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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 만한 세상인지, 묻다

체류 7. FAREWELL TO CHIANG SAEN. 

"어제, 오늘 정말 감사하였고,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늘 건강하세요." 


그들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연짱이와 모터 달린 손으로 인사를 하였다. 


삶을 지탱해주는 큰 지분은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풍진 세상에 태어나 저절로 맺어진 혈연 외, 살면서 내가 선택하였거나 선택받은 사랑하는 인연들, 그리고 여행. 내 사람들의 보살핌과 일 년에 한 번, 한 달 여씩 해왔던 외유 없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그 본격적인 시작을 마련해준, 내 삶 중 결정적인 지점에 그곳이 있고, 그들이 있었다. 내게 중요한 이들을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다는 건 그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도의 어휘로는 도저히 갈음할 수 없는 특별한 선물 같은 이벤트였음을 고백한다. 그들이 건강하고, 매 순간 평안하기를 마음 깊이. 


왓 파싹은 입장료를 받는 유적이었다. 현지인들은 무료던데, 외국 사람인 죄로 한 사람 당 50밧을 내야 했다. 아유타야 왓 마하탓처럼 넓고 관리 잘 된 곳이 50밧인데, 터만 남은 곳에 아유타야와 같은 입장료를 부과하다니 너무 한 것 아니니? 하지만 치앙쌘 국립박물관에서 왓 파싹 원형도를 보고, 떠나기 전 꼭 보고 가야지, 하였으니. 


국립박물관에서 본 왓 파싹 설명을 다시 소환하여 보면. 


왓 파싹의 불탑은 샌 부 왕이 파탈리푸트라(고대 인도 도시. 마가다국의 수도)에서 온 부처의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1340년 건축. 불탑 건축 후 300그루의 티크목이 사원 벽을 빙 둘러 심겨졌고, 왕은 프라 붓타 코사차라야에게 사원 장(일종의 교구장 혹은 주지승) 지위 부여. 오늘날의 왓 파싹은 버려져 방치된 상태(라기에는 50밧 입장료를 받고 있잖소, 야무지게). 가장 중요한 메인 불탑은 수코타이와 바간 미술의 영향을 받은 하리푼차이 양식을 반영한 것이어서 다른 불탑과 구분되며, 이러한 양식은 란나 양식 불탑의 원형이 되었다. 


여기에 좀 더 첨언을 하면. 


왓 파싹 불탑은 다른 불탑인 '쩨디 꾸 꿋'의 영향을 받아 세워졌으며, 탑 꼭대기 유물실은 '쩨디 치앙 얀'의 영향을 받았다고. 쩨디 꾸 꿋과 쩨디 치앙 얀 모두 람푼에 있으며, 장식은 수코타이 뿐 아니라 푸 감(아마도 베트남 지역), 중국, 크메르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리푼차이 왕국은 태국 북부 람푼에 근거를 둔 왕국이었기 때문에, 하리푼차이 양식을 반영하여 건축된 왓 파싹이 람푼 소재 불탑들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왓 파싹 메인 불탑. 


문외한인 내 눈에도 아유타야, 수코타이, 깜팽펫 어디에서 본 불탑과도 다르다는 것이 보인다. 기단부는 낯이 익지만, 탑 중간 부분부터 첨탑까지 크메르 양식이나 몇 번 보았던 스리랑카 양식으로 되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푸 감'의 영향 때문인 걸까? 한 가지 양식으로 만들기도 어려운 것을 도대체 몇 가지 양식을 섞어 놓은 것인지. 문득, 람푼 지역에 있다는 쩨디 꾸 꿋하고 쩨디 치앙 얀이 보고 싶어졌다. 어떻게 생겼길래. 





치앙쌘은 도시 규모가 아담하지만, 태국 내 대표적인 성곽 도시 중 하나여서, 걷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게 외벽 성곽이다. 현재 남아 있는 외벽 성곽은 1.5M에서 2M 정도이지만, 원래는 해자 위 3.5M에서 4M 높이로 세워졌다고. 그러니까 해자에서 물 위로 보이는 부분까지 전체 높이가 4M였다는 것. 몇 백 년 전 세워진 성곽 주변이나 사원을 손으로 쓸어보면서, 구시가 돌바닥을 타박타박, 걷는 것이 나는 그렇게도 좋다. 


비싼 입장료에 비해 보이는 것이 전부여서 허탈하였지만, 그럼에도 와보지 않았다면, 떠나고 나서 내내 후회하였겠지. 오길 잘 했다. 


저녁거리를 사러 나가기 전, 숙소 사장님에게 숙박비를 지불하면서 영수증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사장님이 엄청 난감해하셔서, 태국어 영수증도 상관 없다고 하였는데도 내일 아침 6시에 꼭 준비해 주겠다고. 영수증 쓰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내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 사장님은 꼭 줄테니 걱정 말라는 첨언을 하신다. 결국 이튿날 새벽 체크아웃할 때, 다른 직원에게서 영어로 쓰인 영수증을 건네받았다. 사장님은 영어 영수증을 준비하려고 아침에 주겠다고 하였던 것. 열심히 사는 사람의 선한 호의와 약속은 늘 마음 찡하다. 작은 시골 마을을 찾은 흔치 않은 외국인 투숙객을 위해 잠 못 드는 늦은 밤 팝을 들려주고, 일부러 새로 구입한 자전거를 준비해주고, 번역기를 돌려 스펠링을 찾아가며 썼을 것이 분명한 쪽지(자전거 무료니까 맘껏 타고, 무슨 일 있으면 도와줄테니 전화하라고)와 영어 영수증을 준비하여 건네고. 익숙치 않은 언어로 최선을 다해 소통하려고 애쓴 그의 성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치앙쌘 랜드마크. 


해가 진다. 치앙쌘에서의 마지막 날도 저문다. 떨어지는 해에게 묻는다. 당신이 오늘 비추었던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무엇이었는지. 세상은 정말로 아직 살 만 한지. 정말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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