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혐오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우리는 왜 믿는가 2화

by 천윤준호


'영원한 나의 파멸자, 나'

- 나는 사랑이 구원이라 믿는다. 채민지


영원한 나의 ...jpg


사랑은 사람을 닮아 고통을 수반한다

사람은 사랑을 닮아 꿈을 꾼다


세상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관찰에 가깝다.

세계는 우리에게 설명을 제공하지 않은 채 사건을 던지고 이유를 말해주지 않은 채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는 노력했음에도 실패하고, 누군가는 아무 잘못 없이 사라진다.

고통은 공평하지 않고, 보상은 늦거나 결코 오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기본값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런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잔혹하고 혐오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무뎌지는 것이다.

감각을 줄이고, 기대를 낮추고, 타인의 고통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남는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마음을 닫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다.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얼마든지 냉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무뎌진다는 것은 고통을 덜 느끼는 대신, 기쁨도 함께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덜 아프게 느껴질지 몰라도 동시에 덜 살아 있는 공간이 되고 만다. 생존은 가능하지만 존재는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방식을 택해왔다.

바로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종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믿고, 소중한 사람의 말을 믿고, 나의 행동의 저의를 믿는 것도 모두 포함한다.


믿음은 이 세계가 공정하다는 확신이 아니다. 선한 사람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낙관도 아니다. 믿음은 오히려 그 반대 지점에서 출발한다. 세상이 잔혹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한 뒤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잔혹하고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믿음은 방패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를 보호해주지는 않지만 어디로 걸어갈지를 결정하게 만든다.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 1


[칠드런 오브 맨] _ 알폰소 쿠아론

인류가 번식을 멈춘 세계. 미래는 사라졌고, 국가는 난민을 수용소로 몰아넣는다.

이 영화의 세계관은 철저하게 디스토피아다.


그럼에도 결말에 등장하는 것은 총이 아니라 아이의 울음소리다.

잠시나마 전쟁이 멈춘다.

이 장면은 현실성과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더욱 명확하다.


예술은 여기서 현실적인 생존 전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말하려한다.

이 세계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이라는 종족이 끝내 놓지 못하는 마지막 선택이 무엇인지를.


5f5ad6e3942d1b001ce3c25d.png.jpeg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 2


사람이 믿는 것은 대게 거창한 이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뜰 것이라는 감각과 누군가의 손길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기억, 지금의 고통이 전부는 아니라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가능성.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판단을 멈춘다. 선택하지 못하는 존재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살아남는 한들 결국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은 생존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은 급속하게 무너진다. 고통 자체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고통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 무의미를 견디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다. 완벽하지 않고, 종종 틀리며 때로는 스스로를 속이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인간이라는 종족을 다음 날까지 데려다준다.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계속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택은 언제나 믿음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 선택이 무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 행동이 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 확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느냐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는다.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서가 아니라 믿지 않으면 멈춰버리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의미를 만든다.

그 의미가 진실이든 허구든, 그 사이 어딘가이든 상관없이.


잔혹한 세상에서 믿음은 희망이 아니라 어쩌면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술을 오늘도 어설프게 연습하며 살아갈 뿐이다.


제대로 서는 법을 배운 인간은 평생을 발돋움을 유지한다.


하지만 제대로 우는 법을 가르쳐준 이는 없었다.

어쩌면 다들 제대로 우는 법을 모르기에 혐오하는 것은 아닐까.


가여운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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