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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텀점프 Feb 29. 2024

등잔밑이 어둡다 못해 깜깜했다

인스타 끊으신 딸의 이후 이야기

동네에 예쁜 집, 나도 저런 집에 살아봐야지

이전 블로그에서 SNS를 끊은 딸 이야기를 했었다. 그분께서는 끊은 지 일주일 만에 다시 SNS를 부활시켰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인 딸은 애니메이션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 중이었다. 9월 입학인 여기에서 지금쯤 일반 학과에 지원한 아이들은 서서히 합격소식을 받는 시기이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하는 딸은 2월에 그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만도 시간이 모자란데 자꾸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뺏기는 것을 확인하고는 일시적으로 소셜미디어를 끊은 것이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동안 좀비 같은 모습으로 우울함의 오라를 내뿜으며 온 식구를 긴장시키던 딸은, 포트폴리오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상큼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딸이 모습에 마음을 졸이던 나를 어이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그토록 심각하게 걱정했던 것인가? 여하튼 걱정과 근심이 사라졌으니 그걸로 되었다.


엊그제 딸의 방에 들어가니 초집중해서 무엇인가를 컴퓨터로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동영상 편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전이라면 "열심히 해~"라며 쿨하게 방을 떠났을 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인스타라는 필터를 장착한 상태이고, 릴스를 위한 동영상 편집으로 고민하고 있는 터였다. 어랏? 그러고 보니 딸은 학교 방송반에서 활동하고 있다. 동여상 편집과 영상 배경 제작이 주로 하는 일이다.


갑자기 딸이 더 사랑스러워졌다. 동영상 편집을 끝낸 딸에게 어떻게 편집하는지 물으니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를 이용해서 한다고 한다. 유로 프로그램이지만, 학교에서 방송제작을 하는 동안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어카운트를 제공한다고 한다. 은근슬쩍 나의 인스타를 보여주며 고민을 토로했다.


내 인스타를 본 딸의 첫 반응은 특색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릴스를 제작하는 게 나은지 내가 올린 릴스를 보며 아이디어를 준다. 나에게 동영상 제작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는지 어떻게 콘텐츠를 가져가야 할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캡컷은 사용해 본 적이 있느냐? 프리미어 프로가 좋은 점은 무엇이냐? 등등 여러 가지 말들이 오고 갔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내 할 일에 바빠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엄마랑 놀고 싶어 할 때 체력이 부실한 엄마인 나는 학교 공부에 벌써 방전되어 같이 잘 놀아주지 못했다. 그저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이제 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와 체력이 생겼는데,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는 시기인 십 대가 되어버렸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잔소리가 되거나, 꼰대 같은 엄마의 말에 대화가 잘 안 된다는 소리도 들었다. 딱히 함께할 대화 주제거리가 없어서 곤란했는데, 잘되었다. 함께 얘기할 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고 보니, 딸도 인스타를 한다. 그러나 나에게 절대 계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느 날 슬쩍 보여주었는데, 단 5개의 릴스로 500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담긴 아이패드 스케치를 배속으로 올린 것이었다.


어라? 우리 집에 인스타 고수가 숨어있었다. 나는 매일 포스팅하겠다고 아등바등해도 콘텐츠 방향성이 약하고 임팩트가 없어서 팔로워가 거의 늘지 않았다. 반대로 딸은 관리도 잘 안 하는 인스타에 팔로잉도 별로 없이 500명의 팔로워를 만들었다.


딸과 친해져야겠다. 옆에 착 붙어 앉아서 동영상 편집도 배우고, 동영상 편집도 시키고, 릴스 제작 아이디어도 좀 얻어야겠다. 쉰내 나는 엄마보다 팔팔한 십 대의 감성을 얻어 인스타에 도움을 받아야겠다.


관심 영역을 넓히니 딸과 친해질 기회가 덤으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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