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방향을 잃은 존재들

우리는 왜 믿는가 3화

by 천윤준호


인간의 정보기관이나 신경기관은 앞쪽에 달려 있다.

눈이나 코, 입 그리고 뇌로 이어지는 신경계는 모두 '전방'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는 인간만의 특징이 아니다. 좌우 대칭을 가진 동물은 앞과 뒤를 구분하며 감각과 판단의 중심을 한쪽으로 모아 진화해 왔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 구조가 아니라 생존 방식에 대한 선택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망칠 방향과 추적할 방향을 빠르게 구분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한쪽으로 정렬될 필요가 있었다.


뇌는 모든 정보를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뇌는 정보를 편향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무엇을 먼저 볼 것인지, 무엇을 위험으로 판단할 것인지, 무엇을 무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장치인 것이다.


즉 인간은 태생적으로 중립이기 힘들다.

우리는 처음부터 일부만 보도록, 일부만 믿도록 설계된 존재다.

정보의 편향은 오류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방향성을 띄어야 한다.

앞과 뒤가 구분되는 존재는 '지금 여기'에만 머무를 수 없다.

우리는 늘 앞을 상정하고 나아갈 곳을 가정하며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인간은 방향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뇌는 공포를 생산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방향을 만들어 낸다. 그건 목표이고 가치이며 믿음이다.

하지만 그 반대도 존재한다. 이미 지나온 과거에 연연한다. 그건 미련이다.

(미련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방향을 방해할 후회나 미련은 자가 필터를 거쳐야 한다.)


믿음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방향의 문제다.

무엇이 옳은가 보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가 먼저다. 믿음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삶을 앞으로 밀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의미는 사실의 총합이 아니라, 선택된 해석의 결과다. 인간은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서사를 택하고 나머지를 포기한다. 믿음은 그 포기를 견디기 위한 장치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믿음은 인식이 아니라 방향 선택'이다 라 말했다.

믿음을 지식이나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로 규정한다. 그는 인간이 객관적 진리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야 하고, 선택해야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믿음을 '불확실성 속에서의 결단'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내가 말한 방향성의 문제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믿음은 모든 방향을 검토한 뒤 가장 옳은 것을 고르는 행위가 아니라, 혼란 속에서 한 방향을 택해 몸을 던지는 행위다.


(사실 모든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인간의 정신을 가진 이상 정말 '모든' 방향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의 한계다. 정말 일평생을 쏟아부어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키르케고르에게서 믿음은 진리에 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방향 없는 상태에서 붕괴하지 않기 위한 구조물이다. 앞과 뒤가 분명한 인간은 정지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도약한다. 이 도약 중 하나는 믿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와 대비되는 존재가 있다. 해파리다. 해파리는 대칭동물이 아니다. 앞과 뒤가 없고, 중심화된 뇌도 없다. 해파리는 어느 방향으로도 '가야 할 필요'가 없는 생물이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구분하지 않고 특정한 미래를 가정하지도 않는다. 해파리에게는 방향이 없고, 방향이 없기에 믿음도 없다. 목적도 서사도 요구되지 않는다. 해파리는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이 차이는 인간의 비극을 드러낸다.

우리는 해파리처럼 존재할 수 없다. 모든 방향을 동시에 받아들이면 정신은 붕괴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만 본다. 일부만 믿는다. 그리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념을 만든다. 인간의 믿음은 고귀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취약해서 생겨난 것이다. 방향을 잃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 우리는 계속해서 방향을 상상하고 그것을 믿음이라 부르고 있다.


결국 우리가 믿는 이유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멈추지 않기 위해서다. 앞을 향해 달린 신경기관을 가진 이상, 인간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믿음은 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표식이다.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그 방향이 있는 한 우리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해야 한다.

지옥 같은 나날들이 있어도 필연적 사랑을 찾아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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