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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OUT OF MY WAY!

이동 3. 이상하고 낯선 도금의 도시, 매싸이 

자전거 때문에 내내 혹사 당한 허리는 프래에서 처음 받은 압 강한 마사지 이후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최소 6시간 이상 불편하고 쿵덕거리는 버스 좌석에 앉아 이동해야 하는데 괜찮으려나. 


매싸이 행 수코타이윈투어 버스 내부. 좌석은 해묵은 때와 먼지로 찌들어 있었고, 그나마도 부서진 좌석과 등받이가 흔했다. 


"엄마, 우리 계속 이 회사 버스 타고 다녀야 돼?" 

"될 수 있으면 엄마도 이 회사 버스 타기 싫은데, 지금 같은 팬데믹 끝물에 소도시에서 소도시를 잇는 큰 버스의 온라인 예매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버스터미널에서 현장 예매하면 거의 99퍼센트 이 회사 버스야." 

"내가 앉은 자리는 앉는 부분이 아예 뜯어져 분리돼 있어서 작은 턱이라도 넘으면 좌석이 통째로 흔들려. 나 혼자 디스코 팡팡 타는 것 같다고. 튕겨지지 않으려고 몸에 힘을 줘서 좌석을 누르면서 앉아서 갔어. 장시간 이동 내내 그러고 있었더니 너무 힘들어." 


불쌍한 우리 연짱이. 


매짠 즈음, 혹은 치앙라이 근교 즈음이었던 것 같다. 세상 어디를 가든 부지런한 논, 밭 주인의 수확물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파야오, 매짠을 지나 버스는 치앙라이 버스터미널 2에서 10분 가량 정차하였다. 치앙라이 근교 반두와 추이퐁을 지나는 때는 오후 5시가 넘은 때여서, 그 새 짧은 겨울 해는 이미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결국 매싸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즈음이었고, 짐 내리고 처음 온 도시가 낯설어 두리번거릴 때는 이미 깜깜해진 후였다. 우리에게 접근한 빨간 썽태우 영감은 너무 쉽게 1인 100밧을 불렀다. 흥정 따위 씨도 안 먹히는 것을 보면서, 한낮에 지금처럼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렀다면 보통은 짐 끌고 시내까지 걸었겠지만, 마음도 체력도 약한 나 같은 외국인은 말 할 것도 없고, 아무리 고집 센 서양 사람들이더라도 초행에 큰 트럭들 씽씽, 달리는 어두운 도로 위를 걸어 시내까지 가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아니까 저러는 것이겠지, 싶었다. 당황해하는 내게 영감은 어차피 나 뿐이다, 그런다. 영감의 얼굴 위로 미얀마 시트웨 보트 주인 놈 얼굴이 겹쳐 보였다. 외국인은 왜 저런 놈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거지, 서글퍼졌다. 


"뭐? 미쳤나, 저 늙은이? 안 타. 궁지에 몰린 타인의 처지를 이용해서 쉽게 제 배 불리는 저런 인간들에게는 단 돈 1밧도 못 줘. 여기서 들개들하고 밤 새 사투를 벌이면서 노숙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 늙은이 썽태우는 안 탈거야." 


연짱이 극대노. 연짱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질서한 것하고, 소음하고, 이런 식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 등치는 일이다. 아이는 썽태우 영감이 실었던 우리 짐을 썽태우에서 다시 꺼내기 시작하였고, 그런 연짱이에 당황한 영감은 150밧 운운하였지만, 연짱이는 단호하게 안 타요, 하고는 마지막 짐을 꺼냈다. 결국 매싸이 1순위 숙소 사장님이 직접 우리를 픽업하러 와서 상황 종료. 15분 남짓 기다렸을까. 어두워 사위 분별도 되지 않는 밤의 버스터미널로 그의 하얀 승용차가 들어서는 것을 보았을 때, 정말 울 뻔 하였다. 


"저 썽태우 기사가 말도 안 되는 요금을 불렀어요?" 

"네에.ㅠㅠ" 

"진짜 큰 문제예요. 안 그래도 할 것 없는 매싸이여서 관광객 유치도 어려운데, 오후 6시면 모든 시스템이 다 정지되는 매싸이 버스터미널 자체부터 큰 문제여서, 오후 6시 넘어 도착하는 외국인들은 바가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썽태우를 타야 한다고요. 당신들은 그래도 6시에 도착해서 덜하지만, 치앙마이에서 오면 저녁 8시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단 말이예요." 


