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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XY, 참바다 님?

체류 1. 마음에 들어, 프래 

"P부인, 쩌 깐 마이 카(SEE YOU LATER)." 


하지만 들고 나기 힘든데다 숙소 장벽까지 높은 씨 쌋차날라이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채소, 과일을 살 수 있는 시장조차 없는 이곳에.  


해 뜬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아침의 씨 쌋. 


"어린이, 많이 춥지? 미안해. 엄마가 여행 쉬는 몇 년 동안 여행 감각이 다 죽었나 보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매일 맞는 태국 북부 이른 아침이면서 어째 이런 상황을 생각 못했을까." 

"춥지 않아, 엄마. 반팔 차림도 아니고 팔토시에 스카프까지 둘렀는 걸. 그보다 교통 편 귀한 씨 쌋에서 우따라딧 버스터미널까지 무사히 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러게. 여기 도착하던 날 어린이가 뚝뚝 아저씨 번호 따라고 말 안 해줬으면 어쩔 뻔 했어. 엄마는 그 때 므앙 까오(씨 쌋차날라이 역사공원 입구) 지나면서부터 머리 속이 완전 엉키기 시작해서, 아저씨 번호 딸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 생전 보도 듣도 못한 핫 샤오 시장 앞에서 내리게 될 줄 더더구나 상상도 못했던 터라." 

"엄마, 생각해 봐. 핫 샤오에서 내렸기 때문에 오토바이 아저씨 통해서 뚝뚝 아저씨 만날 수 있었잖아. 엄마 처음 계획대로 씨 쌋 역사공원 입구에서 내렸으면, 수코타이 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것부터 미셨이었을 거고, 수코타이 버스터미널에 오후에 도착했을텐데, 우리가 원하는 도시로 가는 버스가 오후 시간대에 몇 대나 있었겠어. 아예 없거나 밤 늦게 도착하는 것만 있었을지도 몰라. 씨 쌋 역사공원 입구 지나쳐서 핫 샤오 시장에서 내린 게 당시에는 재난 같았지만, 그 덕분에 오늘 우따라딧 버스터미널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도 확보할 수 있었잖아." 

"그렇구나 정말." 

"나 고 3때도 생각해 봐, 엄마. 수시 때 각 학교들 예비 1순위, 예비 2순위 기어코 안 빠져서 엄마 많이 울었지만, 지금 학교 와서 4년 내내 장학금 받고 다니고 있잖아. 나는 그게 하나님 큰 그림이었다고 생각해. 당시에는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절망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거나, 좀 더 살아보니 그것이 최선이고 가장 현명한 길이거나 했던 거 얼마나 많았어. 엄마, 나는 그래서 예비 1순위, 2순위 빠지지 않았을 때 절망하지 않았어. 내 삶을 향한 큰 그림이 있으실 줄 알았으니까." 


여행기 모든 대화들이 그러하듯, 이 말들 역시 과장이나 윤색 하나 없이 연짱이 입에서 나온 말들 그대로이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 속에서 절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좋은 아이가 내 딸이어서 감사하였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나 우연이란 게 어디 있을까. 내 친구 도나 말대로, 길이 조절과 탈부착이 자유로워서 설겆이를 행복한 일감으로 만들어주는 싱크대 수도 호스조차도 당연히 누릴 것이 아니라 감사할 일인 것을. 지금처럼 안과 밖이 모두 힘든 때 연짱이와 여행을 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런 저런 도움을 받은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닌 내 삶 구비구비에 안배된 은혜고 선물인 거다. 남은 여행 동안, 그리고 남은 생 동안 삶 속 여기저기에서 만나게 될 선물들을 기대해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 장미빛으로 산들거렸다. 

 

도착한 프래는 단정하고 관광객 끓지 않는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 프래에서는 체류 내내 연짱이와 함께 골목 골목을 사부작 사부작 걸었던 기억 뿐이다. 


쿰 짜오 루앙. 프래 마지막 통치자가 살았던 관저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쿰 짜오 루앙 입구. 


"엄마, 여기도 물항아리가 있어." 

"그러네, 어린이. 엄청 반갑다."


쿰 짜오 루앙 박물관 물항아리들. 물항아리에 담긴 것은 물 뿐이 아니다. 오늘 아침 새로 넣어둔 물 뿐 아니라 우리 동네를 찾아온 이방인이 최소한 목 마를 일만큼은 없게 하겠다는 이 동네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다. 팬데믹 시절이어서 좀 바래졌지만, 물항아리의 존재는 늘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웡부리 하우스를 향해 걷다가. 나도 연짱이도 정말 좋아하는 '릴라와디.' 영어로는 '프랜지패니(FRANGIPANI)' 혹은 '플루메리아(PLUMERIA RUBRA)'라는 이름이고, 태국에서는 '릴라와디,' 라오스에서는 '덕참파'라고 불리며, 특히 국화로 대접받는 꽃이다. 많은 릴라와디 중 사진처럼 꽃잎이 조금 작고 단단하며, 가운데가 노랗거나 붉은 빛을 띠는 릴라와디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릴라와디는 냄새도 좋고 꽃도 참 예뻐." 


