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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앱 Mar 09. 2021

청춘이어서 참을 수 없었던 '독립'의 열망

[레드컬튼상영작] 음악극 '서대문 1919' 리뷰

갓 쓰고 도포 입은 사람들 검게 그을린 사람들
인력거도 달리고 아이들도 달리고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달리고
아기 업은 젊은 엄마들도
선생도 나리도 달리고
그 마음을 안고서 달리고 달리네



1919년 3.1 만세 운동은 누구 한 사람, 특정 세력의 주도 하에 진행된 운동이 아니었다. 민족대표 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해 시발점이 되긴 했지만, 실제 ‘독립 선언’을 부르짖은 건 이름 없는 민중들이었다. 위 노랫말처럼 신분 고하, 성별, 학력을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대한의 독립을 외쳤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옥고를 치르고 목숨을 잃었지만, 우린 그들 중 대부분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음악 낭독극 ‘서대문 1919’는 이런 만세운동 당시의 영웅들을 조명해 우리 앞에 내놓는 작품이다. 보성법률상업전문학교(고려대학교의 전신) 재학생 강기덕과 연희전문학교 학생대표 김원벽, 소설가이자 시인 심훈, 조선총독부 의원 간호사 박자혜, 그리고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 장채극과 박쾌인까지. 극은 이들이 민족대표 33인을 대신해 독립선언문을 배포하고, 광장에서 만세운동에 앞장서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더불어 이들이 처한 현실을 해외에 알린 세브란스 의전 교수 스코필드, UPI 통신원 앨버트 테일러 등 외국인 운동가들의 면면도 이야기한다.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해 가감 없이 이어지는 ‘서대문 1919’의 스토리텔링은 ‘음악 낭독극’이란 포맷 하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다. 청년 독립운동가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노톤 컬러의 셔츠와 재킷 차림으로 시대를 뛰어넘은 ‘청년’의 모습을 연출하고, 이들은 해설과 재연, 노래를 교차하며 당시의 단편적 사건들을 지금의 시간에 되돌려 놓는다.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현재의 청년으로서 해석하는 독립운동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그저 있었던 일을 회상해 서술할 뿐인데도, 극이 주는 울림은 상당하다. 일본 경찰의 총칼에 찔리고 찢긴 민중들의 모습은 줄곧 흐릿한 흑백사진을 통해 영상으로 전시된다. 이 와중 단출한 피아노 반주에 가만히 이어지는 배우들의 노래는 청년 특유의 맑으면서도 강인한 목소리로 다큐멘터리적 서사에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덧입힌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김훈의 시구를 바탕으로 쓰인 가사 하나하나는 일본의 탄압과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공감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극 후반부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주인공의 상황은 독립의 열망이 무색한 일제 치하의 음울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다만 그들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빈칸으로 남겨둔다. 말하자면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청춘 시절의 ‘사건’으로서 일제 치하와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 셈이다.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 민족말살 통치에 이르기까지 일제 치하의 세태 변화 속에서 독립운동 노선이 바뀌어 간 거시적 서사는, 최소한 이 작품에선 중요하지 않다.


독립을 ‘선언’한다고 독립이 될 거라고는, 어쩌면 그들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건, 자아와 신념이 그 어떤 때보다 단단한 청춘 시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모에겐 귀하고 사랑스러운 자식이었을 주인공들이, 두려움과 무력감 속에서도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마음. 극 말미 노랫말에 그 마음이 아릿하게 담겨 전해지는 이유다.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을 쓰다듬어 내리고
쇠창살 사이로 새벽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애원하듯 바라보는 눈동자에
담긴 간절한 소원
떨리는 손으로 제 손을
뜨겁게 잡았습니다.
어머니 아무리 기도를 해도
옥문은 열리지 않지만
저를 위해 근심하지 마시고
눈물 흘리지 마세요



낭독 음악극 <서대문 1919>

작: 전진, 김효상
연출: 박선희
출연배우: 임승범, 임영식, 박동욱, 은해성, 김록현, 이현지
제작: 명랑캠페인
공연일시: 2020년 8월 15일
공연장소: 다락스페이스


*<서대문 1919> 실황 영상은 '레드컬튼프리뷰X플앱'을 통해 스트리밍으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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