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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가 제일 잘못했네

체류 6. '염개미 맘대로' 골든 트라이앵글 투어 2, 치앙쌘 

아편 박물관은 입구부터 강렬하였다. 


아편 박물관 입구. 붉게 빛나는 양귀비꽃. 


아편 로드? 실크 로드도 아니고. 너무나도 유명한 아편의 이동 모습을 보여주는 지도. 아편 재배와 유통을 나타낸 지도이다. 19세기와 20세기 유럽은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인 태국,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를 양귀비 재배지로 삼고, 재배된 양귀비를 정제하여 만든 아편을 중국에 판매하였다. 


"엄마, 땅에 반쯤 묻힌 거 사람 형상이지? 내가 잘 못 본 거 아니지?"  

"네, 염개미 투어 시작합니다. 루아 전설은 담배와 양귀비의 유래를 말해줘요. 옛날 옛적 한 여인이 늙어 자연사하였어요. 여인은 죽기 전, 친척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사람들 왕래가 많은 사거리에 묻어 달라고 하였는데, 그녀가 묻힌 가슴 즈음에서 담배 두 줄기가, 생식기 즈음에서 양귀비 한 줄기가 자라났대요. 사람들은 담배와 양귀비 둘 다 맛보았지만, 양귀비보다 담배를 더 좋아하였어요. 담배가 그녀의 가슴 즈음에서 자라나온 것이어서, 사람들은 모유 수유 이후 담배를 피우게 된것이라고 믿었다고 해요. 가실 때 쪼끔만 생각해 주세요."  

"아, 그만 해, 엄마.ㅋㅋ 그냥 있는 설명 읽어주는 게 무슨 투어야. 그리고 죽으면 냇가에 묻어 달라고 한 청개구리네 엄마도 아니고, 왜 사람 왕래가 많은 사거리에 묻어달래?"

"늙어서 자연사한 여인은 태어나 늙어 죽을 때까지 평생 혼자이지 않았을까? 그러니 죽어서는 쓸쓸하지 않게 사람 왕래 많은 곳에 묻어달라고 했겠지." 

"뭔데 슬퍼." 


이 때는 그냥 슬퍼만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루아 어쩌면 인성 삐뚤어진 관종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때, 꽃 진짜 예쁘지? 내가 이렇게 예쁜 사람이었는데, 너네가 그걸 몰라보고 나를 고독사 시켜? 흥, 꽃 꼬투리 안에 내가 너네에게 줄 최고의 선물을 숨겨 놨어. 못돼먹은 너네는 금세 찾아내겠지. 내가 선물한 만찬을 즐겨 봐. 함께 지옥으로 가 보자고 어디, 이런 거 아니었을까. 오싹. 


크고 긴 줄기가 담배. 그 옆 빨간 꽃이 양귀비. 실제로 보면 반 쯤 묻혀 있는 사람 형상 때문에 꽤 그로테스크하다. 


아편을 태우는 사람 모형. 아편은 청나라를 망국으로 몰고 간 깊고 거대한 덫이었다. 청 말기, 지위고하, 빈부를 막론하고 국민 대다수가 아편을 태웠다고. 이곳 박물관 영상에서 묘사된 실제 모습은 모형보다 훨씬 참혹하였다. 모형 옆에는 양귀비 꼬투리에서 아편 얻는 방법과 얼만큼의 꼬투리에서 얼만큼의 아편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 참 성실하게도 쓰여 있었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양귀비 재배와 수확 시기를 태국 내 고산 민족 별로 그려놓은 것이다. 양귀비는 흰색이든, 빨간색이든 정말 예쁜 꽃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 예쁘디 예쁜 꽃이 향 정신성 의약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일종의 포터블 아편 저울 세트. 아편이 당시 청나라 국민들에게 얼마나 대중적이었는지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엄마, 이거 . . . 그러니까 무슨 상점 같은 데서 무게 재고 거래하고 그러는 것도 번거로우니까, 아무 길거리에서나 쉽게 사고 팔 수 있게 이런 거 휴대하고 다녔다는 거지? 아편이 얼마나 뼛속까지 만연해 있었다는 거야. 미쳤나 봐." 

"에효, 그러게. 부조 조각되어 있는 목조 뚜껑 안에 거래된 아편을 넣었던 것 같지?" 


다양한 포터블 아편 저울 세트. 


"참 . . . 저렇게 열고 닫게 되어 있었네? 다른 의미로 문화적 충격이다, 엄마." 

"그러게. 문화적 충격이란 말을 이딴 식으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게 아편 추라고? 말 안 하고 보여주면, 무슨 왕릉에서 발굴된 유물로 보여, 엄마." 

"그러네. 당시 가장 대중적인 아편 추 모양이 새 모양이었대, 어린이." 