릴라와디 같은 중년 너머 노년을 맞기를.  


웡부리 하우스. 핑크 하우스로도 알려져 있다. 프래 마지막 통치자의 부인이 살았던 곳. 그와 이혼을 하고도 이 집에서 권력을 누리며 살았다고. 


"엥, 눈에 보이는 게 다인데 입장료가 30밧이야? 현지인들은 무료일 것 아니야. 쳇, 안 갈래." 


그리고 결국 프래를 떠날 때까지 웡부리 하우스는 관람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주말 시장 설 때 보니, 그 입장료에 안뜰 구경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던데,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는 웡부리 하우스. 엄마도 참, 한 번 더 가면 되지, 심심하고 조용해서 살기도 좋은 프랜데, 연짱이가. 


웡부리 하우스 마당의 꽃나무에서 떨어진 분홍빛 꽃.


"여기는 무슨 꽃도 핑크야?" 

"엄마, 핑크 하우스인데 꽃도 핑크로 맞춰 심었겠지. 예쁘기는 하네." 


프래는 골목 골목이 참 아기자기하고 깨끗하여 걷기 좋았다. 하지만 오전인데도 정수리에 내리 쬐는 볕이 뜨거워 연짱이가 걷기 힘들다고 짜증을 내서, 걷는 중간 중간 시원한 음료로 입막음을 해드려야 했다. 황토흙 길 대신 아스팔트 깔린 매끈한 도시는 어디나 덥다. 


"너 진짜 꼬꼬마 때 싱가폴 식물원에 간 적이 있었어. 거기서 네가 두 걸음 걷고 짜증내고, 세 걸음 걷고 주저 앉고 그래가지고 엄마가 계속 업고 다녔거든. 덥고 습한 기후라 엄마도 힘이 들어서, 등에서 내려 걷게 하려고 네 손에 아이스크림 들려주면, 몇 걸음 만에 다 먹고 주저 앉아 업어달라고 하고 그랬었어. 기억 안 나지?" 

"엄마는, 참, 그걸 기억하면 내가 천재지. 기억 안 나지만, 나 애기 때 완전 양아치였네." 

"뭘, 지금 네 손에 들린 걸 봐라, 어린이. 아이스크림이 아이스티로 바뀐 것 뿐이잖소." 

"악.ㅋㅋ 그러네." 


연짱이 양아치 설. 



누구 집이었을까. 집주인이 참 아기자기한 사람인가 봐, 그랬다. 


"엥? 은행이야?" 

"그럴 리가 있겠니, 어린이. 바닥에 떨어진 걸 잘 봐라." 


판타지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 것처럼 생긴 참 예쁜 열매였다. 어디였더라. 씨 쌋이었던가, 수코타이였던가. 아니, 아유타야였나? 유적 들어가는 입구에서 크고 매끈하고 예쁜 저 열매를 한 봉지에 20밧인가에 팔던데, 그걸 현지인 관광객 오빠가 사는 것을 보았다. 먹는 건가 봐, 연짱이도 나도 매우 신기해했었다. 


"먹어볼까?" 

"엄마는 인제 그런 실험 정신을 갖지 마. 나무에 기생하는 벌레들 죽으라고 약을 쳤는지도 모르잖아. 먹고 아프면 회복도 안 돼, 엄마 나이는." 


탕! 엄마 늙은 것 확인시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ㅋㅋ 엄마, 이 물고기 누구 닮지 않았어?" 

"와, 정말 마음에 쏙 든다. 저항할 수 없는 친근감이 막 파도쳐 들어와." 


그렇다. 프래에는 유해진 님을 닮은 물고기 조각이 누군가의 집 처마에 살고 있다. 매우 엄청 마음에 드는 프래. 


"패턴하고 색깔하고 다 마음에 들어. 사길 잘 했어, 엄마." 


프래 시장 입구에서 구입한 코끼리 바지. 원래 코끼리 바지에 시큰둥한 연짱이인데, 이 바지는 색깔과 패턴이 마음에 든다고. 원단이며 바느질이며 마감처리며 튼튼한 것과 거리 멀지만, 바람 솔솔 통해서 시원하기는 하다. 


관광객을 끌 만한 특이점이 없어서 조용하고, 골목 골목 단정한 프래가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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