로젝트가 시작할 때 내게 따로 물어왔다. "책임님, 어린이집에 몇 시까지 가야 해요?" 퇴근시간에 도로가 막히는 것을 감안하면 늦어도 6시 30분에는 회의를 마치고 나가야 한다고 답을 했다.
행사 준비를 몇 달에 걸쳐했기 때문에 그 기간에 남편이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경우도 있고 융통성 있게, 별 탈없이 진행이 되어 왔는데 행사를 목전에 두고 문제가 생겼다. (보통 문제란 건 임박해서 생기기 마련이지.) 계획에 차질이 생겨 스태프 전원이 긴급히 업무 회의를 시작했는데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회의가 도통 마칠 기미가 없었다. 내가 빠질 수도 없는 회의이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보니 남편도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고... 6시가 가까워오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며칠 뒤에 행사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오늘 저녁의 곤경을 막아야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하루만 사정을 해볼까?, 지금 나 대신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머릿속에 나만의 대책회의를 하느라 정신없는 그때, ㅎ책임님이 회의실 탁자 건너편에서 나를 보며 투수가 포수에게 사인을 보내듯 손목시계를 똑똑 가리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ㅎ책임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다들 퇴근해야 하는데 이것 먼저 결론을 내죠." 하고 내가 관련된 문제를 끄집어 내어 주도적으로 회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6시가 조금 넘자 문제가 해결된 분은 먼저 퇴근하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회의 자리에서 "00책임님은 아이 때문에 먼저 가셔야 하죠?"라고 사적인 사정을 공개하며 주목당하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를 구해준 것이다. 회의를 진두지휘하며.
그 이후에도 우리는 함께 업무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회의가 시작하기 전에 "책임님 오늘 몇 시?"라고 따로 우리만의 종료 시간을 정해두고 회의에 들어갔다. 또 유사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어머님이 계시니까 급한 일 있으면 책임님 먼저 가요."라고 나를 배려해줬다. 회의 참석자 중 워킹맘은 우리 둘 뿐이었고 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배려였다. 지금은 친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일로 만난 사이였는데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구원투수가 되어준 일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도 후배 워킹맘이 곤경에 처하면 내가 받은 배려를 돌려주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워킹맘이 연대한다고 해서 업무시간에 드러내 놓고 육아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물론 메신저로 상사 욕은 좀 했지만.) 오히려 그런 사소한 태도가 평판에 영향을 끼칠까봐 조심하는 워킹맘을 더 많이 봤다. 그러나 때때로 서로가 곤경에 처할 때 구원투수가 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동지 먼저 가시오! 내가 뒤를 볼 테니까 뒤 돌아보지 말고 가시오.'의 마음과 앞서가는 워킹맘이 내미는 손. '내가 길을 터놨소. 아직 덤불이 많지만 내가 오솔길은 내놨소' 이런 마음들이 느껴진다. 마치 비밀결사대처럼 눈빛으로 통하는 워킹맘 연대. 출근길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워킹맘을 만나면 평소에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는 다른 부서 직원이라고 해도 무언의 응원을 보내게 된다. 우리의 무사한 출근에 (아메리카노) 건배! 퇴근까지도 무사하길!(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