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개미 Oct 24. 2021

14. 성격차이 보다 커진 경력차이

 남편과 나는 동갑이다. 군대에 가는 기간이 있으니 남녀가 동갑인 경우에 대체로 여자 쪽이 회사에 먼저 입사하게 되는데 우리도 비슷했다. 대리 승진은 내가 빨랐다. 직종의 차이로 급여는 시작부터 남편이 높았지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직급도, 회사에서 하는 고민의 수준도, 업무수행력도 어지간히 비슷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대리 말년 차에 내가 임출육 세트를(임신과 출산과 육아) 거치며 출산휴가, 육아휴직까지 총 15개월, 햇수로 3년을 쉬는 동안 남편의 커리어는 급성장했다. 아이들 키가 크듯이 직장인에게도 커리어가 급성장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대리에서 과장 진급 시기에 온다고 생각한다. 대리까지는 연차에 맞추어 대체로 평등하게 진급하지만 과장이 되는 시점에서는 성과를 인정받아야만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입사동기들과도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첫 번째 허들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과장부터 승진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임신과 출산을 거치느라 시험 응시 자체를 미뤄야 했다. 시험에 합격하고, 성과를 내도 다 승진되는 게 아닌데 시험을 제때 치르지도 못했으니 기회는 점점 멀어졌다. 


계획임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워킹맘이라면 누구도 출산을 원치 않는 12월에 출산을 했다. 승진과 출산 타이밍을 영리하게 맞추지 못한 부분도 있다. 나 스스로도 내 경력에 태클을 걸었는데, 회사는 회사대로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떠나는 직원은 회사에 복귀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집과 회사에 다리를 절반씩 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사람에게 중요도가 높거나 지속성 있는 업무를 맡길 리 없다. 회사를 계속 다닐 의지가 있는지 직접 증명해 보여야 하고, 증명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넘들은 자박자박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거의 문워크 수준의 경력관리다.   


남편은 달랐다. 여자는 애 낳으면 경력에 차질이 생기면 생겼지, 도움 되는 게 없는데 남편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이제 아이도 생겼는데 더 열심히 해야지" 소리를 들었고 더 많은 회식에, 출장에 불려 다녔다. 업무 기회도 늘어났다. 남편이 야망이 큰 타입은 아니지만 본인 경력에 도움이 될만한 업무를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나와 반대로 남편은 가장(家長) 프리미엄을 얻은 것 같았다. 


남편의 커리어가 급성장할 동안 나는 보이는 거라곤 4차선 도로와 야산 뷰뿐인 아파트에서 종일을 보냈다. 말 같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아이의 옹알이에 옳지, 옳지 리액션을 하며. 기껏해야 놀이터에 나가서 유모차를 밀거나 근처 쇼핑몰 문화센터에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아이가 우유나 유아식을 먹고 토한 내복을 빨고, 갈아입힌 후에 또 빨고. 내 옷은 갈아입을 새도 없이 시큼한 토사물 냄새를 달고 다녔다. 책이라고 잡는 건 종일 혀짜래기 소리로 읽는 뽀로로 책뿐이었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하는 즈음. 남편의 연차가 업무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남편의 빠른 승진이 우리 가정에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지만. 아이를 겨우 재운 후 행여 깰세라 껌껌한 거실에서 소리 나는 장난감을 조심조심 치울 때, 현관문 키패드 누르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다. 아이가 깨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키패드를 씩씩하게 누르는 무신경에만 화가 난 게 아니라 내가 밀려난 세계, 바깥 냄새가 묻어나는 외투부터 남편과 내가 사회적으로 너무나 다른 처지라는 것까지 모조리 약 올랐다. 


임신과 출산은 쌍방과실인데. 출산하면서 내 육신은 망가지고, 육아가 내 경력의 발목을 잡았다. 이 돌봄 노동은 평생 끝나지 않을 것이며, 육아는 아무리 업무강도가 높아도 어디 가서 경력 인정도 못 받고, 돈도 못 받고 명예도 없다. 이런 사실이 날 화나게 했고 때로는 미쳐 버리게 했다. 육아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 그렇지만 아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나는 사회에서 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꼈다.


그러다 찔끔찔끔 해외출장을 다니던 남편이 결국 해외 발령이 났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남편으로서는 좋은 기회였고, 해외 주재 수당까지 추가되어 월급이 인상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혜택이 있었다. 일부러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하는 판에 주재원의 아내로 따라가서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지만 주재원 발령만으로 어떤 사람은 남편에게 잘 된 일 아니냐며 축하를 해왔다. 


여보세요들, 그렇지만 나는요? 남편은 주재원 경험을 통해 자기 커리어를 쌓고, 애는 국제학교 가서 2개 국어를 익히고. 나는 뭐가 남지요? 내가 가장 젊었을 때 쌓았던 시간은 그냥 모두 없던 일로 하기로 했나요? 막상 복직해서 회사를 다니면 일과 사람에 넌더리가 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쌓아온 걸 모두 없던 일로 결정할 수 있는 건 나뿐이지 않나요.


이미 발령 난 것을 무를 수도 없고, 시간 맞춰 떠나야 하는 남편을 따라가서 남은 육아휴직 기간은 해외에서 시간을 보냈다. 해외에 나가서도 나는 이국의 마트에서 애 이유식 거리를 찾고, 남편은 아침마다 일터로 출근했다. 낯선 환경에서 주춤주춤 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있어보자, '나 주재원 발령 났어, 어떡할래?' 남편이 했던 이 질문이 잘못됐다. 이제 내가 다시 물어야지. '나 복직할 건데, 어떡할래?' 


남편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직업도 아니고, 회사가 나를 대단히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이 사회는 자꾸 나를 누군가의 뒤에 서라고 하지만. 나도 나의 일이 있다. 겨우 몇 년 사이에 동년배인 남편과 나의 커리어가 점점 벌어졌고 이 차이를 내가 과연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지만.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도 트랙을 벗어나지 않는 것, 그 자체로 내가 더 크게 승리한 것일 수 있지. (무슨 승리냐면 정신승리) 

이전 11화 11. 비밀 연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