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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이라고 하신 복 받으실 분

이동 4. 누구세요, 성곽의 도시 치앙쌘으로 

매싸이 출발, 치앙쌘 행 썽태우는 오전 11시에 출발한다. 하지만 오전 11시 썽태우라고 정확히 11시에 맞춰서 가면 안 된다. 태국 시골 썽태우는 사람보다 짐이 우선이어서, 짐이 먼저 실리고 남은 공간에 사람이 구겨 탄다. 배낭 여행 경력 17년에 빛나는 연짱이는 오전 10시 20분, 이미 썽태우에 올라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좌석 확보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에 미루어 아이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도착 전, 치앙쌘이나 중간 다른 기착지에 가려는 부지런한 아줌마들은 매싸이에서 장 본 각자의 보따리들을 썽태우 좌석 아래에 부려놓고, 썽태우 좌석과 발받침에 앉아 늦은 아침 식사 중이었는데, 우리를 보더니 들어가서 앉으라고 얼른 자리를 양보해준다. 다리 접고 앉을게요, 다리 긴 연짱이의 한 마디. 


"엄마, 이 아줌마들 엄청 부지런한 아줌마들이야." 

"엉? 왜?" 

"생각해 봐. 매싸이는 이 근방에서 제일 큰 도시 아니야? 주 도라며. 그런데도 근처 치앙쌘으로 가는 썽태우는 하루 한 대 뿐이고, 치앙쌘은 여기보다 훨씬 작은 동네인데, 거기서 다시 매싸이로 돌아오는 썽태우가 하루 한 대 이상 있을 리 없잖아. 유추해 보자면, 이 아줌마들은 매싸이와 치앙쌘 사이 어딘가에 사는 분들이고, 큰 도시인 매싸이에서 생필품이나 먹을거리 장 본 다음, 다시 사는 동네로 돌아가려는 거라고. 태국 썽태우는 시작점과 종착지만 고정이고, 승객에 따라 내리고 서는 곳은 그 때 그 때 달라지잖아."


명탐정 연짱이. 


오전 11시 즈음 썽태우는 짐과 사람으로 발디딜 틈도 없는 만석이었다. 썽태우 내부에 실을 수 없을 만큼 부피가 큰 농산물은 썽태우 지붕 위에 올려졌다. 시골 썽태우는 교통 수단이면서 배달 수송편이기도 하다. 여러 거래 형태로 해당 농산물 상점에서 판매된 물품은 썽태우에 실려 주문자에게 배달되는데, 판매자가 썽태우에 물품을 실어주면, 구입자는 썽태우가 물품을 내려주기로 한 약속 지점에 나와 있다가 받아 가면 된다. 약속 지점은 구입자의 작업장 앞 길일 때도 있고, 집 앞일 때도 있으며, 길 모퉁이 한 켠일 때도 있다. 운전은 썽태우 기사 아저씨 혼자 하셨지만, 부피 큰 짐들을 썽태우 지붕 위에 올려 싣는 일은 그 날의 승객들 중 젊은 오빠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물론 판매자가 실어주는 경우가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은데, 수고비를 받는 것도 아닌 고된 일을 도와주는 젊은 오빠들은 당연하다는 듯 묵묵하였다. 나는 소가 끄는 달구지를 기억할 만큼 옛날 사람이어서, 작은 커뮤니티의 가장 큰 장점인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고, 이상하고 별 난 엄마 탓에 꼬마 적부터 다른 나라 깡시골을 돌아다녔던 21세기 청년 연짱이에게도 매우 특별한 풍경이 아니기는 하지만. 


