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절망과 장시간 버스 이동으로 인한 피로, 허리 통증 때문에 게으른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아래층 공용 키친 공간에서 올라오는 어마어마한 소음 때문에 강제 기상. 역시 놀 때만 기운 뻗치는 것은 만국공통인가 보다. 내년 기운까지 미리 당겨 쓰는 것 같은 내국인 관광객 무리의 거의 비명에 가까운 새된 소음이 아침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부터 숙소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음의 발생지는 현지 단체 관광객 할머니들이었고, 그 중 두 명이 '비명'의 근원이었다. 다른 얌전한 할머니들이 화가 난 내게 뭘 먹으려고 그러니, 커피는 저기 있고, 과일도 있으니 챙겨 가라, 하는데, 거기다 대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어젯밤의 나와 정반대로 들뜬 마음 한껏 장착하고 갓 일상을 떠나온 이들의 행복에 겨운 비명이었구나, 화는 나지만 이해는 되었다.
치앙라이 행 로컬 버스 첫 차 시간과 쌈리암텅캄(골든 트라이앵글) 행 썽태우 시간을 알아보러 시장 주변에서 일하는 아무나 잡고 물어보니, 누군가를 가리키는데, 어머, 어제의 그 해맑은 팔 문신 오빠였다. 오빠는 웬 트럭에서 무언가를 내리고 있었다. 어제는 우리에게 치앙라이 행 버스 시간대를 알려주고, 썽태우 기사 아저씨를 도와 여기 저기 짐 내려주더니, 오늘은 시장 통 트럭에서 하역 작업을 하고 있고.
"엄마, 저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지? 치앙라이 행 로컬 버스 시간은 아저씨가 말해준 그대로였고, 어제는 썽태우 기사 아저씨를 도와주더니, 오늘은 시장에서 일하고 있잖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야?"
"어린이, 저 오빠 '홍반장'인가 봐. 동네 일손 필요한 사람마다 다 도와주는 사람. 동네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 동네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는 사람."
나와 연짱이가 트럭 가까이 다가가니, 팔 문신 홍반장 오빠는 높은 트럭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저기, 오빠, 우리 내일 쌈리암텅캄(골든 트라이앵글) 가려고 하는데, 썽태우 몇 시에 어디서 출발해요?"
"저 정자 앞에서 파란 썽태우를 타면 돼요. 아침 8시 치앙쌘 출발이고, 중간에 쌈리암텅캄 들렀다가 매싸이 가는 썽태우니까, 그거 타고 가다가 쌈리암텅캄에서 내리면 되고, 반대로 오전 11시 매싸이 출발 파란 썽태우가 쌈리암텅캄에 11시 30분 쯤 들렀다가 치앙쌘으로 돌아오니까, 쌈리암텅캄에서는 그거 타고 돌아오면 되고요."
"와, 오빠, 정말 고마워요."
홍반장 오빠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트럭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오빠가 고마워서 한참 동안 열광적인 물개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치앙쌘 최고 스타, 팔 문신 홍반장 오빠.
교통편을 확보하여 마음이 편해졌으니 치앙쌘 동네 탐방을 해봐야지.
왓 쩨디 루앙. 태국어로 루앙은 'ROYAL' 혹은 'LARGE'이다.
왓 쩨디 루앙은 오각형 기단부 위에 세워진 종 모양 불탑이며, 부처 흉골 조각을 담아두기 위해 14세기 맹라이 왕조 파야 쌘 푸 왕이 건축하였고, 이후 16세기에 파야 깨우가 다시 불탑을 재건축하였다고. 2014년 치앙라이 6.3 강도 지진으로 왓 쩨디 루앙 불탑이 부서졌을 때, 채널 7이 모금액의 일부를 왓 쩨디 루앙 재건축 비용으로 지원하였다.
왓 쩨디 루앙 불탑이 치앙라이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었다. 그걸 눈으로 직접 보니 마음이 아팠다. 몇 백 년을 버틴 유적이 지진 한 번으로 이토록 쉽게 무너지다니. 2014년 모금액으로 부서진 불탑 윗 부분을 재건축한 모양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유적이 안타까웠다.
