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그리고 나의 장례식
김영하 작가님의 『단 한 번의 삶』을 읽었다. 난 작가님의 글을 좋아한다. 이번 책도 역시 좋았다. 질투가 날 정도로...
나도 작가님처럼
간결하게 핵심만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난 한국에서 10년 동안 초등교사를 했고, 내 두 아이를 키워 온 지는 벌써 18년째다. 그러니 난 내 인생의 대부분을 아이들과 함께한 셈이다. 아이들과 대화할 땐 구체적이고 반복된 설명은 필수다.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혹시 내가 너무 어렵게 설명했나 걱정돼 다시 확인해 보고 그래도 안심이 안돼 더 쉬운 비유와 더더 쉬운 예시를 몽땅 들고 나서야 비로소 난 마음이 놓인다.
그에 비해 작가님의 말과 글에는 장황한 설명이나 불필요한 수식이 없다. 간결한 표현으로 핵심을 전달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나의 글과는 너무나 달라서 '와, 과연 이게 내가 쓰는 모국어와 같은 언어인가...'라는 경외감을 갖게 된다.
만 시간의 법칙. 그러니까 하루에 3시간씩 10년간 연습하면 어떤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가 된다는 이론... 작가님의 만 시간(실제론 그 보다 몇 배 더 긴 시간이었으리라)과 나의 만 시간을 비교해 보았다.
작가님의 시간
"사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 『살인자의 기억법』
나의 시간
"너네들 스승의 날에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어? 선생님 사랑한다며? 그래서 이젠 서로 안 싸우고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했어 안 했어? “ - 『스승의 날 기억법』
작가님의 시간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가 닿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 『여행의 이유』
나의 시간
"엄마가 밥 먹을 때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한 자리에서 먹으라고 했지? 자꾸 그럼 다음엔 밥 안 준다." - 『삼시 세끼의 이유』
만 시간의 법칙이 맞긴 하나보다. 나는 한 문장을 쓴 다음에 연이어 그와 비슷한 문장을 또 쓰고 온갖 부사, 형용사, 의성어, 의태어도 쉼 없이 쓴다. 이런 면에선 세계적 수준일 거다. 그러니 내가 김영하 작가님의 글에 경외심을 갖게 되고 질투심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도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죽기 전에 단 하나라도 써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게 작가님을 부러워하고 감히 질투까지 하던 내가 『단 한 번의 삶』에서 작가님도 나처럼 요가를 하신다는 글을 읽었을 때 난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우와! 나도 작가님이랑 같은 게 하나 있긴 있네
작가님은 책에서 요가 아사나(asana는 동작, 자세란 뜻이다)는 스스로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과정이고, 아사나 이후에 얻는 마지막 휴식 자세(쉬바사나,Shavasana)는 고통 이후의 죽음, 즉 장례식과 같다고 쓰셨다.
쉬바사나...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면 되는 편안함 때문에 전 세계 요가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자세일 거라는 쉬바사나...쉬바의 Shava는 시체를 뜻하고 아사나의 asana는 자세를 뜻하기 때문에 쉬바사나는 시체자세 혹은 송장자세(corpse pose)로 불린다. 김영하 작가님의 말 그대로 가벼운 장례식이나 마찬가지이다.
쉬바사나를 하는 동안 노곤하게 반쯤 잠이 든 상태로 나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다. 나는 어디에서 죽게 될까? 한국? 미국? 만약 이 사막에서 이렇게 외국인으로 죽게 된다면 내 장례식엔 육개장이 나올까? 괜히 좋아하지도 않는 육개장 만드느라 애들만 고생하는 건 아닌지... 갑자기 애들 걱정에 잠이 확 달아난다. 안 되겠다. 까먹기 전에 유언을 해놔야지.
얘들아!
엄마에게 아사나는 의무도 아니었고, 무의미한 고통도 아니었어. 엄마는 스스로 원해서 매일 요가 매트를 폈고, 그저 아사나가 좋아서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단다. 그렇게 고통을 마주한 덕분에 내 하루하루는 위로받았고 이제는 이렇게 깊은 휴식과 달콤한 평온을 맛보고 있는 중이지.
별 일 아니야. 소란 떨 필요도 없어. 엄마는 지금 아사나를 끝내고 평소처럼 그냥 편안하고 노곤하게 쉬바사나를 하는 거야. 그러니 너무 많이 울진 마렴.
p.s. 그리고 만약 이 사막에서 엄마 장례식을 하게 된다면 괜히 육개장 준비하느라 힘 빼지 말고, 그냥 우리가 평소에 즐겨 먹던 체리 아이스크림을 사람들과 함께 먹으렴. 대신 둘이 아이스크림 가지고 싸우는 건 그만하는 거다. 우리 딸은 돌아다니지 말고 한 자리에서 먹고. 알았지?
The Emperor of Ice-Cream
by Wallace Stevens
Call the roller of big cigars,
The muscular one, and bid him whip
In kitchen cups concupiscent curds.
Let the wenches dawdle in such dress
As they are used to wear, and let the boys
Bring flowers in last month’s newspapers.
Let be be finale of see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Take from the dresser of deal,
Lacking the three glass knobs, that sheet
On which she embroidered fantails once
And spread it so as to cover her face.
If her horny feet proturde, they come
To show how cold she is, and dumb.
Let the lamp affix its bea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크고 굵은 시가를 부르라,
힘이 센 놈으로, 그리고 휘젓게 하라
부엌컵에 들어있는 욕망 가득한 우유커드를.
소녀들이 항상 입고 입던 평범한 드레스를 입은 채
빈둥거리게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 소년들은
지난달 신문지에 싸인 꽃을 가져오게 하라.
껍데기는 여기서 끝이 나게 하라.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뿐이니.
널빤지로 만든 화장대에서 꺼내라.
유리 손잡이 세 개가 모자란,
그녀가 한 때 꼬리깃털 모양을 수놓았던 그 침대시트를,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가리도록 펴라.
그녀의 거친 발이 빠져나오면, 그들은
그녀가 얼마나 차갑고 말없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등불이 빛을 비추게 하라.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