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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정서의 상관 관계

이동 1, 하노이에서 방콕, 그리고 아유타야로(Feat.연짱이의 생고생)

하노이를 떠나는 날이다. 너무 이른 시간의 픽업 요청이어서 시간 약속을 제대로 지키려나, 걱정하였는데,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 남은 이른 5시 40분, 기사분은 20분이나 미리 숙소 앞에 대기하고 계셨다. 하노이 입성 첫 날, 클룩 기사 때문에 생긴 모든 트라우마를 단 번에 날려준 점잖고 말수 없는 참 고마운 분이었다. 모든 여행지에서 그러하겠지만, 특히, 공항 이민국 직원과 개별 교통수단 운전자는 내 나라를 찾은 여행자가 처음으로 대하는 내 나라의 첫 얼굴이라는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개인 한 사람 때문에 여행 국가에 대한 첫 인상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곳이 될수도, 정겨운 여행에 대한 기대감 상승 요인이 될 수도 있으므로. 


떠나는 날, 하노이는 도착하던 날처럼 미세먼지에 갇혀 흐렸으며, 공기질은 답답하였다. 3년 만의 외유여서 들뜬 마음만 가득하였던 하노이 도착 첫 날 외, 내가 하노이 체류 내내 우울하였던 이유는 누군가의 말처럼 추운 기온 때문이 아니라, 짙은 미세먼지로 텁텁하게 느껴졌던 대기와 볕 보기 어려운 흐린 날씨 때문이었다. 여행자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나는 공기 중 쇳냄새 낭낭한 서늘한 기후를 훨씬 선호한다. 그래서 몇 년 전 다녀왔던 미얀마 삔우린이나 껄로의 서늘함을 여전히 그리워한다. 삔우린이나 껄로는 아침, 저녁의 서늘함 한 가지만으로도 내게 매우 매력적인 도시들이었다. 요점은 기온이 아니라 대기의 청명함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물론, 더운 나라들의 겨울 역시 미세먼지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인 터라. 


"엄마, 엄마, 창문 밖 좀 봐. 2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인데, 하노이하고 방콕 날씨 갭 무엇?" 


방콕 날씨가 화창해서 테가 안 날 뿐, 이곳도 미세먼지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첫 방문이어서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어쩌면 겨울 날의 하노이는 화창한 해가 귀한 곳이었는지도. 하지만 흐린 날 풍경이 좋아서 하노이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그 누군가의 말대로, 그저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짐을 찾은 후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공항버스가 우리를 내려준 곳, 북부버스터미널. 

우리의 행선지는 그 맞은 편, 북부 미니밴 터미널. 

두 터미널을 가르는 것은 교통량 막중한 4차선 도로와 높디 높은 육교. 

육교 높이만큼 무서운 23KG 캐리어와 19KG 캐리어. 

캐리어 두 개에 허리 부실한 엄마까지, 힘들어. 

찌는 한낮, 흥건한 땀, BUT, 기죽지 말아요, 연짱어. 


"베짱이도 모자라 이 번에는 물고기야? 연짱어는 어느 바다 무슨 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랩 하지마, 엄마. 어디 내놔도 챙피하다고." 


연짱이는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라임향 슈웹* 한 캔을 숨도 안 쉬고 꿀꺽 꿀꺽, 마신 뒤, 어디 내놔도 챙피하고 부실한 엄마를 먼저 육교 너머 미니밴 터미널로 보내고 나서, 결의에 찬 얼굴로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육교 계단을 오르내렸다. 지면 상이니 간단히 '짐을 옮겼다,' 라고 쓰지만, 볕이 가장 뜨거운 오후 1시 즈음, 평균 20KG의 캐리어 두 개를 젊은 언니 혼자서, 그것도 계단 촘촘한 육교로 들어 나르는 일은 매우 고달프고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허리 아픈 엄마가 미안해할까봐, 아이는 뒤돌아서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나는 연짱이 다섯 살 무렵부터 근 이십 년 가까이 아이와 함께 이런 저런 나라들을 여행하여왔다. 연짱이 열 살 여름, 나와 연짱이는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을 육로로 오갔었다. 공항 이미그레이션이 아닌 육로 국경 이미그레이션을 넘었던 터여서, 나는 필요 이상 긴장을 하였었다. 그토록 긴장하며 넘어온 포이펫-아란 국경에서 다시 방콕 공항 행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온 버스 탑승 위치였어도 나는 다시 한 번 정확한 탑승 위치를 확인해야만 했다. 아직은 어린 아이와 엉뚱한 버스정류장에서, 엉뚱한 버스를 타고, 엉뚱한 도시에서 내릴 수는 없었다. 


