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홈러스를 아시나요?
예전 서울에 사는 동안 나는 금천구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서울이 엄청나게 넓은 것은 아니지만 서울시민이라면 공감할 만한 사실, 서울에 살면 의외로 자기가 사는 지역구를 벗어날 일이 많지 않다. 서울이 대도시인 까닭에 어느 구에 살아도 웬만한 것은 다 있고 서울생활이 또 여유가 없기 때문에 구태여 다른 지역을 찾아갈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보면 바람둥이 강남 선배가 "강북은 가본 적이 없어서요."라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니다.
금천구.... 금천구는 참 재미있는 곳이다. 강남이란 뜻이 한강의 남쪽이라는 뜻이라면 금천구는 분명 강남이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누구도 금천구를 강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금천구가 강남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강북도 아니면 강서인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서쪽보다는 중앙에 가깝다.)
금천에 산 지, 벌써 1년! 언젠가 글에도 썼지만 나는 금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나가기도 쉽고, 광명역이 20분 거리에 있어 기차 타기도 편하고, 공항도 그리 멀지 않아 나처럼 제주도를 자주 가야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좋은 금천!
사람들은 또 어떤가? 내가 이곳에 살며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 사람들이다. 추측이기는 하지만 금천에서 태어난 사람은 고향을 잘 떠나지 않는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왜 그렇게 다들 아는 사이인지. 나와 같은 이방인을 빼고는 모두 인사하고 안부를 나누느라고 바쁘다.
"어디 갔다와? 왜 이리 얼굴 보기 힘들어?"
차가 쌩쌩 다니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울특별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대화다. 사람들도 모두 친절해서 음식점이나 상점에서 조금만 말을 붙이면 친구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금천 사람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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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아니었다면 나는 금천구를 영영 모르고 살았을지 모른다. 가야금을 하는 딸아이가 '국립전통예술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제주살이를 마감하고 딸을 따라 금천구로 올라왔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립예술학교가 금천구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나도 사실 딸아이가 시험을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으니까. 그렇게 맹모? 아니! 맹부삼천지교로 지금 금천에 살고 있다.
"아빠! 홈플러스 사라진대? 미친거 아냐? 그럼 나는 어디서 놀아?"
지난 9월 딸이 학교에 다녀오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엥! 왜? 지금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한대?"
서울집을 금천구 시흥동 흠플러스 코앞에 구한터라 이 말은 나와 딸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딸과 살 집을 구할 때 가장 만족했던 것이 50m안에 홈플러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딸의 아침거리를 책임져 주던 곳, 연습을 마치고 온 딸에게 언제든 간식을 내어줄 수 있게 해준 곳이 홈플러스였는데 갑자기 사라진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홈프러스는 나에게 냉장고이자, 옷장, 가구점, 부엌, 생필품 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에이, 아닐 거야. 전국에 홈플러스가 몇 개인데 없어지냐? 전국민이 난리가 날걸? 대기업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아!"
나는 딸아이에게 안심하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학교가 끝나면 간식을 사먹고 쇼핑도 하고, 카트 타며 놀기도 했던 딸아이에게는 마트 이상의 의미였던 홈플러스! 내 말을 들은 딸아이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딸아이에게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요즘 들어 장을 보러 마트에 갈 때마다 물건이 점점 채워지지 않아 의아했는데, 급기야 내가 좋아하는 맥주조차 살 수 없게 되자(세상에 마트에 맥주가 없다니!) 나는 지나가는 점원에게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 정말 문 닫아요?"
"네, 1월까지만 영업해요."
이 말을 들으니 왜 이렇게 씁쓸하고 마음이 허전하던지. 그동안 폐업반대 서명 받고(나와 딸도 당연히 서명했다.) 애정하며 부정하던 금천구민들의 염원은 아무런 힘도 없었던 것인가! 커다란 장바구니를 들고가서 살 것이 없어 허전하게 나온 나의 손이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렇게 정치적인 사람, 사회 참여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 홈플러스 사태에는 분노를 느낀다. 금천구민들이 애정하고 애용했던 마트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현실, 분명 금천구민들은 변함없이 이곳에서 장을 보고 약속을 하고 밥을 먹고 애정했다. 손님이 없어 폐업을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지출했던 돈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심지어 변변한 놀이시설 하나 없어 마트를 만남의 장소, 놀이 장소로 여기며 아겼던 아이들, 청소년들의 마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을까?
오늘도 홈플러스에 다녀왔다.
주류매대에는 커다란 팝콘 봉투가 가득하고, 과일코너에서 딸기를 본 것은 2주가 넘었고, 약국, 사진관, 화장품, 의류상점을 운영하던 힘없는 소상공인들은 가게를 뺀 지 오래이다. 1년 전 금천구로 이사왔을 때 활기넘치던 그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곳 푸드코너에서 온 가족이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결국 맥주는 마트를 나와 편의점에서 사서 집에 들어왔다. 커다란 마트에서 살 수 없어 편의점에서 산 맥주, 글을 쓰며 마시는 그 술이 오늘따라 유난히 쓰다.
맥주가 쓴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만의 이익을 챙겨 힘없는 소상공인들을 내몰고, 국민 시민 구민들의 행복과 편안한 삶은 뒷전인 무책임한 경영진으로 인한 현실이 쓴 것일까? 오늘 밤, 곧 없어질 홈플러스에서 딸 아이와 함께 했던 추억을 되새기며 잠이 들어야겠다.
여러분, 금천구 사람들의 이야기와 웃음이 가득했던
금천구 시흥동 홈플러스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