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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머만을 위하여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by Moon Dec 02. 2024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 Krystian Zimerman, Seiji Ozawa, Boston Symphony Orchestra

- 2000.12. 보스턴, 보스턴 심포니홀



Episode.1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 제가 너무나 감동적으로 봤던 한국영화가 있었습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엄정화가 동네 피아노 학원 선생님으로 등장하는데요. 불우한 환경에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년을 만납니다. 주인공은 이 소년의 천부적 음악성을 발견하고 헌신적인 노력을 다해 결국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키워냅니다.

주인공의 품을 떠나 유학하고 돌아온 소년은 훌쩍 자라 귀국 연주회를 여는데 바로 오늘 소개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합니다.




Episode.2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자신을 진료해 준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하였습니다. 자신의 교향곡 1번이 대실패 한 이후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극도의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실의에 빠진 자신을 구제해 준 달 박사에게 이 곡을 헌정한 것이지요. 이 곡의 완전한 성공을 바탕으로 자존감을 되찾으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영화에서 소년이 불우한 어린 시절 부모의 마음으로 자신을 길러준 선생님께 그 무한한 은혜에 대한 헌사로 라흐마니노프의 이 곡을 바치는 모습은 우연이 아니었겠지요.




Episode.3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로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불립니다. 젊은 시절 미국으로 망명해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칩니다. 만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리사이틀은 심금을 울리는 명연으로 칭송받는데요. 이 스토리 역시 묘하게 영화와 오버랩되더라고요. 



Episode.4


멀리서 울려 퍼지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 같은 서주를 시작으로 격정적이고 유장한 1악장이 연주됩니다. 2악장은 러시아 낭만주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명상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악장 전체를 이루고 마치 달 박사에게 치유받은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정신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합니다. 3악장에서는 화려하고 박력 있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연주로부터 시작해 피날레에서는 환희와 승리의 느낌으로 마무리됩니다.





Episode.5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크리스티안 짐머만은 세이지 오자와가 이끄는 보스턴 심포니와 극도로 세심한 라흐마니노프를 들려줍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연주가 서늘하고 날카로운 러시아의 서정을 빈틈없는 아름다움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오자와의 반주가 너무나 아쉽습니다. 정반합 미학의 극치인 협주곡에서 피아노만 너무 부각된 것이지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이 아닌 짐머만의 피아노협주곡 같다고나 할까요.

<짐머만을 위하여>


짐머만의 피아니시즘을 만끽하기엔 최고의 연주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러나 그 단점을 상쇄할 만큼 아름다운 결과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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