"어린이, 캐리어 위에 앉아서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 꼭 캐리어 위에 꼼짝하지 말고 앉아 있어야 해. 누가 어디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돼. 엄마한테 가자고 해도. 엄마는 모르는 누구더러 너 데려오라고 안 한다고. 그리고 그럴 리 없지만, 아가야, 혹시 누가 손이라도 잡아 끌면 목에 건 전자 호루라기 아래 꼭지를 빼면 돼. 멀리까지 울려퍼지는 엄청 큰 소리고, 엄마는 가까이에 있으니까 바로 뛰어올거야." 

"나는 아가가 아니야. 아무도 안 따라가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일반적인 어린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에게는 결코 권하지 않는 방법이다. 나와 연짱이는 이미 육로 국경을 오간 경험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아이는 육로 국경 분위기를 나름 잘 알고 있었으며, 바로 앞에 대사관이 있었고, 단체관광객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생각해낸 방법이었지만, 시간을 돌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아무리 사려 깊은 연짱이라고 해도 나는 결코 아이를 혼자 두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미친듯이 뛰어서 공항 행 버스정류장 위치를 확인한 뒤, 미친듯이 어린 연짱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동안 소요된 시간은 불과 15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연짱이가 앉아 있던 그늘은 뙷양지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는 볕 쨍한 곳에서 땀을 흘리며 동상처럼 앉아 있었고, 그런 연짱이가 신기하였는지 버스 티켓이나 택시를 이어주는 삐끼들이 아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찌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연짱이는 삐끼들의 장난에도 미동 조차 없었지만, 엄마인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긴장하고 있었다. 삐끼들을 향해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어디서 이런 시러배 잡*들이 내 새끼를 건드리는 거야, 안 꺼져, 이 시키들아. 일평생 입 밖에 내놔본 적도 없는 욕이 마치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찰지게 터져나왔다. 


"아가, 놀랐어? 엄마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괜찮아, 엄마. 더워. 나 시원한 거 마시고 싶어."  


근처 편의점에서 사온 세븐*을 아이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마셨다. 아무리 말수 없고 침착한 연짱이여도, 겨우 열 살짜리 아이일 뿐인데, 시간이 짧든 길든 엄마 없이 남겨진 낯선 곳에서 왜 불안하지 않고 왜 무섭지 않았겠나. 외국인 없는 다른 나라 깡시골을 선호하는 별나고 이상한 엄마 때문에, 열 살 아이 때도, 스물이 훌쩍 넘은 청년이 되어서도 연짱이는 고생하는구나. 엄마가 미안하다, 연짱이. 


북부 미니밴 터미널. 각 행선지를 알려주려는 이들의 어마어마한 외침을 뚫고 무사히 아유타야 행 미니밴에 탑승하였다. 


"엄마, 하늘 보여? 날씨 봐."


일반 좌석이 없어 연짱이는 운전 기사 아저씨의 옆 자리인 조수석 당첨. 스님이 탑승하였다면, 외국인 청년은 어림도 없었을 상석이다. 


"와, 엄마, 구름 봐. 진짜 더운 나라 구름이야." 

"어린이, 아유타야는 더운 태국에서도 손꼽는 더운 데야. 각오해야 될 걸." 

"남부도 아닌데 그렇게 더워?" 

"응, 그렇대. 관광객 많은 동네여도 분위기가 좋아서 오래 있고 싶었지만, 숨 막히는 더위 때문에 서둘러 탈출하게 되는 도시가 아유타야라고 들었어."  

"너무 더운 건 싫은데." 


엄마도. 엄마도 너무 더운 건 무서워. 


도착한 아유타야는 방콕만큼 더웠지만 평화로웠다. 말수 없는 아이는 웃음이 조금 늘었고, 행동도 조금 커졌다. 동네 야시장에서 산 수박주스를 마시면서, 연짱이는 하하, 웃었다. 


"더운 나라는 역시 수박주스지. 대기 중에 시골 냄새가 느껴져. 뭔가 느긋한 냄새야." 


마시고 반 쯤 남은 수박주스. 연짱이의 신나는 마음이 느껴진다. 볕의 정도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큰 모양이다.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1시간 반 거리이고, 그만큼 관광객 밀고 쓰는 곳이어서, 물가 비싸고 소란스러울까봐 지금껏 여행지 목록에서 제외되었던 곳이었는데. 여행도 타이밍이구나, 일깨워준 아유타야였다. 오늘 같은 고생은 두 번 다시 없기를 바라지만, 글쎄. 엄마가 미리 미안하다, 연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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