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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l 24. 2023

 7. 만 가지 이유가 한 가지로

“ 한꺼번에 많이 사지 마.” 

남편은 장에 가면 집어 드는 물건마다 트집을 잡는 사람이었고, 함께 장 보러 가는 일은 줄어들었다. 혼자 장을 보러 갔다가 카트를 함께 미는 다정한 부부를 보면 부러워했고, 물건을 골라주는 그 여자의 남자와 늘 빨리 사라고 보채는 내 남자를 비교했다. 그런 걸 목격한 날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건 바가지다. ‘집에 오기만 해 봐라.’     

 

남편은 밥상에 반찬 가짓수가 많다고 잔소리를 했고, 냉장고에는 식재료 많이 사서 채우지 말고 버리는 것 없게 하라며 지청구를 놓기가 일쑤였다. 살림을 살지도 않으면서, 요리라곤 라면 밖에 못 끓이면서 감 놓으라 대추 놓으라 늘어놓는 훈수 질에 지쳐갔다. 쪼잔한 남편을 째려보며 말했다. 

“내가 당신 엄마 같은 줄 알아?”   

  

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미워서 현관 보조 자물쇠를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다 화가 난 남편은 현관문을 발로 찼다. ‘확’ 문을 열었다. 남편은 취해 있었고, 동네 형수님이 싸준 김치를 현관에 엎었다. 김칫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에 겁이 나 더는 부채질하지 않았다. 나는 방으로 쌩 들어갔고 엎어진 김칫국물은 남편이 닦았다.      


“나 집 나갈 거야” 

가방을 쌌다. 대충 옷가지를 싸는 손이 자꾸만 느려졌다. 남편은 말리지 않았고 안방에서 아이랑 놀고만 있었다. 자존심은 살아서 짐 싸는 걸 그만두지는 못하고 현관을 나서는데 뒤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 놓고 가” 어둠을 가르고 달렸다. 돼지갈비 자주 먹으러 다녔던 원당 가든 마당에 주차했다. 딸아이가 눈에 밟혔다. 가까운 슈퍼에서 캔 맥주 하나를 샀다. 차에 앉아 다 먹지도 못할 술을 두 모금 마시고 버렸다. 갈 데가 없었다. 당진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 부모님께 전화해서 남편 흉을 못 본다는 단점이 있다. 새벽 1시 조용히 집에 들어가 가방을 풀었다.

 “왜 들어왔어 나간다며?”     

 

사진: Unsplash의 Sigmund

직장 동료와의 갈등으로 마음이 쑥대밭이던 때였다. 교회 안 나간 지 7년이 넘어가는데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릴 적 친구 따라 5~6년 교회에 다녔어도 예배 때를 제외하고는 성경을 펼쳐본 적도 없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읽어도 졸리기만 할 뿐이었다. 마음이 힘드니까 펼쳐 읽었다. 그나마 대충 알아는 듣는 잠언으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형편에 맞는 좋은 말씀에 밑줄 쫙 긋고, 반복해서 읽었다. ‘다스려져라. 마음아! 다스려져라’ 약효가 없었다.

 ‘아니! 무슨 마음이 아플 땐 구약과 신약이라더니 어떻게 된겨!’   

   

“당신이 잘못했네” 

엉긴 마음을 남편과 둘이 마주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며 털어놓아 보지만, 압력밥솥 스팀 올라오듯 열 만 더 받을 뿐이었다. 남편은 내 편인 적이 없었다. 구구절절 판단해 주고 해결책을 궁리해 주었다. 기가 찬 그의 말을 듣느니 차라리 구약과 신약이 나았다. 남편이 내 편 안 들어주니 고통만 가중됐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냥 들어만 달라고,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해달라고!!!”    

  

아무리 전화해도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기가 생겼다. 밤늦도록 배우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거기에 합당한 생각하기 마련이라 했다. 나도 별의별 생각을 다 했고,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해댔다.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누구세요. 지금 이 분이 취해서 전화를 못 받아요. 혹시 집이 어딘지 아세요?”

남편을 태운 택시 기사였다. 안도했지만 아무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결국 엉뚱한 곳에 내렸고, 취한 상태로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다 경찰서에 취객 난동죄로 끌려갔다. 남편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남편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 남편은 삐쳤다.  

   

사진: Unsplash의 Gilles Lambert

김창옥 교수는 모국어가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다툼이 격렬해지면 입에 담지 말아야 할 험한 말을 했다.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괴로운 마음에 차라리 벙어리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입을 여니 말이 나왔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의 귀가는 계속 늦어졌다. 대화도 줄어들었다.  

   

그는 다툼이 시작되면 동굴로 피했고, 나는 파도처럼 그를 덮쳐갔다. 거칠게 거품 물고 나온 나의 말들은 구멍 숭숭 뚫린 모래밭 같은 그의 마음에서 갈 길을 잃고 스러졌다. 어리석게도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원할 거라고 믿었고, 생각도 같아지길 바랐다. 지쳐갔다. 좁고 습한 오래된 우물 같은 내 감정은 매몰되어 가다가도 불꽃이 되어 타올랐고,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로 날카로웠다. 서로 불신하게 되었고, 불행하다고 느꼈다.  

   

남편과 다투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내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날은 종일 몸에 꽉 끼는 속옷을 입은 사람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고 자식보다 내 삶의 계획이 먼저였다. 돈 많이 벌어 좋은 집 사고 아이 교육도 최상으로 시키고 싶었다. 자기 계발에 성공해 부러울 것 없는 삶 살기를 꿈꿨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도 보상받고 싶었다. 

     

주말에는 맛있는 음식을 해서 남편 친구들을 불러 먹였다. 아이에게 예쁜 옷을 사주고 놀이터에 나가고 여행을 다녔다. 적절히 보상하고 나면 착해진 것 같고 자기 위안이 됐기 때문이었다. 틈나는 대로 착한 여자 코스프레를 해댔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 생활은 다툼으로 점점 버라이어티 해질 뿐이었다.   

  

사진: Unsplash의 Leighann Blackwood

연애 기간이 짧고 인격적으로 미성숙하며 결혼하는 나이가 어릴수록 결혼 생활에 실패하기 쉽다고 한다. 우리 부부도 짧은 연애 기간만큼이나 관계에 미숙했고, 8년이라는 나이 차이만큼이나 서로를 모르고 달랐으며 나는 어렸다. 거기에 시댁 문제, 육아, 친구와 취미 문제까지 우리 부부는 이혼할 이유가 일만 가지도 넘었다. 

     

그에게 반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순수한 사랑의 동기와 이해, 공통의 흥미와 목표도 없이 외로움에 기대어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한 결혼은 내 모습을 험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남편이 술은 좀 마셨지만, 그가 상당히 신사적으로 행동했음에도 내 안에서 제어되지 않고 올라오는 불평과 분노에 지쳐갔다. 마음이 쑥대밭이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미워했다.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이혼이라는 마침표를 찍고 자식을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주일이면 오전 내내 자느라 어린 딸 밥을 굶겨 죄책감이 밀려와서였는지, 그런 어린 딸 앞에서 남편과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였는지 알 길은 없다. 일하다 말고 문득문득 죽어서 지옥에 가면 어쩌지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날이 생겼다. 변하고 싶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요일이면 나와 함께 시체놀이 하던 꿈나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릴 적 친구 따라 나갔던 교회에 다시 가는 것뿐이었다. 하나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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