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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 Jun 21. 2024

아빠를 부탁해

엄마가 사라진지 한달하고도 열흘이다.

미국에서 둘째 조카를 출산한 동생을 위해 그 곳으로 날아간 엄마의 빈자리 덕에, 아빠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워낙에 주중에는 안부전화도 잘 하지 않고, 일요일에나 한번 얼굴 내비치며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TV나 실컷 보다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인 나였다. 

그런 나에게 혼자 남겨진 예순 중반의 아빠를 맞이하는 마음은, 뭐랄까 방학숙제같은 느낌이랄까? 신경은 쓰이지만, 무언가를 챙기려니 막막한 그런 느낌? 애교가 많은 것도 아니고, 살림을 잘 하는 것도 아닌 것이, 그런다고 엄마의 부재동안 짐을 싸서 본가에 들어가 잠시 사는 것 조차 마땅치 않은, 하지만 무언가는 꼭 해야 할 것 같은 사명감? 그런다고 아빠가 나의 수발이 필요한 호호 백발의 노인도 아니고, 어쩌면 오히려 아빠가 나를 귀찮아 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무튼간에 이참에 무엇이 되었건 딸노릇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애매한 느낌이었다.

엄마가 없던 첫주 일요일은 엄마가 남겨놓은 각종 얼린 국과 반찬, 그리고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라며 구해 놓은 전시회 표 덕에 별 무리없는 꽉찬 스케줄의 하루를 보냈다. 두번째 주 일요일은 내가 일요일 약속이 있어 간단하게 저녁만 함께 먹고 헤어졌드랬다. 세번째 주 일요일은 친구가 보내준 영화 초대권 덕에 둘이 눈물 쏙 빼며 "장수상회"를 관람했다. 네번째 주 일요일은 아빠가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는 날이라 토요일 저녁을 함께 했다. 한달이 지나가니 엄마의 국과 반찬이 떨어진지 오래라 이미 주말은 아파트 근처의 식당을 전전하며 밖에서 해결한지 한참 되었다. 그런 다음날 일요일 오후 집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데 아빠에게서 디리릭 문자가 왔다.

"마라톤 하고 남은 보쌈 고기 있는데, 맛있겠지?"

순간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에잇 하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같이 운동한 사람들은 아직 맥주한잔들 하고 있을꺼야, 나는 딸내미랑 저녁 먹는다고 나왔어"

괜시리 옷 챙겨입기 귀찮어 "에잇"했던 마음이 죄송스러워졌다.


다섯번째 토요일에는 아예 짐을 싸서 본가에서 자고 갈 준비를 했다. 토요일 저녁 종로에서 공연 한편을 같이 보고, 군것질 거리들로 한껏 장을 봐 집으로 왔다. 일요일 아침에는 둘이서 내내 집안 청소를 했다. 나는 청소기로 밀고, 아빠는 걸레질을 하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아빠는 빨래를 널고.. 점심엔 인터넷 레서피를 뒤져 아빠가 좋아하시는 멸치 국수를 대충 만들어 먹고, 오후에는 운동화가 필요하다는 아빠의 말에 백화점에 가서 신상 운동화도 하나 장만해 돌아왔다. 요리에 탄력을 받은 나는 인터넷에 또 돌아다니는 초간단 레서피를 뒤져 버터 계란밥으로 저녁을 지어 먹고, 개그 콘서트를 보며 같이 낄낄 거리다 집으로 왔다.

그렇게 엄마가 없는, 아빠와의 단둘이 주말은 참 길었다.

밥을 준비하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공연을 보러 이동하는 시간, 백화점으로 같이 걸어가는 시간, 그 모든 시간이 온전히 둘만의 시간이었다. 엄마와 함께였던 그 시간을, 아빠와 나만의 이야기로 채우는 그런 시간 말이다.

알고보면 아빠도 참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문방구를 운영하는 아빠는 시시콜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다. 문방구 앞에 새벽마다 나타나 배변을 하고 가는 유기견(혹은 유기묘- 아직 정체 불명이다) 이야기, 예의 없는 손님 이야기, 군대 이야기, 운동 이야기. 요즘 한참 빠져있는 SNS 이야기... 수다를 떨다보면 식탁앞에 두어시간 앉아 있는 것은 예사였다.

알고보면 아빠도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액션 영화를 즐겨하시더니, 이제는 슬픈 영화를 보면 두 눈이 빨개져서 극장 밖을 나왔다. "국제 시장"을 볼때도 "장수상회"를 볼 때도 아빠와 나는 동시에 훌쩍이고 동시에 손수건을 들었다.

알고보면 아빠도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빠는 그동안 메뉴 주도권을 딸내미와 엄마에게 늘 양보하셨다. 드시고 싶은 것도 여자들 위주, 보고 싶은 것도 여자들 위주였다. 하지만 엄마가 안계신 지금만큼은 아빠가 좋아하는 곱창전골이며 순대국을 거침없이 선택했다. 음악이라고는 도통 안들으실 줄로만 알았던 아빠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을 좋아했고, "장고"같은 서부 영화의 삽입곡도 좋아라 하셨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엄마는 나에게 "한 여자" 였지만, 아빠는 늘 나에게 "아빠"였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딸들에 대한 엄함을 양 어깨에 메고 있는 "아빠".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당신의 시간과 취향. 그 속에 감춰져있 한 사람으로서의 아빠를 왜 그동안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지금부터라도 아빠를 부탁해.


2015.5.3 ( 아빠와 함께한 일요일)



10년전 독립해 혼자 살고 있던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아빠와의 몇달이 제법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동안 아빠를 알게되어 기쁘기도 했나보다. 

지금은 더이상 문방구를 운영하지도 않으시고, 마라톤도 건강에 무리가 되어 더이상 안하신다. 

소소히 당구를 치시거나, 겸이의 ( 6살 아들래미) 하원후 놀이터 시간을 챙기는데 더 바쁘신 우리 아빠.

나는 또 아빠를 아빠가 아닌, 겸이의 할아버지로 더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 

아부지..더 잘 할께요.

https://blog.naver.com/ondearth/22034911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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