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감기진료에 8만 원이라니..

아프지 말자

by 세상에 Feb 11. 2025

1월의 싱가포르 아이들은 카디건을 입고 학교에 등교한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긴바지에 긴팔을 입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한낮의 온도가 32도를 육박하지만, 아침저녁 나름 선선한 바람도 불고 중간중간 비도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들의 학교에서는 1월 내내 수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발이 날리는 한국에서 더운 싱가포르로 온 나와 아들에게는, 싱가포르의 1월은 그저 더운 여름날일 뿐이었다. 그래서 한낮의 더위를 콘도의 수영장에서 날려버리는 것은 싱가포르 생활의 특권이었다. 


그 어느 날도 아들과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물이 은근히 차가웠다. 물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에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추위가 느껴졌다. 아들을 서둘러 닦이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따뜻한 된장국에 밥을 먹었더랬다. 


그날 밤 아들은 자다가 코피를 흘렸다. 다음날부터 아들은 하얀 콧물이 나왔다. 

제발 멈춰주기를 바라며 한국에서 챙겨 온 상비약을 먹였다. 하루 만에 노란 콧물로 변했다. 

아... 시작이로구나. 

아들의 감기 루틴이었다. 이 루틴대로 간다면 아들은 필히 중이염에 걸릴 테고, 한 2주는 콧물과 기침으로 고생할 것이 뻔했다. 서둘러 인근 병원을 찾았다. 


<아들은 구명조끼 없이 수영을 해서 뿌듯했지만, 감기에 걸렸다><아들은 구명조끼 없이 수영을 해서 뿌듯했지만, 감기에 걸렸다>


싱가포르에는 Clinic이라고 불리는 일반 병원과 ( 우리로 말하면 의원 같은 느낌이다) 2,3차 진료를 전문의가 하는 전문병원이 있다. 아들의 경우에는 소아과 클리닉을 찾아갈 수 있지만, 일단은 맘카페의 추천 병원과 구글 평점을 참고해 집에서 가까이 있는 일반 클리닉으로 갔다

그리고 외국 의사와의 대화는 처음이기에, 아들의 증상과 한국에서의 루틴을 영어로 미리 공부했다. 

하얀 코, 노란 코, 중이염, 열, 기침, 항생제.... 


병원은 동네 상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냥 지나치면 병원인지도 모를 그런 곳이었다. 

어째 어째 접수를 마치고, 순서를 기다렸다. 에어컨도 없는 오픈 복도에 앉아 있자니 아들도 긴장하고 나도 긴장했다. 


Lee!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로 들어가니 동네 이웃 같은 의사 선생님이 이것저것 꼼꼼히 물어보셨다.

나름 외워갔던 대로 증상을 이야기하니, 청진기로 숨소리도 들어보고, 귀, 목, 코 꼼꼼히 보셨다. 한국 소아과에서 사용되는 그 흔한 카메라가 달린 그런 장비 없이, 오직 의사 선생님의 육안으로 진료가 이어졌다.

육안으로 중이염을 확인하신 건지, 아니면 나의 설명에 따른 판단인지, 의사 선생님은 항생제를 처방해 주셨다. 싱가포르에서는 항생제 처방도 잘 안 해준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견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의 경험상 항생제가 처방될만한 증상이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낙후된 시설의 옛날 방식 진료였지만, 그 누구보다 친절하셨던 의사 선생님이었기에 감사 인사를 꾸뻑하고 나왔다. 진료 후 약은 병원에서 직접 받을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의약분업 체계가 아닌 모양이었다. 


문득 바글거리는 아이들 무리 속에서 무한 대기 후에, 의사 선생님과 치이 듯 진료를 받고 나왔던 한국 소아과가 생각났다. 

undefined
undefined
<동네 병원은 이런 느낌들이다>

암튼 싱가포르에서의 첫 병원진료라 아들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던 그때, 


"73달러입니다" 


귀를 의심했다. 싱가포르의 의료비가 비싼 것은 알고 있었지만, 8만 원 돈이라고??? 

더군다나 카드를 받지 않는 옛날 스타일의 동네병원이라, 가지고 있던 현금을 탈탈 털어 겨우 비용을 지불하고 나왔다. 


약봉투를 열어보니, 콧물약, 기침약, 항생제가 시럽병째 들어있다. 동봉된 숟가락으로 먹이면 된다고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스테인리스 숟가락에 가루약을 풀어 먹여주셨던 생각이 나서 웃음이 픽 났다. 


시설도 예스럽고, 진료도 예스러웠던 그 병원의 처방전이 잘 맞았는지, 아들은 금방 괜찮아져서 첫 등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뭔가 추억을 부르는 시럽과 약숟가락이다. 효과는 좋았다><뭔가 추억을 부르는 시럽과 약숟가락이다. 효과는 좋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 눈에 진득한 눈곱이 가득 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세수를 해도 눈곱이 가시지를 않았다. 

아들을 등교시킨 후, 아들이 갔던 그 병원을 다시 찾았다. 

어버버 했던 외국인을 기억하는지, 리셉션의 간호사 선생님이 아들은 이제 감기가 다 나았는지 물어봐주셨다. 동네병원 특유의 친밀감이 국적을 분문하고 느껴지자, 시설의 낙후됨은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그렇듯 동네 이웃 같은 의사 선생님은 꼼꼼하게 내 눈을 살피고, 청진기에 목, 귀, 코까지 두루두루 보시더니 결막염 진단을 하셨다. 아들에게 옮지 않게 주의하라는 당부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동네 의원의 왠지 모를 따뜻함이 후덥 한 복도에 가득 찼다. 


"Kim, 110달러!!"


하... 타국에서 느끼는 훈훈함은, 의료비로 금방 상쇄된다. 

아프지 말자.  




이전 06화 쿠팡이 그립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