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친구 없어? 좀 나가!
"돌봐줄 사람이 없어!"
딸이 어렸을 때, 내가 공부를 하거나 책에 빠져 있으면 딸은 이런 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딸바보가 된 것은 따지고 보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딸이 그렇게 만든 이유도 있다. 잠이 안오면 내 팔을 베고 누워
"아빠 팔은 날 잠이 오게 하는 마법이 있어."
라는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하는 딸을 보며 어떤 아빠가 딸바보가 되지 않을까?
그때는 그랬었다.
그렇게 언어의 마술사처럼 내 마음을 울리던 딸은 사춘기가 되면서 어떻게 하면 아빠에게 상처를 줄까 연구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라는 말은 "아빠는 친구 없어? 좀 나가!"로
"아빠 팔은 날 잠이 오게 하는 마법이 있어."라는 말은 "언제 가?"로 바뀌었다.
그뿐인가? 내 직업이 교사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는 아빠가 똑똑해 보였는지
"이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똑똑하잖아." 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빠가 뭘 알아?"라는 말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상처도 받고 했었는데 이제는 면역이 생겼는지 크게 상처받지는 않는다. 다만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 있을 뿐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주위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 모두들 공감하는 것을 보면 나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상처를 받는 것은 아내와 떨어져 딸과 단둘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딸의 사춘기 언어와 감정을 100% 나 혼자 받아내야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다시 올라올 때 내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내 모든 시간을 딸 케어에 쏟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는데 딸아이 눈에는 내가 친구도 없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나에게는 딸이 전부인데 딸아이는 그렇지 않으니 그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요즘은 점점 딸아이를 마음에서 놓아주고 있다.
이번 주말 딸아이가 좋아하는 '올리브영'에 같이 갔다. 바구니를 들고 딸아이를 졸졸 따라다니고 계산을 하면서 간만에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준 딸아이 때문에 기분 좋아하고 있으니 내 꼴도 참......
"아주 잘하고 있어. 여보!"
딸아이로 지칠 때면 아내는 전화통화로 이런 말을 한다. 서울에 아빠와 딸 둘만 보내 놓았는데 딸아이를 철저하게 케어하는 나를 보며 안심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
"지금은 그래도 나중에는 다시 돌아온대."
정말 그럴까?
같이 놀아주지 않아
"돌봐줄 사람이 없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찾던 딸,
잠이 오지 않아 내 팔을 베고 누워
"아빠 팔은 날 잠이 오게 하는 마법이 있어."
라는 딸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알기에 내가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주 조금만 덜 상처 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올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참 많았는데
사춘기 딸아이의 말이 아무리 가시 돋아 있다해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고 있으니
누가 뭐래도 나는 딸바보, 딸바부팅이, 딸멍충이다.
뭐, 어쩌겠는가?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
오늘도, 내일도 나는 딸바보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