"저렇게 크고 무거운 추로 무게를 잴 정도면, 정제 아편은 얼마나 어마어마했다는 거야? 양귀비꽃 꼬투리에서 채취한 걸로 만드는 건데, 그러면 도대체 양귀비꽃을 얼마나 재배했던 거고?" 


그래서 마약왕 쿤사 같은 인간이 존재했던 것이겠지.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아편 추들. 


"엄마, 이리와 봐. 이거 봐. 이것도 아편 추래. 설명 읽어보니까, 스님들 탁발 그릇 모양을 따서 만든 거래. 이런 걸로 아편 추를 만들어서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보호받겠다는 미신을 믿을 게 아니라, 그냥 아편을 하지 말라고, 이 사람들아." 


마음이 몹시 답답하였던 연짱이의 독백이 음울한 전시관 안을 나지막이 울렸다. 탁발 그릇 모양 뿐 아니라 기하학 모양 추까지 등장하였다고. 라오스에서 기하학 모양 추는 소유자를 위험에서 보호해준다고 믿어졌단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이 많이들 품고 다녔다는데, 귀중한 내 생명을 유래도 불온한 아편 추 하나에 걸다니,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정부가 돌보지 않는 힘 없고 배경 없는 서민의 삶은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풀 포기 같았구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은 언제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으니, 실낱 같은 희망이라고 붙잡고 싶어 그러하였다지만, 아편을 끊을 수 없는 그 시대 가난한 서민들의 일상 삶이란 도대체 얼마나 비참했던 걸까,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끊을 수 없으니 '중독'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이겠으나, 그토록이나 현실이 몽롱한 꿈이었으면, 바랄 정도의 삶이라니. 수렁이나 올무 같았을까.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발목을, 숨통을 조여와서, 결국 저항의 의지까지 단념시켜 약에 굴종하게 만드는.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 현실 세계관보다 비참한 현실이다. 


아편 태울 때 편안하게 베고 누워 많이 태우라고 만들어진 아편 베개. 


"아주 제대로 판 깔고 누워서 본격적으로 마약하라고 부추기는 거지? 나쁜 놈들. 이런 거 만드는데 그렇게 열정을 쏟을 일이야? 이런 게 대표적인 재능 낭비야." 


연짱이가 사진 찍다가 짜증 난다고 보이콧하고 덜 찍어서 그렇지, 종류며 크기며 모양이며 정말 다양하였다. 


아편 램프. 


아편 파이프. 


뭐 좋은 거라고 아편 태우는 순서를 상세히도 설명해두었는데, 이것도 모자라 그 옆 동영상에서는 아편을 만들어서 태우는 긴 과정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눅진하고 시꺼먼 진 같은 것을 손가락 끝으로 떼어 굴려서 녹이고, 또 굴리고, 또 녹이고.


"설명도 그렇고, 영상에서도 그렇고, 아편은 태우는 방법이 쉬운 것도 아니고, 만드는 것도 손이 엄청 많이 가는데, 얼마나 중독적이면 저 귀찮은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아편을 태우는 걸까. 중독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싶지도 않아, 엄마."


엄마도. 


아편 램프, 파이프가 포함된 아편 제조 세트. 


"엄마, 더러 은색으로 보이는 건 은세공품이야? 귀한 은을 왜 이런 데 쓴 거야. 그냥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 만드는 데나 쓰라고."


"엄마, 이 설명, 양귀비꽃 추출물로 만들어진 가장 잘 알려진 파생물이 몰핀이나 헤로인이고, 그 밖에 진통제, 기침약, 심지어 수면제로도 쓰였다는 거지? 장근육 긴장완화제, 라는 건 위 경련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 뭐 이런 데에도 쓰였다는 건가? 그런데 양 조절 잘못하면 큰 일 나는 거 아니야? 괜히 향 정신성 의약품이라고 분류되는 게 아닐 거잖아." 

"엄마가 어렸을 때, 약이 변변치 않았던 시골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배앓이를 하거나 체하면, 흔히 양귀비 줄기 삶은 물을 마시게 하고 그랬어. 시골에서는 관상 용이든, 가정 상비 용이든, 집집마다 양귀비 한, 두 송이 씩은 있었거든. 엄마 꼬마 때라야 겨우 1970년대 초반이고, 엄마는 그토록이나 시골에서 살지 않아서 본 적 없는데, 연짱이의 할머니 정여사님 어렸을 때는 완전 옛날이어서 그런 일들이 꽤 흔했었나 봐. 너무 진하게 우려낸 물을 마셔서 동네마다 바보들이 꼭 하나 씩은 있었다고 해." 

