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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Oct 06. 2023

15. 얼굴에서 빛이 나는 사람은 언젠가

또 다른 길 위에 서서

2018년 6월의 마지막 날. 10년을 섬긴 지역의 성도들과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교회 집사님이 운영하는 식당의 넓은 방을 빌렸고, 20여 명 정도의 성도가 한자리에 모였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려는데 앞에 나서는 거 싫어하는 미영 집사가 갑자기 모두를 멈춰 세웠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402호 손에 이끌려 그녀의 집에서 진하게 주님을 만난 이후로 교회와 마치 한 몸인 듯 그렇게 살았다.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설교 말씀이 좋았고, 목사님이 좋았다. 성경 읽는 것도 재미있고, 찬송가를 부르는 그 순간도 행복했다.

    

첫사랑의 감격에 뜨겁던 나는 어설픈 언어로 마음만 혼란스럽게 하는 구역장이 예배를 인도해도 은혜받았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기도하는 순간이 더 할 수 없이 좋았다. 자동 반사처럼 나오는 “예수 믿으세요.” 사람들이 거절해도 힘들거나 지치지 않았다.

     

행복한 사람. 뭐든 좋아서 열심히 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빛이 난다. 오래 교회를 다니다 보니 은혜받은 사람의 얼굴은 눈에 띄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충만한 사람을 보면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느꼈다. 그때 나도 그랬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었고 내게 이일, 저일 제안해 왔다. 교사를 해봐라. 찬양팀에서 노래를 불러보면 어떻겠냐. 전도팀을 하자.

    

오래 망설이다 유치부 교사부터 시작해 구역을 맡았다. 심방과 양육을 전문으로 하는 팀에 들어가서 믿음 좋은 권사님, 집사님을 따라다녔다. 찬양팀에서 노래를 불렀고 교회에 출석한 지 5년 만에 아들을 얻었다. 아파트 광장에서 마주친 전도사님은 이 지역을 맡아서 돌보라고 했다. 이제 100일 된 아들 업고 용기도 없었지만, 강하게 말씀하시는 전도사님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어설픈 지역장이 되었다.

     

구역장은 3~7명 내외의 소그룹을 이끌고 지도하는 장의 역할을 한다. 구역으로 묶인 성도들과 주 1회 예배를 드린다. 예배 출석을 돕는 등 필요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자신의 구역원들을 섬기는 일을 하며, 지역장을 도와 교회 내 다른 봉사의 일을 하기도 한다.  

    

지역장은 본인도 구역장을 하면서 구역장들을 섬긴다. 구역에 속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돌보는 지역 안에 사는 성도들을 섬긴다. 그들이 소외되지 않고 교회와 지역에서 믿음의 사람들과 정을 붙이고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 여러 봉사의 일에 솔선수범하여 본을 보인다. 교회와 목사님으로부터 일정한 리더십 관련 교육과 성경, 인성교육을 받아 지역 내에서 성경 공부를 지도한다.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 사이, 그보다 먼 거리는 마음과 행동 사이라 했다. 모든 교육의 내용은 버릴 것 없이 좋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때로는 아는 것이 나인 양 착각하기도 했고 오래 고생하며 시행착오를 거쳐 고통스럽게 체득되기도 했다. 그러고도 내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사람의 성격과 취향, 생각은 너무도 다양했고 상황에 따라 새롭게 접근해야 했다. 확신이 깊어지는 반면 내가 틀릴 때도 있다는 것을 배워갔다.

    

누군가에게는 적절한 교육이 필요했고 어떤 경우엔 들어줘야 했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나서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마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갔다. 말은 설득력 있게 하려고 애썼지만 어떠한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 성향상 설득을 하는 편이라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해도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순종했고, 상황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누군가를 섬기고 가르치고 교훈했으며 지도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누구보다 나 자신이 성장하고 세워져 갔다. 내가 변화된 만큼 하나님은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셨다.

     

교회는 다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 예배는 주일에만 드리면 되는 줄 아는 사람, 말씀을 전혀 모르는 사람, 도저히 앞에 나서서 사람을 이끄는 일은 못 하겠다는 사람, 기도의 필요성을 몰랐던 사람 등 필요한 부분을 만져 하나님과 교회에 유익한 사람들로 세워가셨다.

     

미영 집사는 내가 첫 구역을 맡았을 때 구역원이었던 혜영 언니의 친구였다. 예배를 마치자 조곤조곤 얌전히 말하는 혜영 언니가 여전히 그 부드러운 말씨와 상냥한 존대로 내게 말했다.

“전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친구고 집사님과 같은 동에 살아요. 기도하고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같이 한 번 가실래요?”

“좋아요. 언제 갈까요?”

    

미영 집사와 나는 그렇게 만났다. 오래 망설이며 조용히 내 말을 듣기만 하던 그녀가 예배에 참석하겠다고 했을 때 기분이 생각난다. 주일 10시 20분. 그녀는 나보다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막 1층 현관을 나왔을 때, 주차장 앞에 서서 반갑게 웃던 그녀 모습이 생생하다. 말끔한 그녀 모습을 보았을 때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까. 박하사탕을 입에 문 듯한 청량감이 마음에 가득했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고, 교회를 가네, 마네 속 썩인 적이 없다.

     

지역장이랍시고 어줍은 권면을 해도 내게 늘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었던 신실한 사람. 미영 집사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사람들 앞에 섰다. 상패를 꺼내 든 미영 집사는 그동안 지역 사람들 섬기느라 고생했다며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았다고 ‘감사하다’ 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대접을 받나.’  

   

사실 지역장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소진되었던 것인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이전만 못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도하고 있었다. 이제 다른 봉사의 일을 하거나 지역 일은 그만두고 싶다고. 미루어 두었던 공부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던 찰나, 지역장을 그만두게 되는 좋은 계기가 생겼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았다.  

    

그래서였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하진 못했지만, 그만두고 싶던 일을 그만둔 것이라 지역 사람들 마음이 담긴 감사패가 버거웠다. 고개를 떨구고 부끄러운 얼굴을 가렸다.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꼭꼭 숨겨 두었던 감사패를 지금은 내 책상 위에 세워두었다. 감사패를 볼 때마다 어깨가 쑥 올라가고 허리가 세워지며 힘을 얻는다. 나 자신을 위로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를 지지하고 사랑해 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느낌은 인생 첫 아이스크림 맛처럼 달콤하고 황홀하니까.

    

나는 이제 많은 것을 잊었다. 하나님의 일이었지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회 예배당에서 나와 함께 울고 웃고, 기도하고 말씀의 감격을 나누며 성장한 사랑스러운 집사님들을 볼 때면 그저 행복해할 뿐. 그리고 이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간다.

     

일일이 내게 묻고 모든 일을 FM으로 처리했던 백선영 집사와 근본이 바르고 지혜로운 정미선 집사는 지역장이 되었다.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을 안 해 오래 기도하며 찾아가기를 수십 번, 몇 번을 포기하고 싶었던 오소해 집사는 믿음으로 살며 비전 스쿨 교사와 영상 및 사진 촬영으로 섬긴다. 진미영 집사는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을 찾았고 여전히 밝고 기분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소소하게 돈벌이를 하면서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 상담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여전히 내가 섬기던 지역에서 작은 구역을 맡아 사람들을 섬긴다. 내 삶은 이 도시와 점점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내 아이들에게 고향인 이곳을 떠나긴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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