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체류 3. 물리적 거리보다 먼 심정적 거리, 치앙쌘

아줌마 4가 내린 후 썽태우 안에는 나와 연짱이, 그리고 남은 짐 뿐이었는데, 쌈리암텅캄(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웬 오빠가 훌쩍, 썽태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팔에 온통 문신을 하고서 해맑게 웃는 얼굴을 한 오빠였는데, 이 때는 이 오빠에게 우리가 그토록이나 열광하게 될 줄 몰랐던 터라 일단 경계.


오늘의 매싸이 출발 치앙쌘 행 썽태우 기사 아저씨는 체구가 작고 눈이 맑은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짜증 한 번 내는 일 없이 무거운 짐들을 싣고 내렸다. 여행 전 열심히 공부해 두었던 경찰서 삼거리가 보여서, 치앙쌘에 도착하였구나, 알았다. 기사 아저씨께 여기서 내리겠다고 하였더니, 아저씨와 팔 문신 오빠는 어디서 묵느냐고, 묵는 숙소에서 내려주겠다고. 기사 아저씨가 치앙쌘 곳곳에서 주문 받은 짐을 내려주는 동안, 팔 문신 오빠는 아저씨를 도와주는 틈틈이 우리에게 치앙라이 행 버스는 몇 시부터 있고, 막차는 몇 시고, 매싸이 행 썽태우는 아침 8시에 출발한다고 일러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썽태우 아저씨와 팔 문신 오빠는 마지막으로 우리 무거운 캐리어와 우리를 숙소에 내려주고 가셨다. 저 아저씨들 천사야?, 연짱이가. 그만큼 고마운 분들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동네 탐색 겸 메콩강 구경을 나섰다. 아직은 볕이 따가운 오후 3시 즈음.


파리 떼와 한낮 더위에 지쳐 있던 연짱이의 만땅 짜증을 풀어준 고양이가 있는 풍경. 숙소 골목에서 대치 중이었다.


"쟤네 뭐야? 싸우기 직전 대치 중인 거야, 아니면 처음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수조 아니고 꽃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탐색 중인 거야?"

"예쁜 꽃나무 아래에 있으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하자, 엄마."


뜻하지 않은 로미오, 줄리엣과의 만남.


오후 볕이 잦아든 자리에 내려 앉은 석양. 메콩강 석양 풍경은 사람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위로를 주었다.


아무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치앙쌘에 감사한 저녁이 깃들었다.


이동이 곤하여 일찍 잠든 연짱이 너머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얀 조각달에 마음이 뒤숭숭하여 숙소 마당으로 나왔다. 여행은 이제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하나에서 열까지 참 감사한 하루였다며 졸리운 밤을 마감하였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낯선 곳을 떠도는 마음도, 돌아가 살아내야 할 현실도 참 편치 않은 것이 애련하였다. 조각달 하나 떠 있는 시골 하늘은 유독 어두웠다. 어둠에 스며들어 울고 싶었던 그 때, 숙소 마당으로 올드 팝이 나붓이 흘렀다. 피터 폴 앤 메리가 부른 'FIVE HUNDRED MILES.' 떠나온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여비도 형편도 되지 않는 노동자의 서글픈 정서가 낯선 곳, 익숙한 밤을 타고 숙소 마당을 돌아, 혼자 서 있는 나를 가만가만 두드렸다. 그가 느낀 물리적 오백 마일의 심정적 거리는 오백만 마일보다 멀었을 것이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무슨 이유로 지금껏 물 위 부레옥잠처럼 낯선 곳을 떠돌고 헤매다녀야 했을까. 어느 곳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였을까. 희끗희끗 올라온 색바랜 귀밑머리를 염색하고, 거뭇한 기미 위에 비타민을 바를 기운을 낼 수도, 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진한 절망이 나를 덮어 눌렀다. 고되고 고단하였다.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다. 절망에 먹혀 돌아간 내 별나라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다. 자기연민으로 흘리는 눈물은 잘못되었다. 고난이 시야를 가리거나 절망이 가장 큰 중심이 되면 삶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실패자로 사는 삶에 이미 충분히 지치지 않았나. 자기연민은 오늘까지만. 이제, 울지 않는다.

이전 06화 '37'이라고 하신 복 받으실 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