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특별하지는 않은 것들
Sns를 보면 지난날을 떠오르게 하는 영상들이 있다.
영상은 '90년대생만 아는 것들' 따위의 해당 시대의 이들이 공감할만한 정보가 나열되었다.
그런 영상을 보면 심연 밑에 가라앉아 있던 지난 것들이 부력을 갖고 조금씩 올라오는데, 이는 애써 욱여 넣었던 슬픔들이 제 힘을 못 이겨 쏟아지는 것 같다.
너무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살았다.
자극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 속에서 조금은 간직해야 할 평온과 안정.
그리고 사랑하는 거. 친절해지는 거. 영원할 수는 없는 거.
특별하지 않은 것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쾌락을 중시하는 도파민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렇겠지.
격변하는 세상에서 조용한 곳도 필요했다. 케렌시아가 떠오른다.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 자신의 집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또 타인을 통해서 평온을 찾을 수도 있다. 나는 평온은 어디 있을까.
편한 공간이라고 하면 초등생 시절에 아파트 단지에 있던 경비 아저씨가 생각난다. 조금 마른 체구. 50대는 족히 넘어 보이는 눈가의 주름들. 하지만 정정하셨던 아저씨. 우리는 꽤나 친한 사이였다. 어떤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항상 그를 보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다 보니 내적 친밀감이 생긴 탓인가. 아저씨는 우리를 더 챙겨 주셨던 것 같다. 그의 자녀분들도 쌍둥이라고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아저씨의 눈에는 쌍둥이인 형과 내가 귀여웠을 수도 있다. 언젠가 우리에게 자전거를 선물했다. 새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처음 받아보는 자전거 선물은 기분이 좋았다. 형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일대를 누볐다.
가을이 되면 동네에 듬성듬성 있던 감나무에 감이 완연하게 열렸다. 아저씨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감을 따고 하교하는 우리에게 하나씩 건네고는 하셨다. 아저씨의 마음은 감나무처럼 잔뜩 기울어 있었다.
경비실은 괜히 편안했다. 어릴 적 나의 평온을 차지했던 공간 중 하나였지. 분명히 말하자면 집처럼 편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저씨의 공간에 들어왔다는 기분이 새삼 신기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았다. 사실 그땐, 친구의 집에 가는 것도 힘들어했다. 친구의 사적인 공간이기에 내가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을까 봐 불안했던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허나 경비실은 달랐다. 그 꾸릿꾸릿한 향도, 무작위로 놓여 있던 달력도.
아저씨는 잘 지내시려나.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중학교 때 이사를 가 연락처를 알 길도 없다. 만나게 된다면 후일담을 이야기할 테다.
예비군을 가는 도중에 보았던 이른 하늘.
잊고 살았던 풍경이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딱딱한 군화를 잠시 멈추어 하늘을 촬영했다. 하늘이 이렇게 분홍색일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사진을 찍은 탓에 수송 버스를 놓쳤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떠난 버스의 자리에는 아까보다 더 분홍빛인 하늘이 놓여있었다.
이렇듯 난 충동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갑작스럽게 발현되는 그 순간의 절제하지 못할 사랑이 결국 나를 잘못된 길로 안내할 테니까. 그럼에도 그런 예측불허의 사랑이 또다시 다가올 때면 망설이지 않을 테다. 세상의 모든 넋은 서로를 알아보며 다가온다고 했으니, 사랑을 보려면 내가 사랑이 되어야 한다.
아, 왜 이리 세상은 처량하게도 빠르게 변해가는 걸까. 그런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반복되는 무의미한 날들이 일말의 사랑을 품고 썩어버린다. 허물을 벗고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리는 그 무구한 사랑들.
나는 누군가에게 경비 아저씨처럼 케렌시아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