"와, 꽃 모양이 너무 특이한데? 매 같은 맹금류 발톱처럼 생겼어. 뭔가 꽃이름이 '맹금류 발톱(TALON)'일 것 같아."
"엄마, 나는 이 꽃이 코뿔새인가 큰부리새인가 그 새 부리 모양으로 보여."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지? 내 딸이지만 신기한 아이.
치앙쌘 국립박물관.
15세기에서 16세기 란나 양식 코끼리 장식. 뭘 보고 코끼리라는 걸 알겠냐고, 연짱이가.
이런 설명 없으면 저게 과연 코끼리인지, 말인지 어떻게 알겠냐고요.
윗 부분 장식이 연꽃인 일종의 경계석, 혹은 남근석.
"어린이, 이 불상 말이야. 굉장히 낯익지 않아?"
"엄마.ㅋㅋ 김희원 아저씨 닮았어. 와, 김희원 아저씨 사진 놓고 만든 줄 알았어."
"최소 15, 16세기 유물일텐데, 그럼 그 시대에 이렇게 생긴 왕족이나 왕이 있었다는 거잖아. 보통 불상 얼굴은 그 왕조의 왕의 얼굴을 반영하여 만들거나, 만든 장인에 따라 가장 보편적인 그 민족의 얼굴대로 만들거나 하니까."
"김희원 아저씨 15세기 이전 왕의 상이었구나."
김희원 님,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그런 멘트 한 번 해주세요.
"어린이, 엄마가 아이돌 잘 모르잖아. 이 불상은 그 양요섭인가 양요셉인가, 그 아이돌 오빠하고 똑같이 생겼다."
"양요섭이야. 구 비스트, 현 하이라이트 양요섭. 하이라이트 팬들한테 집단 테러 당하는 거 아니야?"
"왜? 그 시절 왕족이거나 왕의 얼굴을 반영하여 만드는 게 불상 얼굴이라니까.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양요섭 오빠는 왕이 될 상인 거라고."
굳이 점토에 써서 구워 보존할 정도의 글이라면,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 내용이 알고 싶다. 문맹의 슬픔.
"엄마, 어, 이거 그 시대 미술가나 장인이 그린 걸까? 아니겠지? 신분이 높은 집안 어린이가 그린 것 아닐까? 이 정도면 내가 그린 게 나을 것 같은데?"
"무슨 왕자님이 후손에게 축복의 의미로 물을 부어주는 모습을 새긴 것 같은데, 왕자님이 직접 새긴 건 아닐 거고. 그냥 왕자님이 등장하는 거라 구워서 보존한 건가?"
보존 상태가 아니라 그림 퀄리티 때문에 나와 연짱이의 의심을 받는 유물들.
"양심적으로 이런 걸 박물관에 둘 일이야? 내가 훨씬 더 잘 그려. 심지어 개인지 도마뱀인지 알 수도 없어, 이건."
요즘 아이들 말대로 '현웃' 빵, 터진 유물이었다. 유물들이 너무 장난 같아서 이렇게 말하였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장인의 손길에서 탄생한 것만이 유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의 생활상을 나타내주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유물들도 많으니까. 조선 막사발처럼.
날개를 편 독수리를 형상화한 것 같은 전형적인 란나 양식의 지붕 장식.
'함욘(HAM YON)'이라고 부르는 목조 린텔(상인방). 그러니까 린텔(상인방)을 태국 북부에서는 함욘이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상인방은 창이나 출입구 등 건물 입구의 각 기둥 위쪽에 수평으로 걸쳐 두며, 창문틀 상하벽 사이에서 윗 부분의 무게를 구조적으로 지탱해주는 뼈대 역할을 한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는 보통 석재를 이용하여 상인방을 만들었다고. 태국 북부 함욘은 사적 내실 공간 출입문 위에 두어 바깥 세상의 습격에서 가족을 보호하였다고 하며, 태국 동북부 지역 가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즉, 건축학적으로 건물 무게를 지탱하는 의미라기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는 것.
