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주한 풍경에 대해
풍경. 풍경이란 글자가 나에게 너무 낯설어서 검색을 할까 말까 2초간 고민하다가 검색해 보았다.
< 풍경 >
1.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
2. 어떤 정경이나 상황
3. 자연의 경치를 그린 그림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내가 왜 풍경이란 글자가 낯선지 깨달았다. 내 일상에서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찾아본다면 이른 아침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며, 내가 오늘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 나의 책 배경은 항상 푸른 나무 혹은 풀이다. 나도 이 배경의 식물이 무슨 풀인지, 무슨 나무인지 모른다. 풀이라기에는 너무 길고, 나무라고 하기에는 작고, 그렇다고 줄기가 없는 것도 아니니 그 중간으로 하자.
이렇게 풀도 나무도 아닌 그 어중간한 식물 앞에서 책 한 권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물론, 사진 찍는 재주가 전혀 없는 내가 찍은 사진은 당연히 읽은 책 기록 보관용이다. 내가 올해 1월부터 읽은 책들을 찍었는데, 나의 사진첩 안에는 이 책들의 사진이 수두룩하다. 기록을 안 하기 시작한 건 11월부터 인 것 같은데. 사진을 찍는 것이 나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가끔 사진을 굳이 찍어야 하나 싶기도 했고, 내가 찍는 이 공간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버스정류장 바로 뒤 공간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관종이 되기는 틀려먹은 인생이라 함부로 어디서든 카메라를 들이밀어내는 스킬은 없다. 가끔은 관종종이가 되고 싶으니까 풍경이라 핑계를 대고 찍어봐야겠다.
두 번째로 풍경의 의미인 어떤 정경이나 상황을 생각해 보자면, 내가 최근에 마주한 상황은 애증의 상사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다. 과거에는 나에게 화를 내고, 인격 모독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했지만 이 또한 내가 흘려버린 눈물에 이미 씻겨져 지나간 지 오래다. 얕아 보이지만 바다 같은 넓은 아량을 가진 나는 이 상사를 더 이상 증오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곧 떠나는 걸 아는 이 상사는 나를 붙잡고 과거의 자신의 반성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미안함의 표시를 삼시 세끼적으로 하는 게 조금 피곤할 뿐이다.
“내가 너 미워서 그런 거 아니야. 원래 사랑하면 말을 막 해.”
“그래도 내가 해줄 건 다해줬어. 너 위해서 내가 보호해 줬어.”
“네가 간다니 내가 너무 슬프다.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는 이제 이 사람에게 어느 말을 들어도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이제 기대가 없는 것일까. 아무튼, 다행인 건 아마도 이 사람에 대한 증오보다는 지금은 애처로운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부디,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10년, 20년 뒤에도 목청껏 소리 지르는 힘이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건 내가 마음속으로 한 말이다.
아마도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가장 힘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내가 정말 힘들었었나, 싶기도 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면 어떤 게 정말 행복인지도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기쁨과 슬픔은 경계가 모호한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내가 모호하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녕, 하고 나의 상사분과 이별하는 오늘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겠지만 아마도 우리는 사람인지라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비슷한 실수를 반복면서 살아갈 것이다. 다만, 교훈은 잊지 않은 채. 이런 상사는 되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