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경제개념이 없다. 돈을 벌거나 쓸 때 별 생각이 없고, 재테크나 투자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는 반대인 사람을 만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요즘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무원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나 미술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야!'
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렸을 때 나는 남자치고는 세심하고 꼼꼼한 편이어서 미술도 잘하고, 잠시 배운 피아노에도 소질을 보였었는데 재미를 느낄 때 쯤이면 부모님은 학원을 끊어 버리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다방면에 조금씩은 할 줄 알지만 깊이 있게 하는 것이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전과목을 가르치는 초등교사는 어쩌면 나에게 적합한 직업일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해서 교대를 가고 임용고시를 패스해야 했던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공부였다. 나이가 들어 나를 돌아보니 나는 공부에 가장 재능이 없었다.
그 피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닌지....
아들과 딸은 공부에 관심이 없다. 아들은 에니메이션과 스톱모션 제작에 빠져 매일 그림을 그리고 촬영을 하는 재미에 빠져있고 딸은 예중에서 가야금을 전공하고 있다. 공부로 직업을 가진 평범한 부부교사의 자식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예술적이다. 아들딸 학원비와 레슨비에 저축은 꿈을 꿀 수도 없고 버는 족족 써버리니 한 달 벌어 한 달 산다는 말이 우리 부부의 이야기다.
참새가 황새 따라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했던가?
부의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딸도 부유한 예중 친구들을 보며 점점 돈에 대해 눈을 뜨고 있다. 강남에 사는 친구들이 많으니 우리도 그쪽으로 이사를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꼭 강남에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돈에 대해 특별한 욕심이나 경제개념이 없는 나도 요즘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몇 십억씩 하는 아파트에 살고 싶다거나
예중 학부모들의 흔한 외제차를 타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는 내 아들과 딸이 하고 싶은 그림과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레슨비 걱정 없이 좋은 선생님께 마음껏 수업을 받게 해주고 싶고
학비 걱정 없이 유명한 에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 싶다.
천 만원이 넘는 악기, 드로잉 패드도 척척 사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러한 면에서 나는 한없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사람이다.
어릴 적 내 아버지는 초등교사였다.
지금보다 더 박봉의 월급에 그것도 혼자 돈을 버셨으니
내가 피아노에 소질을 보이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아버지는 어떻게 느끼셨을까?
그러니 "예술은 부잣집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생기도록 나를 교육시키신 것은 아닐까?
그런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내 아이들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소질이 있는 것은 마음껏 누리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경제개념은 1도 없고 재테크라고는 저축 밖에 모르는 내가 요즘 주식공부를 하고 있다.
책을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지만 꽤나 진지하다.
아들 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요즘 나는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