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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l 03. 2023

5. 나름은 계획이 있었습니다

모든 계획은 보류되었습니다

“꾸역꾸역 밥 얻어먹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조지 버나드 쇼가 그 시절의 나를 만났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쁘기만 했던 꽃다운 20대의 방황은 ‘과속 스캔들’로 마무리했다. 

    

엄마는 조용히 돌아앉았고, 큰언니는 못마땅한 눈치였다. 어린 동생이 취업한다고 낯선 동네에 가더니 뜬금없이 결혼하겠다고 남자를 데려왔다. 막내에 대한 기대가 컸던 큰언니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준다며 헤어지라고 했다. 기막힌 내 상황에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결혼에 실패해서였을까 큰언니는 울면서 매달렸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가족을 안심시켰다. 

     

긴 밤 뜬 눈 세우고 다음 날 집을 나왔다. 연락을 끊었다.   

   

결혼식은 무기한 미뤄졌고, 2000년 7월 딸을 낳았다. 꿈꾸던 하얀 웨딩드레스는 입지 못했고 날개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엄마가 되었다. 아기는 예뻤고, 배시시 웃는 모습에 마냥 행복했다. 젊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꿈은 어디로 휘발되었는지 그딴 건 중요하지도 않았다. 

         

사진: Unsplash의Thong Vo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엄마가 당진에 와 산바라지 했다. 이듬해에 결혼식을 올렸다. 사방을 에워싼 건 남편의 친구와 지인들뿐이었다. 모두가 남편 잘 만났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데 몇 번은 좋았지만, 자꾸 들으니 화가 났다. ‘그럼 나는 별론가?’ 그 말이 비교가 아닌 걸 알면서도 쓸데없고 미운 생각만 떠올랐다.  

    

딸아이는 예뻤지만, 마음 터놓을 친구는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친구를 깊이 사귀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기 엄마들은 만나면 온통 육아 얘기에 친한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남 험담하는 게 일이었다. 대형 쇼핑몰에 쇼핑을 함께 다니고, 낮부터 마신 술에 저녁쯤이면 취해있는 그녀들과는 안 맞았다. 그저 휩쓸려 다니긴 싫었다.    

 

6개월도 안 된 아기의 모유 수유를 매정하게 중단했고 남의 손에 맡겼다. 직장에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달콤한 육아에서 생각보다 일찍 일의 세계로 돌아갔고, 일에 몰두했다. 친구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 벌어서 원하는 공부와 취미 생활을 하고 싶었다. 주말부부를 하더라도 돈을 모아 당진을 뜰 생각으로 가득했다. 다 계획이 있었다.    

  

사진: Unsplash의Hollie Santos

2002년 6월은 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다. 온 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광화문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박수 다섯 번 대한민국’을 열창했다. 당진에서도 길거리 응원의 열기가 뜨거웠다. 큰딸 보모였던 지웅 엄마는 우리 대표팀이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이기자 길거리 응원을 간다며 같이 가자고 호들갑을 떨었다. 딸아이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혀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해 국가대표팀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워나갔다. 전 국민이 거스 히딩크에게 반했고, TV에선 밤마다 골 장면을 리와인드했다. 나도 그때 골 장면을 수없이 다시 보며 전 국민과 함께 울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4강에 진출했다. 눈물로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 같았다. 내 삶도 오늘만 같길 원하던 시절이었다. 다 계획이 있었으니까.    

  

내일이 없을 것 같은 한국 축구 역사에 명장면이 탄생했다. 내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둘째 임신 소식이었다. 결혼과 아이에 매어 바랐던 것을 희생하며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웬걸. 운명은 내 야심 찬 당진 탈출계획에 썩은 미소를 날렸다. 임신을 자각하자 시작된 입덧은 쓰나미처럼 덮쳐왔고, 평화롭고 계획적이었던 삶을 정지시켰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샛노란 위액만 연거푸 게워내며 바닥을 기어 다녔다. 입덧과 함께 하는 일상은 이성을 삼킬 지경이었다. “나 병원 데려다줘 아이 안 낳을래” 5개월을 힘겹게 쓰러져 생활하며 먹지 못하고 두통에 시달렸고 그렇게 운동해도 안 빠지던 살이 5kg이 넘게 빠졌다.    

  

사진: Unsplash의Nicholas Green


그즈음 당진에는 거센 도시 개발의 바람이 불어왔다. 온통 산이었던 수청동 일대가 헐려 나가고 종합버스터미널이 생겼다. 주변에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당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왕복 6차선대로가 원당동부터 대덕동으로 이어져 길게 났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청약하려고 종일 줄을 서는 사람들로 넘쳤다. 내 주변에도 그 대열에 합류한 사람이 많았다.   

   

현대제철이 한보 인수 초읽기에 들어서자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몇 년을 더 아파트 청약 붐이 일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 바람을 타고 돈을 벌었다. 나에게도 찾아온 기회였지만 돈 때문에 사람들 틈에 줄 서서 분양권을 따내고 프리미엄을 얻어 되파는 행위가 속물처럼 느껴져서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깝다.

 ‘그때 눈 딱 감고 줄 섰어야 하는 건데 ...... 아악~~ 이런 생각 옳지 않아!!’   

  

수청지구에 가장 먼저 세워진 5년 임대 후 분양하는 주공 아파트에 당첨되었다. 더불어 맞은편에 30평형대의 아파트 분양권도 손에 넣었다. 다행히 남편은 우리가 무주택자라 임대주택은 청약 통장을 안 쓰고도 당첨됐고, 30평형 아파트에 청약 통장을 사용했다고 했다. 욕심 안 부리고 30평형대 아파트의 입주 분양권은 프리미엄을 받고 팔았고, 여유 자금은 새집 이사하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2004년 현대제철은 한보를 인수했다. 그해 우리는 20평형대 주공 아파트로 이사했다. 5월 둘째를 출산했다. 스물여덟 살. 여전히 젊고 푸른 20대였다. 모든 계획은 보류되었다.    

 

사진: Unsplash의 Christian Fick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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