"패턴이 엄청 예쁘다, 엄마."
"그 당시 유행하였던 패턴일까, 아니면 가문의 문장이었을까, 아니면 가족을 보호해주는 주술적 의미가 깃든 패턴일까?"
"음, 내 생각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문양일 것 같아. 실제로 건물 무게를 분산하여 지탱하는 의도로 만들어졌다면 목조가 아니라 석재여야 하지 않을까. 가족의 가장 사적인 공간 위에 걸어둔 것이라면 더 그럴 것 같은데."
"그렇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목조라면 우리나라 서까래처럼 무게를 지탱할 만 한 굵기이거나 길이였겠지. 엄마도 주술적 의미라는 어린이 의견에 동감."
치앙쌘 왓 파싹 원형도.
전설에 따르면, 왓 파싹의 불탑은 샌 부 왕이 파탈리푸트라(고대 인도 도시. 마가다국의 수도)에서 온 부처의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1340년 건축하였다고. 불탑 건축 후 300 그루의 티크목이 사원 벽을 빙 둘러 심겨졌고, 왕은 프라 붓다 코사차라야에게 사원 장(일종의 교구장 혹은 주지승) 지위를 주었다. 오늘날의 왓 파싹은 버려져 방치된 상태(라기에는 입장료까지 야무지게 받던데요). 가장 중요한 메인 불탑은 수코타이와 바간 미술의 영향을 받은 하리푼차이 양식을 반영한 곳이어서 다른 불탑과 구분되며, 이러한 양식은 란나 양식 불탑의 원형이 되었다고.
하리푼차이는 태국 북동부에 거주하던 몽족 왕국(몬) 이름이다. 태국 북부 람푼에 근거를 두고 왕국을 세웠고, 람푼의 옛 이름을 차용하여 하리푼차이 왕국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하리푼차이 양식이란 건 란나 양식의 전신 정도로 보면 되겠구나. 문외한인 내 눈에도 탑 윗 부분은 확실히 수코타이 양식이나 아유타야 양식하고 달라 보인다.
"엄마, 숙소로 돌아가자. 볕이 너무 뜨겁고, 나 너무 피곤해."
잦은 이동과 엄마 수발에 지친 연짱이는 낮잠에 들었고, 나는 공용 키친 공간에 앉아 밀린 일기를 쓰고, 도나와 베니아에게 보낼 엽서도 쓰면서 오랜만에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숙소 사장님은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어서, 모두 쉬는 한낮에도 숙소 뒷 마당과 키친 공간을 오가며 혼자 분주하였다. 어제밤 'FIVE HUNDRED MILES'는 숙소 유일 외국 사람인 나를 위한 사장님의 배려였음을 나는 안다. 따뜻한 배려를 통곡으로 갚았으니 많이 놀랐을텐데, 사장님은 바쁜 와중에도 웃는 낯만 내게 보여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한잠 푹 자고 일어난 연짱이와 메콩강 위로 지는 노을을 구경하러 나섰다. 연말연시 치앙쌘은 메콩강 때문인지, 혹은 서늘한 기후 때문인지 내국인 관광객이 꽤 선호하는 여행지인 것이 느껴졌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늘어선 강변 노점 식당들은 놀러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태국 사람들 생각보다 많이 먹어, 연짱이가. 그들의 음식 상 위로 낮게 내려 앉은 저녁과 흥겨운 정서가 공존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오늘도 메콩강 석양은 아름답다. 퇴근하는 가장의 배일까, 아니면 선셋 투어를 하는 관광객을 태운 배일까. 누가 됐든 석양 내려 앉는 강 위에 있다니 부러웠다.
치앙쌘 석양에는 애잔한 무언가가 있다. 나의 하루를 묻는 석양을 이토록 오래 마주하였으니, 숙소 사장님의 올드 팝이 흘러나와도 더는 울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우는 날은 어제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