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 걸까. 마치 취향이란 게 그저... 변덕스러운 기분 같은 것이라고, 깊이 들여다볼 가치조차 없는 사소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오늘,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사소한' 취향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삶을 구원할 유일한 나침반이라고.
우리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이, 우리의 취향도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비 오는 날의 흙냄새에서 고향을 떠올리고, 어떤 사람은 바싹 마른 먼지 냄새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미니멀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려하고 복잡한 패턴들 사이에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게 정말 하찮은 변덕일까?
아니다. 이것은 바로 '영혼의 지문'이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에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직 '나'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의 기준점.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
지난번 우리는 외부의 권위를 찢어버리고 스스로 정보를 선별하는 필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필터를 통과한 수많은 정보들 앞에서 또다시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이제 뭘 선택해야 하지?'
바로 그때다. 우리의 나침반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건.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이 나침반을 무시하고 살아온 탓에, 그 바늘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읽는 법조차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나침반은 계속해서 미세하게 떨리며 신호를 보내왔는데, 세상의 소음이 너무 시끄러워 그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그 나침반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나침반의 신호는 논리적인 언어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본능적이고, 때로는 비합리적인 '끌림'의 형태로 나타난다.
서점에서 걷다가, 갑자기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이상하게 그 책만 빛나 보인다. 카페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낯선 노래의 전주가 심장을 툭, 하고 건드린다. 다큐멘터리에서 스치듯 지나간 낯선 도시의 풍경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낸다.
'그냥 예쁜 표지네.'
'노래 좋네, 제목이 뭐지? 아, 까먹었다.'
'저런 데 한번 가보면 좋겠다. 근데 내가 갈 수 있을 리가...'
하지만 이 사소하고 이유 없는 끌림이야말로, 우리 영혼이 보내는 가장 정직한 신호다. '이 안에 네가 찾던 것이 있어.' '이 길로 가면, 너는 분명 성장할 거야.' 나의 무의식이, 나의 영혼이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를 위해 길어 올린 진주의 첫 조각이다.
이제 그 신호를 알아차려보자. 그리고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존중해 주자.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이 나한테 도움이 될까?' '이 노래를 듣는 게 시간 낭비 아닐까?' 그런 계산적인 질문들은 나침반의 예민한 바늘을 멈추게 할 뿐이다.
그저 끌리는 대로 손을 뻗어보는 것이다. 그 책을 집어 들고 첫 장을 넘겨보고, 노래의 제목을 찾아내어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보고, 낯선 도시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보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여정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작은 끌림에서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에게는 누구나 '길티 플레저'가 있다. 남들에게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사실은 너무나 사랑하는 것들.
밤새워 읽는 로맨스 소설. 유치하다고 놀림받을까 봐 숨어서 보는 애니메이션. 영양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아이돌 직캠 영상. 혹은 끝없이 빠져드는 비디오 게임의 세계.
세상은 이런 것들에 '시간 낭비', '현실 도피'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그것을 즐기면서 어딘가 모를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잠깐. 정말 그럴까?
나는 내 길티 플레저를 변호하고 싶다. 그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취향과 감성의 핵심,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숨겨진 보물창고다.
이제부터는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왜 이렇게 로맨스 소설에 열광할까?' 어쩌면 나는 현실에서 메말라버린 인간관계의 따스함과 깊은 정서적 교감을 갈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 게임 속 세계에 이토록 몰입할까?' 어쩌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세계와 달리, 나의 노력이 정직한 성장과 보상으로 이어지는 공정한 세계를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라.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길티 플레저' 속에, 나의 결핍과 욕망,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얼마나 많은 정보가 숨겨져 있는가.
이제 그만 자신을 검열하자. 나의 즐거움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내가 진짜로 사랑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그 사랑의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자.
그 안에 바로, 나의 배움이 나아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취향'이 내가 좋아하는 '무엇(What)'에 대한 것이라면, '감성'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만의 '방식(How)'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배우의 연기에 감탄하고,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미장센에 마음을 빼앗기고, 어떤 사람은 영화의 철학적 메시지에 대해 곱씹는다.
이것이 바로 '감성의 결'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나만의 고유한 필터이자 채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인가, 아니면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서정적인 이야기에서 더 큰 울림을 얻는 사람인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차근차근 기초부터 쌓아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인가, 아니면 일단 전체 숲을 본 뒤에야 나무를 살필 수 있는 타입인가?
자신의 감성의 결을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맞는 배움의 '방법'과 '환경'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도, 나의 감성과 맞지 않는 방식으로 주입되면 그것은 소음이나 고문처럼 느껴질 뿐이다.
논리적인 당신이라면, 잘 짜인 커리큘럼의 온라인 강의가 최고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서정적인 당신이라면, 그 강의를 듣는 것보다 그 주제를 다룬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더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이제 나의 나침반은 더 정교해졌다. 단순히 방향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으로 나아갈 때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떤 지팡이를 짚어야 할지까지 알려준다.
나의 취향으로 '무엇을' 배울지 선택하고, 나의 감성으로 '어떻게' 배울지 결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타인의 지도가 아닌 '나만의 지도'를 그리는 핵심이다.
이렇게 자신의 취향과 감성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관심사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뻗어나가는 것이다.
한 편의 일본 영화에 빠져들었다고 하자. 그 영화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그가 '오즈 야스지로'라는 전설적인 거장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의 흑백 영화들을 보며 '다다미 쇼트'라는 독특한 촬영 기법에 매료된다. 다다미 쇼트가 일본의 좌식 문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져서 일본의 전통 가옥에 대한 책을 읽게 된다. 그 책에서 차(茶) 문화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차와 선불교의 깊은 연관성을 알게 되고, 이제 관심은 '비움의 철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된다.
보라.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된 작은 관심이 영화사, 미학, 건축, 생활 문화, 종교, 철학으로까지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이것이 바로 '호기심의 그물'이다. 세상의 그 어떤 잘 짜인 교과서도 이렇게 유기적이고 흥미진진한 배움의 경로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이 그물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취향과 감성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엮어낸 지식의 태피스트리.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 면이 되듯, 나의 배움은 점점 더 풍성하고 입체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정보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그물을 던져,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원하는 물고기들을 얼마든지 건져 올릴 수 있는 노련한 어부가 된 것이다.
나의 취향과 감성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세상의 평가나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가 가장 진실된 것이라고, 나의 기쁨과 나의 설렘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행위.
그것은 때로 외로운 길일 수 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나 혼자 '아니요'라고 말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의 나침반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먼지를 털어내고, 기름을 치고,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딜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