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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ug 07. 2023

9. 해물파전 한 접시 덕분에 들은 목소리

402호

‘개과천선할 거야’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교회 열심히 말씀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지만 실패. ‘자모 실에서 예배드리는 아기 엄마들은 예배 중에 왜 서로 대화를 할까. 눈앞에선 어린 아기들이 모니터를 가리고 울고, 떠들고 가뜩이나 가만 안 있는데’ 한숨만 새어 나왔다. 큰딸을 다른 아이 엄마에게 부탁하고 본당에 살그머니 들어가 앉았다. 졸음이 쏟아졌다. ‘꾸벅 왜 이러지?’ 말씀 듣기 실패!      


‘착하게 살아야겠다. 죽어서 지옥 가면 어떡해’라고 생각할 무렵부터 말씀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었다. 그러나 말씀은 원한다고 해서 들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말씀은 아무나 들을 수 없다는 함정이 있었다. 새 아파트 입주가 얼마 남지 않아 기도했다.

“하나님 저 이사 가는 거 아시죠? 이사 가면 집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말씀이 들리는 교회에 가게 해주세요”   

  

입주하던 날, 아파트 중앙광장 입구에서 포장을 치고 어깨에 띠를 두른 친절한 교회분들을 만났다. 부침개를 부쳐 나눠주며 전도를 하고 계셨다. 

“저 혹시 교회가 멀까요?” 

“아니요. 저기 보이는 교회예요.”

“아! 그럼 집에 한 번 오실래요. 저는 OOO동 1202호 살아요.”    

  

전화번호를 남겼다. 하루 이틀 사흘.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지나다니며 그 교회를 쳐다보았다. 한번 가봐야지 생각했지만, 몸도 무겁고 맘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내 힘으로 가까운 교회 찾기 실패!   

  

사진: Unsplash의 Kind and Curious

임신 8개월 차. 명치는 치받치고 소화도 안 되고 등을 바닥에 깔고 누워보지만 잠시도 더 그렇게 있을 수 없었다. 거칠게 한숨을 내뱉으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자주 몸은 퉁퉁 부었고 배도 뭉쳐서 묵직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마음이었다. 마치 부풀어 오른 가시 복어처럼 볼메어 있고 화기는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였다. 시원하게 마음의 숨을 내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는데 독기만 스멀스멀 김새듯 나왔다. 

     

알 수 없는 분노에 계속 시달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에게 수시로 화를 냈다. 감정을 마구 쏟아부었다. 인간은 사악해지면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괴롭힌다. 미운 마음이 극에 달했다. 물을 엎질러도 째려보면서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어. 안 했어.” 그리고 ‘퍽’ 등 짝을 한 대 때린다. 분노조절 실패! “아니! 안돼. 안된다고 했지.” “그만해 엄마도 힘들어.” ‘꽥’ 소리를 지른다. 분노조절 실패! 실패!     

 

‘그 엄마 애는 안 키우는 게 낫겠다’ 

누군가 내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게 먼저는 말을 잘 걸지 않았다. 일단 얼굴에 표정이 별로 없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말 걸기 어렵다고 했다. 도도해 보이기도 하고 까칠할 것 같기도 하다 했다. 무엇보다 입을 열면 목소리가 각이 졌고 사람을 압도해서 다가가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 내게 대낮처럼 환하게 온 얼굴로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 사람이 있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였다.   

   

“몇 동에 사세요?”

“113동이요”

“어머 저도 113동 살아요.”

“아~ 네.”

“저는 402호 살아요. 놀러 오세요.”     

사진: Unsplash의 Kate Kozyrka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402호였다. 문을 열고 나가니 놀이터에서처럼 또 밝게 웃으며 손에 든 접시를 내게 건넸다. 해물파전이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좋았다. 맛있게 먹었다.  

    

출산일도 가까웠고 몸은 무겁고 짜증만 가득했다. 안절부절 앉아 있는데 정수기 위에 덩그러니 402호가 놓고 간 접시가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빈 접시가 2주째 방치되고 있었다. 음식을 해서 주는 건 무리다 싶어 남편에게 과일을 사 오라 했건만 운동이 뭔지 남편은 늘 깜빡하고 빈손으로 들어왔다. 그날따라 유난히 접시가 거슬렸다. 내면에서 복싱선수 스텝 밟는 소리, 거칠게 내뱉은 숨소리가 들렸다. 짜증을 억누르고 홀린 듯 빈 접시를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띵 동’  

   

문이 열리고 402호가 나왔다. 슬쩍 비친 집 안 풍경은 마치 잔치가 열린 듯 즐거워 보였다. 현관에 신발이 잔뜩 깔려 있었고, 거실은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느낌인데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접시를 내밀며 주저리주저리 변명하고는 돌아서려는데 안에서 쇳소리 섞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워요. 들어오세요.” 승강기에서 몇 번 마주쳤던 인상 좋은 교회 권사님이었다. 402호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얼떨결에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보는 얼굴이 하나, 둘, 셋, 7명쯤 되는 것 같았다. 거실에 빙 둘러앉은 사람들이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만나고 싶어 기도했는데 이렇게 오셨네요. 같이 예배드립시다.”

“아아 그게, …… 네”

어색하게 앉아 부끄러운 대답을 내뱉는 내게 권사님은 몇 마디의 말을 더 걸었고, 이어 생각지 못한 말씀을 하셨다. “말씀은 이사야 43장입니다.” 빈손으로 앉아 뻘쭘한 내게 402호가 성경을 펼쳐 건넸다.   

   

사진: Unsplash의 Joel Muniz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렸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네 구원자임이라 

    

툭 터지듯 눈물이 나왔다. 시키지 않은 말도 터져 나왔다. 성경을 다 읽지 못했고 목소리가 떨렸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네요. 사실 저 많이 힘들었는데.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네요. 처음 알았어요. 너는 내 것이라니 어떻게 이런 말이 있을 수가 있지 ……”      

권사님은 미소를 지었고 많은 말을 했지만, 성경 말씀이 마음을 가득 채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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