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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그립다

by 세상에 Feb 06. 2025

'낮잠 이불과 베개를 챙겨 오시오'

등교 3일 전 금요일, 학교에서 메시지가 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준비물이었다.

한국 유치원에서는 낮잠을 자지 않은지 이미 2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점심을 먹고 40분간 휴식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대부분 아이들이 낮잠을 자니 가벼운 이불과 베개를 준비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비상이다. 

새벽배송이 필요하다!!

한국에서처럼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다. 

그러다 이내 깨달았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는 것. 온라인 배송은 적어도 3일이 필요하다는 것. 지금처럼 금요일에 주문하면 주말을 끼고 등교 이후에나 배송이 될 거라는 것. 

좌절이었다.


결국 아들 손을 잡고 버스로 15분 떨어져 있는 이케아로 날아갔다. 

물론 쇼핑은 즐겁긴 하다. 

꾸물 거리는 아들을 챙겨 입히고,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고, 쇼핑몰 안에 있는 이케아에 들어가 온갖 물건들을 구경하고, 계산을 하고 나와 밥을 먹고, 물건을 어깨에 메고 버스를 기다리고, 집 앞 정류장에 내려 한 손에는 물건을 한 손에는 아들손을 잡고, 후덥지근한 길을 걸어오면 된다. 나름 낭만이 있지 않은가?

<아들과 나는 이케아에서 파스타와 레몬에이드를 먹었다. 오랜만의 익숙한 음식이라 행복했다. 아들은 꿈에서도 레몬에이드를 마셨던 모양이다><아들과 나는 이케아에서 파스타와 레몬에이드를 먹었다. 오랜만의 익숙한 음식이라 행복했다. 아들은 꿈에서도 레몬에이드를 마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새벽배송에 익숙해있던 나에게 이런 낭만은 가끔 귀찮음과 번거로움, 그리고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지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내 쇼핑몰은 가면 좋지만, 동시에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에서의 온라인 쇼핑은 도착 첫날밤부터 시작되었다. 청소기, 신발장, 침대커버, 거울, 멀티탭, 아스테이지 등등 세간살이들이다. 시내 몰에서 직접 구매를 해도 되긴 했지만, 원하는 적절한 물건이 없거나 비쌌다. 12월 말 주문한 물건들은, 1월 1일 연휴가 끼어 있던 터라 5일이나 지나서야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청소기 없이 살았던 일주일은 힘들었다..) 

멋모르고 중국에서 배송되는 물건을 시킨 적이 있는데, 연말 연휴가 끼고 통관이 늦어져 2주도 더 걸린 물건도 있다. 중국에서 직접 배송되는 물건은 세상 신기한 종류도 많고, 정말 많이 싸다. 하지만 2주 배송의 기다림을 경험 한 이후로는, 중국에서 배달되는 물건은 웬만하면 피하고 있다. 


배송이 늦어지는 것은 한국에서부터 예상은 했지만, 반품의 과정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내가 사용하는 싱가포르의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반품을 하려면 먼저 반품 '요청'을 한다. 그러면 판매자가 반품 사유를 보고 '승인'을 해야 한다. 이후 두 가지 방법으로 '반품 픽업'을 요청할 수 있다. 빠른 반품을 위해서는 집 가까운 택배사 집하장(?)에 물건을 직접 가져가 송장을 받는 방법이다. 이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지 집 가까운 곳에 두어 개 정도의 택배사 집하장이 있긴 했다. 

다른 방법은 택배사가 집 앞으로 반품 픽업을 올 날짜와 시간을 미리 예약하는 것이다. 반품 버튼을 누르면, 반품 픽업이 가능한 몇 개의 날짜를 주는데, 그것이 일주일 뒤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잘 보관하고 있다가, 내가 정한 시간에 문 앞에 잘 놓아두면 택배기사님이 가져가신다. 

<반품도 쿠팡이 그립다><반품도 쿠팡이 그립다>


한국의 체크카드로 결제했던 나는 환불도 오래 걸렸다. 

판매자의 승인이 일주일, 픽업이 일주일, 그 뒤 확인이 일주일, 한국의 은행과 확인이 이주일, 뭐 등등해서 실제 환불받는데 한 달 이상은 족히 걸렸다. 처음에는 체크카드 환불 시스템이 한국과 달라, 중복 결재가 된 줄 알고 한국 카드사와 연락하고 쇼핑몰 고객 센터와 상담하는 행정처리를 족히 2주는 한 것 같다. 


암튼 한국에서는 몇 번 클릭 후 택배 봉지에 "반품"이라고 커다랗게 써 놓고, 문 앞에 내놓으면 택배기사님이 쥐도 새도 모르게 쓱 가져가는 그 편리한 세상이 너무도 그리웠다. 


싱가포르에 와서 첫 2주는 매일밤 온라인 쇼핑에 빠져있다가, 이제는 조금 비싸도 집 가까이서 살 것과 시간이 오래 걸려도 싸게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받을 것을 대충 구별해 적적히 쇼핑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반품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건을 구매하는데 신중하며, 설사 반품을 한다 하더라도 쇼핑몰을 믿고 절차에 따라 천천히 환불받음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다음 달 싱가포르에 올 때 가져올 물건을 한국집에 미리 주문했다. 눈치도 없이 그 물건들은 하루 만에 배송되어 빈집에 덩그러니 택배 상자만 놓여있다. 그 물건이 싱가포르에 하루 만에 배송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휙휙 젓는다.


나는 싱가포르에 있다... 나는 싱가포르에 있다... 나는 싱가포르에 있다......

아. 쿠팡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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