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을 손에 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 작은 나침반. 나를 설레게 하고,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가리키는 방향.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의 북극성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그 나침반을 들고 문을 열었을 때, 내 앞에는 망망대해가 아닌 거대한 홍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보의 대홍수.
세상의 모든 지식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이 시대. 나침반은 분명 '동쪽'을 가리키고 있는데, 동쪽으로 가기 위해 어떤 배를 타야 할지, 어떤 물살을 따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수백만 개의 유튜브 영상들이 '너에게 꼭 필요한 지식'이라며 손짓하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간들이 '인생을 바꿀 한 권'이라고 속삭인다.
이 거대한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하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진주'를 길어 올릴 수 있을까. 그 답은 놀랍게도, 내가 사랑했던 영화들 속에 아주 선명한 형태로 숨겨져 있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 교과서의 서문을 찢어버리라고 했을 때, 나는 그저 파격적인 교육법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J. 에반스 프리처드 박사가 만든 공식. x축은 시의 완성도, y축은 시의 중요성. 그래프의 면적이 넓을수록 위대한 시라는 그 차가운 공식을 키팅 선생님은 "쓰레기"라고 일갈했다. 시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그래프 따위로 측정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시대의 프리처드 박사들은 누구일까. 베스트셀러 목록, 평점, 알고리즘의 추천, 인플루언서의 서평. 나는 얼마나 쉽게 이런 권위들에 기대어 책을 고르고 영화를 선택해 왔나. '사람들이 많이 봤다니까.' '평점이 높으니까.' 그렇게 나의 취향 판단을 남에게 맡기면서도, 정작 그것이 나에게 맞지 않을 때는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건가?' 하고 자책했다.
한때 나는 '고전'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 살았다. 누군가 인생 책이 뭐냐고 물으면, 읽지도 않은 《죄와 벌》이나 《데미안》 같은 제목을 대며 지적인 허영심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 책들이 너무 어려웠고 재미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냥 인정해 버렸다. '그래, 나는 도스토옙스키보다 동네 서점의 독립 출판물이 더 좋아.' '나는 칸 영화제 수상작보다, 어릴 적 봤던 유치한 홍콩 영화가 더 소중해.' 그렇게 나만의 프리처드 박사를 찢어버린 순간, 나는 비로소 진짜 '나의 책'과 '나의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진주를 찾는 첫 번째 비밀은 권위에 저항할 용기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라도 유독 나의 눈길을 끄는 조개를 집어 드는 용기.
《굿 윌 헌팅》에서 상담사 숀이 천재 윌에게 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넌 미켈란젤로에 대해 잘 알겠지.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향기는 맡아본 적 없을걸."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 건강한 식단이 무엇인지 알고, 규칙적인 운동이 왜 중요한지 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앎의 대부분은 시스티나 성당의 '향기'가 빠진, 박제된 지식에 불과했다.
나는 건강한 식단을 짜는 법을 배우지만, 정작 그렇게 먹지는 않는다. 운동의 효과에 대한 논문을 읽지만, 소파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지식 유목민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떠돌지만, 정작 아무것도 '체험'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진주란, 단순히 아름답고 희귀한 정보가 아니다. 나의 삶과 만나, 나의 일부가 되는 지식이다. 나의 손과 발을 움직이게 만들고, 나의 어제를 반성하게 하고, 나의 내일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지식.
이탈리아 요리법에 대한 책을 열 권 읽는 것보다, 서툰 솜씨로나마 토마토소스를 직접 끓여보는 경험이 더 소중한 진주일 수 있다. 사랑에 관한 수백 편의 영화를 보는 것보다, 단 한 번이라도 용기를 내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해 보는 것이 더 깊은 앎에 이르는 길일 수 있다.
이제 나는 정보를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 지식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가?' 머리로만 이해하는 정보를 과감히 흘려보내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지식을 선택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지식의 무게가 아닌 지혜의 향기로 채워진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마주한 선택. 파란 약을 먹으면 안락하지만 거짓된 가상현실 속에서, 빨간 약을 먹으면 고통스럽지만 진실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대부분의 정보는 '파란 약'이다. 나의 기존 신념을 강화해 주는 뉴스,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영화와 음악, 이해하기 쉽게 모든 것을 요약해 주는 콘텐츠. 이것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생각의 매트릭스' 속에 가두어 버린다.
진짜 진주는, 종종 '빨간 약'의 형태로 우리에게 온다. 나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주장을 담은 책.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예술 영화. 나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깨닫게 만드는 어려운 과학 이론. 이런 것들은 처음에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진주가 조개의 고통 속에서 만들어지듯, 진정한 지적 성장은 바로 그 불편함의 순간에 시작된다. 나의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 그 균열의 틈으로 새로운 세상이 들어온다.
이제 내게는 세 가지 필터가 생겼다. 권위를 의심하고, 경험과 연결하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이 필터들은 정보의 홍수를 막아주는 높은 둑이 되어주기도 하고, 흙탕물 속에서 진주를 정확히 골라내는 섬세한 그물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냥이 늘 성공적일 수는 없다. 때로는 빈 조개껍데기만 잔뜩 건져 올릴 수도 있고, 진주인 줄 알았는데 하찮은 돌멩이일 수도 있다. 괜찮다. 그 모든 실패의 과정이 내 눈을 더 날카롭게, 손을 더 섬세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정보의 홍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는 그 홍수에 떠밀려 다니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으로 진주를 찾아 나서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진주 사냥꾼'이라는 것을.
그 거대한 정보의 바다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나만의 진주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