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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l 10. 2023

6. 됐어요. 섬에는 안 갑니다

인생 첫 갯벌체험학습

“형들이 국화도에 놀러 가자는데 갈래? 형수님들은 바지락 캐고 남자들은 낙지 잡는데?”

“그래? 그럼 난 뭐해. 바지락 어떻게 캐는지도 모르는데?”

“준비는 알아서 한다고 우린 몸만 오면 된다는데 당신은 그늘에 앉아서 놀면 돼.”     


바지락을 캐 본 적이 없다. 남편이 놀러 간다고 생각하래서 제주도는 아니더라도 예쁜 섬에 소풍 가는 것쯤으로 여겼다. 바람은 좀 찼지만, 햇살이 좋아 얼마 전에 새로 산 폭이 넓은 흰색 바지에 V자로 목이 파인 옅게 빛바랜 노란색 뜨개옷을 입었다. 화장도 예쁘게 하고 봄볕에 얼굴 탈까 봐 챙 넓은 모자도 썼다.   

   

딸아이도 멜빵 진에 빨간 재킷을 입혔고 긴 챙과 크라운 윗부분 단추가 특징인 분홍색 뉴스 보이 캡을 씌웠다. 그럴싸하니 예뻤다. 연신 전신 거울에 이리저리 몸을 비추며 옷맵시를 다듬고, 라탄백에 아이 간식만 넣었다. 남편은 편한 운동복을 입었지만, 내게 예쁘다고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몸만 오랬으니 섬에 가면 언니들은 바지락을 캐겠고 아저씨들은 낙지를 잡겠지만 나는 우아하게 파라솔 아래 앉아서 사진 찍고 커피 마시고 햇살을 즐기려는 마음으로 잔뜩 부풀었다. 만남의 장소는 장고항. 각 그랜저였던 남편의 첫차를 타고 장고항으로 달렸다. 달리는 내내 풍겨오던 봄바람은 향기로웠다. 하늘도 파랗고 맑아 기분은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는 중이었다.   

   

장고항에 도착하니 항구에 서 있는 언니들이 보였다. 언니들은 사뿐히 걸어가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긴 나도 좀 의아스럽긴 했다. “ 넌 옷이 그게 뭐야. 바지락 캐는데” 언니들은 나와 달랐다. 일단 옷이 다 검은색이다. 방수가 되는 듯한 땀복 수준의 운동복에 목이 긴 장화나 무릎을 아예 덮어서 다리에 착 붙는 장화를 착용했다. 팔에 토시를 끼고 목장갑을 착용했다. 시골 밭에서 할머니들 일하실 때나 쓰는 꽃무늬 일 모자를 턱밑까지 묶어서 쓰고 호미와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오 이런.’ 당황스러웠다.    

 

 “괜찮아 그냥 앉아 있으면 되지 뭐, 그런데 양산은 챙겼어. 거기 그늘 없을 텐데.” 미지 엄마는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 억양으로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떡하죠. 집에 가서 옷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올까 봐요?” “시간 없을걸. 그냥 가.” 마침 예약한 배가 도착했다. 보트였다. 얼떨결에 승선했고, 애초에 바지락을 캘 생각은 없었지만, 내 차림새에 후회가 밀려왔다. 좀 편하게 입을 걸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이 괜찮다고 했는데 놀러 가는 거라고’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 국화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섬이다.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예상한 것보다 작은 섬이었고 내리라고 해서 내렸다. ‘아 여기가 국화도구나.’ 그러더니 보트는 남자들만 태우고 ‘뿌아앙’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떠나갔다. 남편도 나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멀어져 갔다.  

    

그 섬은 국화도가 아니었다. 도지섬이었다. 국화도에 딸린 무인도로 물이 빠지면 국화도와 연결되는 모래사장이 있고 남북 길이 270m, 동서 길이 120m로 지도라고도 불렸다. 소나무 군락이 섬의 90%를 차지하고 댕가리, 총알고둥, 고랑따개비, 무늬발게가 우점종이다. 어린 애들 몇 명과 우리 모녀, 마침 오셨던 부모님과 바지락 캐는 아줌마들은 모두 거기 내린 것이 확실했다. 우리 부모님도 멋모르고 소풍처럼 오셔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지루해질 무렵 고랑따개비랑 총알고둥을 한 자루나 따셨다.