"그게 뭐야. 너무 슬프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의 할머니 고여사 님은 양약 신봉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나 병약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바보를 면할 수 있었다. 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마약을 재배, 유통하였다는 쿤사의 개소리. 이런 자들이 거리낌없이 횡행하였던 것도 모자라,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말 할 수 없는 권세를 누리고, 또 그것이 대를 이어 세습되는 것을 보면서, 당시 인도차이나 국가들의 왕조와 정부는 국민이 피폐해지고 죽어나가는 것에 정말이지 일말의 관심도 없었구나,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이 글 두 번째 문단이 꽤 거슬린다. '세상은 그를 마약왕이라고 비난하였지만, 샨 반군을 지원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였다고 쿤사는 주장하였다.' 굳이 이런 첨언을 해주다니, 쿤사가 마약왕이라고 비난 받은 것을 치앙라이 주는 두둔하고 싶은 건가? 실제, 쿤사는 태국 군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었다. 또한 당시 미국 정부는 그의 체포에 현상금을 내걸었고, 미얀마 군부에게 쿤사를 비호하지 말고 미국으로 보낼 것을 요구하였으나, 쿤사와 여러 가지 이해 관계가 얽혀 있던 미얀마 군부는 미국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였다. 미국 역시 급증한 미국 내 마약 유통이 쿤사와 관련이 없었다거나 대내외적 이유가 없었다면, 쿤사라는 존재의 여부 조차 관심 없었을 것이다. 이 책 위에 인쇄된 두 번째 문단이 내 눈에 거슬린 이유는 쿤사가 샨 족의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진정한 민족적 독립운동가였다면, 투쟁 과정은 물론이고, 그의 말년 조차 투명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쿤사는 그저 시절과 상황을 이용할 정도로 머리가 좋아서 막대한 돈과 권력을 얻었고, 그것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영역을 굳건히 하였던, 흔하디 흔한 빌런에 불과하였다고 본다. 국민 없는 국가가 어디 있을까. 2023년 현재 라오스와 미얀마 정부를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자들의 행태는 어쩌면 그렇게 변화, 발전이 없는지 모르겠다. 


"엄마, 생각해 보니까, 양귀비 유래가 '루아 전설'부터잖아. 와, 루아가 잘못했네. 인류에게 가장 큰 잘못을 한 전설이야. 역대 최악의 전설이다, 정말." 

"누구 하나 찾아주는 이 없이 외롭게 자연사한 루아가 무슨 잘못이 있어, 어린이. 그 곱디 고운 양귀비꽃에서 향 정신성 의약품을 추출해낸 최초의 그 놈을 잡아서 처치해야지." 

"아, 그러네!" 


어쩌면 루아는 악의 깊은 관종이었을지도 몰라, 연짱이에게 말하였다면, 순수성 순도 높고 두터운 아이는 딱 한 마디 하였을 것이다. 엄마는 왜 그렇게 삐뚤어졌어, 라고. 


아편 박물관 2층은 치앙쌘 지역사 및 아편 재배로 생계를 유지하였던 태국 내 고산 민족 섹션이다. 염개미는 인류학에 관심이 꽤 많은 터여서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일반적으로는 지루하기만 할 내용인 터라 내 일기장에만 보관해두기로 한다. 


기념품점에서 예쁜 엽서와 마그넷을 구입한 뒤, 오전 11시 20분 즈음 폴리스 박스 앞에서 일진처럼 쭈그려 앉아서, 연짱이는 맞은 편 가판에서 사 온 코코넛 스무디를 마셨다. 


"어린이, 11시 25분에 온다던 썽태우가 11시 40분이 되어도 안 오네. 혹시 우리가 도착하기 전 11시 10분 쯤 슝, 지나간 건 아니겠지?" 

"그럴 리 절대 없어, 엄마. 내 생각에 지금 연초 연휴 중이고, 여기는 관광객이 몰리는 구간이어서 차량 정체 때문에 늦는 걸 거야.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면서 걱정하지 말고, 차분히 앉아서 기다려 봐." 


미어캣 모드 다시 한 번 종료. 연짱이 말대로 썽태우는 오전 11시 45분 쯤 도착하였는데, 차장 언니는 아침의 흰색 돕바는 벗어버리고, 가벼운 바람막이 차림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언니, 정말 고마웠어요. 


치앙쌘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문득. 


"어, 장례 행렬인가 보다." 


스님을 선두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엄마, 어, 장례 행렬이면, 흰 천막 씌운 카트 위에 있는 건 관이야? 근데, 관이라기에는 너무 단촐한데?" 

"그러네. 상여라기에는 너무 단촐하네. 음 . . . 태국은 불교 국가니까, 혹시 유골함 같은 건가? 아니면 일종의 상징적인 다비식 의례 같은 건가? 엄마가 불교 의식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어린이." 


무겁고 슬픈 장례 행렬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장례식이었거나, 상징적인 다비식이 아닌 입적하신 어느 스님의 다비식 의례였다면 고인께서 편히 잠드시기를. 

이전 09화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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