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틴 13기 챌린지] 가장 시끄러웠던 요가
오늘 아침도 호야와 산책을 한다. 12월의 오하이오는 햇빛이 약해져서 참으로 잿빛의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대학가 타운이라, 학기 중에 살던 대학생들은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러 본가에 갔다. 호야와 산책을 하는 오전 7시, 거리에 눈에 띄는 사람은 정말 아예 없다. 모든 집들은 비어있고 거리는 조용하다.
친구가 목요일에 우리 동네에서 winter solstice (우리나라로는 동지) 기념 요가 및 작문수업을 한다고 연락이 왔길래, 요가 및 작문 수업은 뭔가, 궁금해서 신청했고, 오늘 아침 8시까지 가야 한다. 호야를 산책시키고 나서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저혈압이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거다. 할머니는 원래도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셔서 요양원에서 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셨다고 했다. 일단 경과를 지켜본다고 한단다. 할머니도 너무 걱정되고, 할머니를 걱정하는 동생도, 부모님도 많이 걱정되고.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요가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날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일단 이런 마음상태를 좀 정리하게 요가라도 하러 가자, 해서 요가매트를 챙겨 차 시동을 켰다.
도착한 요가 스튜디오는 정말 우리 집보다 더 고요한 산 동네 안에 있었다. 요가 스튜디오 바깥에는 넓은 텃밭이 있었고, 텃밭에는 이번 해에 수확되지 못한 작물들이 시들어있었다. 그 옆에는 빨간색 3층 집이 있었는데, 나무로 된 굴뚝에서 하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실 요즘 미국에서 저렇게 전형적인 굴뚝집을 보기가 참 힘든데, 역시 농사하는 집은 다르구나 싶었다. 동생의 전화로 인해서 수업에 좀 늦었던 지라, 살금살금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한 10명 정도 되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워밍업 명상에 잠겨있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를 본 친구, 요가강사는 나에게 손짓을 하며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안내해 줬다.
그래, 좀 마음을 가다듬자, 하면서 주변 사람들처럼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았을 때, 할머니, 이민, 비자, 비행기값, 공항, 등 온갖 잡생각들이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너무 시끄러웠던 나머지 눈을 부릅뜨고 요가 자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 허리가 이 정도밖에 안 굽혀지는군. 호흡으로 조금 더 굽혀볼까. 끙끙거리면서 호흡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을 때, 또 온갖 생각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지금 배우자 비자절차 때문에 한국에 가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할 텐데 (그런 게 있다). 미국정부에 좀 탄원서를 넣어봐야 하나. 탄원서는 어떻게 작성하지. 너무 시끄러워서 눈을 다시 떴다. 창문 밖으로 텃밭과 빨간색 집이 보였고, 햇빛이 서서히 집을 비추고 있었다.
삼각자세를 하라고 한다. 왼쪽 다리를 뒤로 빼고 다리로 삼각형을 만든 다음, 팔 하나는 앞의 다리로 뻗고 팔 하나는 하늘 위로 뻗어서 나의 중심을 시켜야 한다. 배에 잔뜩 힘을 주고 다리에 힘을 줘서 균형을 지키려고 하는데, 중력이 너무 세다. 자꾸 옆으로 무너지려고 한다. 느껴지는 중력의 힘만큼 내 다리에도 힘을 줘서 최대한 안 넘어지려고 한다. 그때 친구가 호흡 한 번 더 하고 팔을 올리라고 한다. 휴. 넘어지지 않았다. 창 밖으로 또 빨간색 집이 보인다. 정말 가만히 서있는 집.
끝으로 다가왔다. 누워서 다리를 접히고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아기자세를 하고 있다. 양옆으로 몸을 굴리면서 중력을 처음으로 거스르는 아기들. 균형을 잡아보면서 자신의 힘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아가들을 생각하니 귀엽기도 하고, 나도 그럴 때도 있었나 생각이 든다. 이제 가만히 누워 눈을 감으라고 한다. 요가 강사인 친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We have witnessed the ability to balance ourselves today. Try to notice the balance between light and darkness within you during this time of meditation (우리는 오늘 균형의 능력을 확인했어요. 이 시간 동안 빛과 어둠의 균형을 한번 확인해 봤으면 좋겠어요.)”
눈을 감았을 때, 내가 피하고 있었던 걱정스러운 단어들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할머니, 가족, 성적, 학교, 건강, 직업, 미래, 비자. 그리고 이러한 키워드들이 주는 걱정, 공포, 불안, 슬픔, 무기력함의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눈을 뜰 수 없었다. 내가 이 생각을 피할 수 있는 요가 자세도 없다. 지금 눈을 뜨면 균형을 찾지 못한다. 균형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그때였다. 눈을 감은 내 세계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서로와 서로를 잠식하기 시작했고 감정들은 하나하나 모여서 검은색 원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검은색 원은 점점 더 커져 내 세계에서는 정말 검은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든 감정은 검은색 원안에서 사라져 있었고, 이 검은색 원의 무한함과 자비로움에 덮여있었다. 너무 평화로웠다.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니,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은 눈을 비비며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요가 강사 친구는 오늘 요가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에 대해 자유롭게 한번 글을 써보자고 했다.
“오늘 아침도 호야와 산책을 한다. 12월의 오하이오는 햇빛이 약해져서 참으로 잿빛의 풍경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