     

우리를 섬에 내려준 배는 남자들만 태우고 떠났고, 남편은 전화로 낙지를 잡으려면 다른 섬으로 가야 한다고 아저씨들이 그랬다며 두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자갈과 바위투성이에 그늘도 없는 곳에서 돗자리 하나 없이 챙겨간 윗옷을 깔고 앉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벌써 세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남편은 소식도 없었다. 스팀이 팍팍 올라왔다. 남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괜히 배 타고 가다 잘못됐나 걱정도 되고 목이 말랐다. 챙겨 온 물도 없는데 온통 자갈과 바위, 매점도 없는 빈 섬은 갈 곳도 볼 것도 없었다. 배가 고팠다. 부모님도 안색이 영 좋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는 잠들었고 안고 있던 오른쪽 팔이 저렸다. 자갈이 가장 고른 곳으로 골라 윗옷을 깔고 아이를 눕혔다. 챙 넓은 모자로 아이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팔은 아프고 등도 뜨겁고 마음은 끓어올라 폭발 직전의 냄비였다.   

  

‘봄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 내보낸다’ 봄볕은 가을볕보다 자외선이 강해 피부 최고의 적이기 때문에 붙은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농담이지만 햇빛의 강도를 가늠할 만한 말인 것 같다.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좀 희고 약한 피부를 가졌기 때문에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검게 타는 대신 빨갛게 익는다.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피부에서 허물이 벗어지고 이후 조금 검어진다. 그런 이유로 강릉이 고향이지만 해수욕장이 집 앞에 있어도 해수욕은 거의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몇 번의 해수욕 이후 피부가 데여 고생한 적이 있어서다. 그 후로 바다는 그늘에서 바라만 본다.

     

그 날. 봄의 작렬 하는 태양 아래서 목덜미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따끔거리고 아팠다. 아무리 기다려도 남자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그때는 몰랐다. 바지락을 캐본 적도 없다. 낚시해 본 적도 없다. 섬? 제주도 빼고 처음이다. 점심때를 넘기고도 한참을 지나 우리를 데리러 온 배에 멀뚱히 선 남편의 표정에도 미안함이 역력했다. 심지어 낙지도 못 잡았다. 도끼 눈을 뜬 내게 미안해하는 남편의 얼굴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먹기는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 앞이라 대놓고 말하진 못했지만 검은 아우라를 풍기며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내 눈치를 안 본 사람이 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잔소리를 바가지로 해댔다. 왜 이런 상황을 똑바로 전달하지 않았느냐고. “나도 몰랐지.” 남편의 변명 따위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살아 보니 알겠다. 내 남편도 나이만 들었지 운동 말고 쥐뿔 아무것도 모르는 맹탕이다.   

   

심기 불편한 며느리 눈치를 살피던 부모님도 조용히 한 자루 주웠던 총알고둥과 고랑따개비를 밖에 갖다 버렸다. 언제 그런 걸 일일이 손질하고 입으로 빨아먹냐며 괜한 걸 주워오셨다고 입이 댓 발은 나와서 투덜댔으니 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도 힘겨워하셨지만, 아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대신 마누라한테 말로 실컷 두들겨 맞고 있었으니까. 말리지도 못하고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 간 날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남겨진 사진 속 아이를 보며 이제는 웃으며 말한다. 고향은 경기도 양평, 포항에서 쭉 자라 당진에 정착한 지 5년이 안 된 남편도 낙지를 잡으러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바지락을 안 캐고도 소풍 가듯 가서 놀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고, 함께 한자리에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형님들과 형수님이 즉석에서 바지락과 낙지를 넣은 칼국수를 끓여 줄 줄 알았다고.   

   


사진으로 남은 우리의 첫 갯벌체험 학습. 비록 갯벌에 발 한번 들이지 않았지만 삐지고 싸웠던 아픈 날도 돌이켜보니 다시 없을 추억이 되었다. 순진했던 젊은 부부의 좌충우돌 신혼일기로 마음 깊은 곳에 영원히 각인되었다. 사람은 싸우면서 정든다. 어릴 때는 힘겨웠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적절한 다툼은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때 이후로 바지락을 캐러 가자는 말에는 응답하지 않는다. 말없이 웃기만 한다. 잘 다녀오라 인사만 한다. 바지락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섬? 준비 없이, 사전 정보 없이 놀러 안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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