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혹은 마음 읽기

어머니의 일기를 추억하며

by 식목제

#1 _ 어머니의 일기, 코스모스의 노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느 회사에서 서기 일을 본 적이 있었다는 어머니는 글씨를 참 잘 썼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머니보다 필체가 좋은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신이 필체가 좋아서 그랬을까? 연필 쥐는 법부터 글자 쓰는 법까지 참 꼼꼼하게 가르쳐 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머니는 글씨만 잘 쓰는 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글쓰기가 소일거리였다. 아니다. 소일거리라고 하면 좀 사치스러워 보인다. 삶의 위안이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공책에 그날그날의 마음, 생각거리 들을 적어 내려가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기 치유법이었다. 사실 글쓰기라고는 하지만 일기에 가까웠고, 대부분은 시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가끔 어머니의 공책을 들춰본 적이 있는데,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글에는 삶에 대한 한탄, 슬픔, 연민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는 일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겠지. 하지만 그건 어쩌면 뒷모습이 아니라 늘 어머니의 목소리에 드리워져 있던 한숨과 체념의 실체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칠순이 될 때까지도 계속 일기를 쓰고, 시를 썼다. 가장 마지막에 쓴 시들 중에는 30여 년 전 칠순이 조금 넘어 돌아가신 외할머니, 그러니까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시가 있다. 나는 이 시를 어머니의 시집을 묶어 드리며 처음 봤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언젠가는 당신의 시를 책으로 만들어드리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유통되지 않는, 그저 책이라는 물건의 형태로만 묶은 것이었다. 그 시에서 어머니는 어린 시절 당신의 ‘엄마’에게서 나던 ‘엄마 냄새’를 기억해 냈다. 칠순이 되어 칠순의 어머니를 기억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유년기에 엄마 치마폭에서 나던 분 냄새를 기억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해, 어머니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가끔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애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의 시집 제목을 『코스모스의 노래』라고 지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고, 당신을 보면 코스모스가 생각나서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첩 속 젊은 날의 어머니가 그 꽃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작고, 여리고, 고운 그 꽃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나이 들어서 육신은 늙어 갔으나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어머니는 세월에 지친 작은 소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가끔 서글펐다.


#2 _ 나의 일기, 소녀의 추억


어머니가 글씨 쓰기를 정성스럽게 가르쳐 주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한손에 연필을 꼭 쥐고 일기를 쓰거나 글짓기 숙제를 하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중첩되어 떠오른다. ‘탐구생활’이 방학숙제로 나오던 시절,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내 주던 과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일기 쓰기’였다. 어제도 놀았고, 오늘도 놀았는데 달리 할 말이 많지 않아 개학이 코앞에 오면 일기를 몰아서 ‘지어’ 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숙제 검사를 해 주던 어머니에게 잔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 그때 어머니는 그날 뭘 했는지 그대로 옮겨 적으려고만 하지 말고, 날씨에 대한 것이든 뭐든 간에 자기의 생각거리를 적어 보라고 충고해 주곤 했다.


어머니의 충고 때문이었을까? 세월이 지나 그때의 일기장을 펼쳐 보니 ‘조그만 녀석이 뭐 이런 소리를 적어 놨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일기도 제법 눈에 띈다. 덕분에 당시 담임선생님이 비록 ‘개똥철학’이지만 자기 생각을 글로 써보려 애쓴 게 대견하다며 칭찬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일기 쓰기에 또 한 번 변화를 주었다. 일기장을 의인화해서 매일 말을 건네는 식으로 글을 쓴 것이다. ‘소녀에게’로 시작되는 일종의 편지였다.


그때 나는 편지 쓰기를 참 좋아했다. 방학이 되면 올해는 어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까 고민하곤 했다. 실은 5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한 여자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던 것인데, 무슨 심리인지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두루두루 편지를 보냈다. 그 아이가 편지를 받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도 않을 텐데 무슨 어처구니없는 물 타기 전략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편지를 부치고 나선 그 아이가 지금쯤 받아 보았을까 궁금해 발을 동동 구르곤 했고, 혹 답장을 보내 주지 않을까 수시로 문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의인화된 그 일기가 ‘소녀에게’로 시작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 줄,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 줄 누군가가 말이다. 어머니도 그랬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미안하다. 나는 무정한 아들이었다.


#3 _ 글을 쓴다는 것, 마음을 읽는다는 것


애기가 된 어머니가 가끔 지금으로 돌아올 때, 내가 지나간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면 어머니는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러다 또 가끔은 쓸쓸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첫 글쓰기는 연애편지였다. 열여덟 순정을 담아 젊은 날의 아버지에게 보낸 연서였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혼하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이후로는 글을 쓰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은 내밀한 글쓰기다. 아버지도 이런저런 공적, 사적 글들을 쓰긴 했겠지만, 어머니의 일기에, 그리고 나의 편지에 담겨 있던 것과 같은 마음의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은 없었다. 그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형도 마찬가지였다. 글씨도 곱고, 글도 잘 쓰던 형은 언젠가부터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지 않았다. 가끔은 아버지와 형이 마음을 쓸 줄 알았다면, 나눌 줄 알았다면 서로 그렇게 깊은 생채기를 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이 꼭 내밀한 것일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직 글쓰기라는 것이 마음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화답하는 것, 어린 시절부터 내게 글쓰기의 시작은 그 지점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늘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가끔 오로지 글쓰기 자체에만 집착을 해서 욕심을 부리다 보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건지 모를 문장들의 덩어리만 남을 때가 많다.


역으로 보면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음의 실타래를 억지로 잡아당기고 쥐어뜯다 보면, 마침내는 더 단단하게 엉켜버린 실 뭉치와 빨갛게 부어오른 손바닥만 남게 되지 않을까. 그 실타래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잘 들여다보려 하는 것, 거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과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같은 가지의 다른 꽃일지도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