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을 다스리며 사는 법
딸과 함께 서울에 다시 올라오게 되었을 때 아내가 없는 1년은 딸을 위해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침에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개인연습이 끝날 때까지 대기했다가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놓고서야 나의 하루가 마무리 되었으니 나의 시간은 온전히 딸아이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딸아이도 늦은밤 집에 올 때면 내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데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니 이제는 전화도 없이 혼자 집에 온다. 딸아이의 모든 관심사는 학교와 친구들에게 맞추어져 있고 나를 찾을 때는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이니 이제 나도 딸을 조금씩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가 이해도 된다. 사춘기 여자 아이가 10평 남짓한 복층 오피스텔에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으니 얼마나 불편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 얼마 전에는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왔다.
하긴.... 품안의 자식이라고 언제까지 딸아이가 '아빠 바라기'이겠는가?
세상을 살 수록 현명하게 사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 수록 해야 할 것과 책임져야 할 것은 늘어만 가니 나와 타인을 위한 좋은 선택이 무엇일지 어렵기만 하다. 자식이 바르게 컸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 자식에게는 잔소리가 되고 그렇다고 모른 채 하기에는 불안함과 조바심이 드니 그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야 할 지 모르겠다.
40대 후반의 나이, 자식들은 나를 점점 불편해 하고 직장에서도 그림자처럼 지내니 내 자신에 회의감을 느끼고 어디에 정을 붙이며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외로운 모양이다.
"선생님은 마음에 항상 우울감이 있는데 다행히 통제하는 방법을 아시는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에 심리검사를 했을 때, 상담자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극I에, 극 F 내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결과가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원래 우울한 사람이다. 이런 내가 사회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오히려 "잘 웃는다. 인상이 밝다."라는 말을 들으며 생활하는 것은 나를 사회에 맞추어 적응시키며 살았기 때문이다. 바디프로필을 찍는다고 운동에 빠지거나, 책을 출판하겠다고 글쓰기에 열중하거나, 영어를 잘해 보겠다고 영어학원을 다녔던 것도 우울감에 빠지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한동안 딸아이 뒷바라지에 열중하며 딸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를 통제하고 다스렸는데 내가 점점 필요가 없어지니 이제는 무엇에 열중하며 나 자신을 다스려야 할까? 다시 바디프로필을 찍어볼까? 미친 듯이 운동이나 해볼까?
요즘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일본어 공부에 더 욕심을 내보아야겠다.
40대 딸바보 아빠의 홀로 서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