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지적 갈망의 종은 울리는가?
자, 여기까지 함께 걸어온 당신에게
이제는 정말로 묻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걸까.
아니, ‘공부’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배우고, 알아가야 하는 걸까.
너무나 익숙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답해본 적 없는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머릿속에는 오래전부터 입력된 모범 답안들이 스쳐 지나간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생존해야 하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우리의 삶이 그저 생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배움의 이유 역시 생존 너머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때 나는 ‘쓸모’ 있는 공부에 집착했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채워 넣을 수 있는 자격증 공부,
당장 업무에 도움이 되는 실무 기술,
나를 더 유능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줄 지식들.
나는 배움을 철저히 ‘도구’로만 여겼다.
나라는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그렇게 몇 개의 자격증을 땄고,
남들 앞에서 유식한 척을 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이상했다.
성취의 기쁨은 아주 잠시뿐이었고,
곧이어 더 높은 단계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새로운 압박감이 찾아왔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더 정교한 부품으로 만들고 있었을 뿐이다.
더 쉽게 대체될 수 있는.
* 우리는 ‘써먹기 위해’ 배운다고 생각한다.
이 지식이 내 연봉을 얼마나 올려줄까.
이 기술이 나를 얼마나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까.
모든 배움의 가치를 ‘효용성’이라는 저울 위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값을 매긴다.
그래서 우리는 길가의 들꽃 이름 따위는 외우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내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까.
우리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는데,
모든 것의 가치를 돈과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만
측정하게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중퇴하고 들었던 캘리그래피 수업.
그 당시에는 그 누구도, 심지어 잡스 자신조차도
그것이 어디에 ‘쓸모’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아름다운 서체에 끌렸을 뿐이다.
그 순수한 끌림이 훗날 세상을 바꿀 컴퓨터의 디자인을 낳았다.
진정한 쓸모는,
쓸모를 따지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아주 예기치 않게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옆집의 누구는 벌써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데,
입사 동기는 벌써 저런 자격증을 땄는데,
너는 지금 뭘 하고 있느냐고.
배움은 어느새 나를 성장시키는 기쁨의 과정이 아니라,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의 도구가 되었다.
도서관의 공기는 지적 호기심의 열기 대신,
서로를 경계하는 차가운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경쟁을 위한 배움은 우리를 공허하게 만든다.
승리의 기쁨은 짧고, 패배의 상처는 길다.
그리고 그 경쟁에는 결코 끝이 없다.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고,
나는 영원히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어제의 나뿐이라는 것을.
내가 이겨야 할 유일한 경쟁은
더 알고 싶어 하는 나의 순수한 호기심과
그것을 가로막는 나의 게으름 사이의 싸움뿐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겁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비로소 나는 남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보폭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 어쩌면 우리는 배움에 ‘결승선’이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끝.
이 학기만 수료하면 끝.
이 자격증만 따면 끝.
배움을 완수해야 할 과업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배움은 그런 것이 아니다.
등산처럼, 정상에 깃발을 꽂으면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산책에 가깝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저 걷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길가에 핀 꽃에 잠시 멈춰 서서 향기를 맡기도 하고,
예쁜 돌멩이를 발견하면 주머니에 넣기도 하고,
힘이 들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잠시 쉬어가기도 하는.
결승선이 없다는 것은,
영원히 미완성이라는 불안감이 아니라,
영원히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다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배우는 ‘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다.
*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쓸모를 위해서도 아니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아니라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배워야 하는가.
나는 그 첫 번째 대답을 아주 사소한 순간에 찾았다.
몇 년간 묵혀두었던 기타를 꺼내 서툰 코드를 짚는데,
어느 날 문득, 아주 희미하게나마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멜로디가 이어지던 순간.
그때, 온몸에 작은 전율이 흘렀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돈이 되는 일이 아니어도,
그저 내가 무언가를 내 힘으로 해냈다는 순수한 기쁨.
세상과 내가 아주 작은 화음을 이루어냈다는 충만함.
아. 이것이었구나.
배움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기쁨’이구나.
세상의 어떤 비밀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
어제의 내가 풀지 못했던 문제를 오늘의 내가 풀어냈을 때,
온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기쁨.
이 기쁨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이끈다.
그것은 ‘나’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내가 무엇을 배울 때 기쁨을 느끼는가?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이 뛰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해나가다 보면,
점점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배움은 백지 위에 새로운 지식을 그려 넣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먼지 쌓인 거울을 정성껏 닦아내어,
그 안에 비친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해 가는 과정에 가깝다.
* 이제 우리는 1부의 여정을 마친다.
우리는 왜 멈춰 섰는지,
왜 ‘지식 유목민’으로 떠돌았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방황의 끝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첫 번째 질문과 마주했다.
“무엇이 너의 가슴을 뛰게 하는가?”
“무엇이 너에게 순수한 기쁨을 주는가?”
이것이 바로,
정보의 사막을 건너는 우리에게 필요한
‘나침반’이 되어줄 첫 번째 질문이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준다.
이제 우리는 이 나침반을 손에 쥐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품에 안고,
어떻게 우리만의 항해를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우리만의 지도를 그려나가야 할까.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2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