"엄마는 사람이고 동물이고 식물이고 굳센 생명력 자체는 귀엽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 그런데 생명을 가진 것들 중 선하거나 악해지는 건 주어진 이성을 가지고 자유 의지를 나쁘게 쓰는 인류 뿐이지. 마치 지구는 인류만의 것이라는 듯, 다른 종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인류가 원래 중립적인 우주를 제 입장에서 제 편의대로 편협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제 이익을 거스르는 무언가를 향해 악하다거나 선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나 잇점이 돌아오지도 않는 것을 알면서 타인을 위하거나 타 생명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기특해. 속이 전혀 보이지 않는 탁하고 더러운 물에서 피어난 연꽃 한 송이 보는 것 같아서."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려면 부단한 노력으로 본성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만히 있어도 존재 자체로 꽃보다 아름다운 인간은 없다. 

 

오늘 썽태우 승객은 나와 연짱이, 친구 사이로 보이는 가녀린 청년 둘, 아마도 일행인 듯한 아줌마 4, 그리고 우리와는 닿거나 말 섞을 일 없을 조수석 스님 한 분. 그 중 썽태우 기사 아저씨를 도와 짐을 싣는 것을 도왔던 가녀린 두 청년은 출발한 지 15분도 되지 않은 어딘가에서 내렸고, 아줌마 4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수다 삼매경이었다. 오늘 장 본 얘기 중이신가 봐, 아줌마들이 흥미로운 연짱이가. 


매싸이 경계 즈음이었을 것이다. 군인 오빠들이 썽태우를 세우더니, 썽태우 내부를 매의 눈으로 탐색하였다. 그들의 레이더에 걸린 것은 다름 아닌 썽태우 유일 외쿡 사람인 나와 연짱이. 태국어로 나와 연짱이에게 말을 건네는데, 가만히 듣던 연짱이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 것 같다고. 그 와중에 아줌마 4는 '이쁜(JAPAN)'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짱이는 '콘 까올리(KOREAN)'라고 대꾸하였지만, 군인 오빠는 어쩐지 코웃음. 한국 사람이라는데 왜 코웃음이예요? 


"콘 까올리? 풋, 여권." 

"읭? 저 오빠 왜 저래? 대표로 엄마 여권 꺼내서 보여줄게." 


하지만 군인 오빠는 정말 초록색 여권을 꺼내는 나를 보더니 매우 당황. 아니, 그러니까 왜요? 군인 오빠는 됐으니까 가도 된다고 썽태우 기사 아저씨께 손짓. 


"엄마, 저 군인 오빠 우리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나 봐. 여권이나 출입증 없이 매싸이에서 나가려는 미얀마 사람이나 소수 민족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뭐? 와, 진짜.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다." 


그렇다. 나와 연짱이는, 특히 나는 태국 북부에서 늘 미얀마 매반(가정부)으로 오해 받았었다. 피부색 때문인지, 하고 다니는 행색이 전혀 한국 사람, 혹은 외국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지, 상인들은 흥정을 하려는 내게 매 번 품질 조악한 싸구려 상품을 던져 주었고, 고가의 최상품은 보여주지도 않았었다. 오랜만이어서 잊고 있었네. 한편, 군인 오빠의 한국 사람 인증으로 썽태우 안은 난리가 났다. 아줌마 4는 눈에서 레이저를 뿜을 기세로 나와 연짱이를 탐색하고 있었다. 


"ㅋㅋ 엄마, 아줌마들 지금 난리 났어. 일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한국 사람이냐고. 지금 한창 엄마 나이 유추 중이셔. 오동포동 포니테일 언니가 37이라고 했고, 후리후리한 아줌마는 41, 중국 사극 배우 닮은 아줌마는 44, 윤여정 할머니 약간 젊었을 때 느낌 나는 아줌마가 47." 

"뭐어? 37이라고 한 분이 누구라고?" 


쌈리암텅캄(골든 트라이앵글) 조금 못 미친 동네에서 아줌마 4는 하차하였다. 콘 까올리(KOREAN)가 신기하였던 아줌마들은 내리면서 우리에게 눈인사를 하였고, 나와 연짱이는 모터 달린 손으로 인사를. 아줌마들은 우리가 탄 썽태우가 작아질 때까지 내린 자리에서 서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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