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란 으레 아프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낡은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과정에 어찌 통증이 없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성장의 고통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이 주는 눈부신 쾌감에 대해서는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오늘, '성장쾌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벼락처럼 찾아오는 거창한 성공의 기쁨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그 순수한 즐거움에 대해.
어제의 내가 몰랐던 것을 오늘의 내가 알게 되었을 때, 어제의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오늘의 내가 해내게 되었을 때, 온몸의 세포가 조용히 환호하는 듯한 그 느낌.
이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즐거움이 아니다. 누군가의 '좋아요'나 박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나 자신만이 알고, 나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내밀하고 단단한 종류의 기쁨이다.
이 즐거움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아주 작고, 사소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우리의 배움의 순간들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누구나 경험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도무지 풀리지 않던 문제의 실마리가 번뜩, 하고 떠오르던 순간. 몇 번을 읽어도 안갯속처럼 뿌옇던 책의 문장이, 어느 한 단어를 계기로 그 의미의 윤곽을 선명히 드러내던 순간. 나는 이 순간을, 머릿속에 작은 전구가 '탁' 하고 켜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암흑 속에 있던 방이 일순간 환해지며,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사물들이 제자리를 찾는 듯한 명쾌함.
이것이 바로 '아하! 모먼트'의 쾌감이다.
이 즐거움은 지극히 지적인 종류의 것이다. 나의 뇌가, 나의 이성이, 세상의 무질서 속에서 어떤 질서와 패턴을 발견해 냈을 때 느끼는 희열. 그것은 마치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는 것과도 같다. 흩어져 있던 모든 복선이 하나의 결말을 향해 완벽하게 수렴될 때, 우리는 감탄하며 무릎을 친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 '아하!'의 순간은 우리를 중독시킨다. 이 지적인 쾌감은 너무나 강렬해서, 우리는 또 다른 '아하!'를 맛보기 위해 기꺼이 다음 문제에 도전하고, 다음 책을 펼쳐 들게 된다. 배움이 더 이상 지겨운 의무가 아니라, 짜릿한 퍼즐 풀이가 되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크고 작은 모든 배움에 존재한다.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는 거대한 깨달음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왜 항상 비슷한 구도를 사용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즐겨 듣는 노래의 코드가 사실은 아주 오래된 클래식의 변주였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어김없이 작은 전구가 환하게 켜진다.
깨달음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즐거움이라면, '창조'는 그 깨달음을 세상 밖으로 꺼내 보이는 외적인 즐거움이다. 배운 것을 이용해,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비록 아주 작고 서툴지라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냈을 때의 기쁨.
몇 달간 씨름하던 기타 코드를 이용해, 삑사리가 잔뜩 섞였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한 소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 냈을 때. 나는 그 서툰 연주를 녹음해 놓고 밤새워 들으며 바보처럼 웃었다.
인터넷 레시피를 보고 처음으로 빵을 구웠을 때. 모양은 울퉁불퉁하고 한쪽은 살짝 탔지만, 고소한 빵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고, 따끈한 빵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배운 언어로, 번역기의 도움 없이, 외국인 친구에게 짧은 안부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았을 때. 내가 쓴 글자가 누군가에게 의미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것이 바로 '서툰 창조'의 즐거움이다. 결과물의 완성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더 이상 세상의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지식을 이용해 세상에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는, 능동적인 '창조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기쁨은 우리에게 '효능감'이라는 아주 중요한 감정을 선물한다. '나도 할 수 있구나.' '나의 배움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 자신감은 다음 단계의 배움으로 나아갈 가장 강력한 연료가 되어준다.
나만의 나침반을 따라 이것저것 배우다 보면, 어느 날 아주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서로 다른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지식들이 어느 순간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연결되는 순간이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에 대해 공부하다가 '원근법'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고 치자. 며칠 뒤,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다가 인간의 뇌가 세상을 2차원의 망막 정보가 아닌 3차원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원리에 대한 부분을 읽는다.
그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서 두 개의 지식이 충돌하며 스파크를 일으킨다. '아!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어쩌면 인간 두뇌의 이 작동 방식을 수학적, 예술적으로 재현해내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이것이 바로 '연결의 즐거움'이다. 점처럼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고, 그 선들이 모여 거대한 별자리를 이루는 것을 목격하는 환희.
이 즐거움을 맛본 사람은 더 이상 지식을 칸막이 안에 가두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심지어 애니메이션과 양자역학조차도, 어딘가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배움은 더 이상 분절된 과목 공부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인 '세계' 그 자체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된다.
사실, 성장의 즐거움 중 가장 깊고 감격적인 것은, 어느 날 문득, 훌쩍 달라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일 것이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의 비판에 밤새워 괴로워했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니까'라며 덤덤하게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과거에는 텅 빈 주말을 견디지 못해 억지로 약속을 잡았는데, 이제는 온전히 혼자 책을 읽고 사색하는 그 시간을 가장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일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외국어로 된 간단한 기사를 더듬더듬 읽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문득 깨닫게 될 때.
그럴 때 우리는, 저만치 멀어져 있는 '어제의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싶은 기분이 된다. '그동안 애썼어. 너, 꽤 많이 왔구나.'
이 즐거움은 조용한 자신감과 단단한 자기 긍정으로 이어진다. 나는 멈춰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나는 계속해서 변하고,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이 감격스러운 순간들이 쌓여, 우리의 자존감을 지탱하는 굵은 기둥이 된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내 안의 성장을 믿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내가 되었다는 이 즐거움이야말로, 성장을 멈추지 않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보상이다.
이 작은 즐거움들이 모여,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그것은 단순히 '즐거운 순간'들의 합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고, 우리를 더 깊은 차원의 행복으로 이끈다.
매일의 작은 깨달음이 쌓여, 내 안에 단단한 성장의 기반을 만들어간다. 나는 더 이상 외부의 인정이나 성공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어제와 다른 내가 되는 즐거움. 그것은 인생의 막차가 아닌 첫차를 타는 마음과도 같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설렘으로, 새로운 나를 발견해 가는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런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성장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