사장님, 오후 6시나 오후 8시나 바가지 썽태우만 남아있는 건 똑같아요. 


차로 가니 시내까지 거의 3분 컷 거리였다. 밤의 매싸이는 을씨년스럽지도, 그렇다고 불야성을 이룰 정도로 매우 번화하지도 않은 정도의 소도시였다. 지금은 어려워졌지만, 비자런을 하러 한나절 미얀마 나들이를 하려는 사람들이나 이런 저런 조악한 물건들을 팔고 사러 국경을 넘어 다니는 상인들 덕분에 유지되는 도시가 갖출 법한 정도의 번화함. 


날이 밝은 후 이곳 저곳을 걸으며 느낀 매싸이의 첫 인상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GILDED' 였다. 'GOLDEN' 이 아닌 'THE CHEAP GILDED CITY.' 덜 칠해져 중간 중간 원래 쇠붙이가 엿보이는, 도금칠한 금속 같은 느낌의 도시였다. 조악한 품질의 물건들, 실제 도금한 반지, 팔찌, 미얀마 산으로 보이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 뻔한 옥 장신구, 드문드문 흥정하는 서양 관광객들과 상인들의 하이톤이 넘쳐나는 거리는 얼핏 흥미로웠다. 그 흥미라는 게 따놓은지 이틀 된 하루나처럼 금세 흐물렁 시들해졌지만. 


매싸이 국경 출입국 사무소. 이곳을 통과하여 다리를 건너면 미얀마 이미그레이션이 나오고, 그곳을 통과하면 따찔렉, 즉 미얀마 땅이다. 2023년 1월 막혀 있었는데, 2023년 4월 현재, 다시 열렸다고. 


해발고도는 아닌 것 같고, 어느 도시까지 몇 KM 그런 의미인 걸까.  


"엄마, 사진 빨리 찍고 가자. 정수리가 너무 뜨거워." 

"우리는 3월, 4월, 5월 혹서기에는 절대 오면 안 되겠다, 어린이." 


아침에는 도톰한 바람막이가 필요할 정도로 쌀쌀하였는데, 볕 나고 얼마나 되었다고 이럴 일이니. 


더워도 매싸이 뷰는 보고 가야 할 듯 하여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왓 프라탓 도이 와오'에 가보기로 하였다. 옛날 이 지역을 다스린 왕의 이름이 '와오(전갈)'이었다고. 


"계단을 오르기에는 엄마 허리가 성치 않으니 옆 경사로로 걷자, 어린이." 


연짱이가 나를 수발해주지 않았다면, 이 번 여행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올라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매싸이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뷰 포인트는 공사로 다 막혀 있었다. 


꿋꿋한 연짱이가 최선을 다하여 찍은 매싸이 시내 풍경. 아픈 엄마 부축하랴, 중간 중간 사진 찍으랴, 매우 분주하였던 착한 연짱이. 


왓 도이 와오와 거의 한 몸인 도이 와오 시장을 구경하고, 매싸이 명물인 군밤을 현지인들보다 20밧 정도 바가지 쓰고 산 것까지도 그냥 참을 만 하였는데, 겉 포장 비닐 봉투를 그대로 놔뒀더니 군밤이 눅눅해져서 껍질이 제대로 까지지 않았다. 여행 중 화가 많아진 내 손에 전부 버려질 뻔한 군밤을 연짱이가 구해주었다. 


"왜 그렇게 화가 많아, 엄마는. 분조장이야?" 

"그런가 봐."

"아니, 또 뭘 그렇게 풀 죽고 그래, 엄마. 씨알이 잘은 군밤인데, 눅눅해져서 잘 안 까지면 화 나지. 그렇다고 버리는 건 에바지만." 


누가 엄마고, 누가 어린이냐. 


매싸이는 상주하는 중국계 상인들이 많고, 말레이시아 중국인 관광객들의 유입이 생각보다 많아서, 중국어가 매우 흔한 곳이었다. 사성이 분명한 하이톤의 중국어는 데시벨 역시 높아서, 특히 식당처럼 한정된 공간에서는 시너지 효과가 굉장하였다. 나처럼 사람이 내는 생활 소음이 싫어서 깡시골을 선호하는 아줌니에게 매싸이는 여러 모로 체류가 괴로운 곳이었다. GILDED CITY, 매싸이. 러이나 깜팽펫과는 좀 다른 의미로, 안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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