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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포포 Oct 24. 2021

안전한 일탈

그에겐 두 개의 삶이 있었다

“아빠, 근데 겨울엔 왜 천둥이 안 쳐?”


그는 그 이유도 설명해 줬다. 그는 딸에게 말을 하며 자신이 밀회에 가고 있고,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에겐 두 개의 삶이 있었다.

하나는, 필요하다면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삶, 조건적 진실과 조건적 속임으로 가득하며 그의 지인들과 친구들의 삶과도 완전히 닮아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밀리에 흘러가는 삶이다. 그런데 왠지 상황의 이상한 일치에 의해, 아마 우연이겠지만 그에게 중요하고 재미있고 필수적인 것들, 그가 진심으로 대하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며, 인생의 알멩이를 이루는 것들은 남몰래 비밀스레 이루어졌다. 그리고 거짓인 것, 진실을 감추려고 덮어쓰고 있는 껍데기, 예를 들어 은행 업무, 클럽에서의 논쟁, 그의 ‘천한 종족’, 아내와 함께 기념행사에 다니는 일은 전부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판단했고,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은 밤의 베일 같은 비밀의 베일 속에서 그의 진짜이자 가장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모든 개인이라는 존재는 비밀에 의해 지탱되고, 부분적이겠지만 아마 이러한 이유로 교양인이 개인의 비밀 존중에 대해 그토록 민감하게 구는 게 아닐까. 


p262, 263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새움 2019




아이가 있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 우리 둘의 사랑의 결실이라는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점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잊어갔다.


대개 사람들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제멋대로에,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며, 자신의 배고픔과 불편함을 쉼없이 표출한다. 부모는 그들의 표효를 받아주지만, 타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집이 아닌곳에서 밥을 먹어야할 때면 필연적으로 북적여 우리 아이의 목소리라 돋보이게 드러나지 않는곳. 이를테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솥이 걸린 국밥집. 소란스러움이 마치 그 집의 인테리어인냥 기승을 부리는 곳이면 오히려 더 반가웠다. 국밥집, 삼계탕집, 백반집이라고 불리는 식당은 대놓고 아이를 둘이나 동반한 손님을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았고, 우리도 밥을 먹는 그 순간은 잠시나마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늘 등뒤에 따라다니는 긴장감 같은 것을 말이다.

밥을 먹고 얼음을 가득 넣어 흰우유와 에스프레소가 천천히 섞이는 아이스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일상이 이어져갔다. 


그러다 가끔 숨을 내뱉듯 찾아오는 약속이 있었다. 우리는 아이를 같이 낳으며 알게 된 사이다. 그곳은 여느 산부인과와는 달랐고, 산부인가 전문의라는 사람이 없는, 대신에 국내에서 출생증명서를 쓸 수 있는 유일한 3인중 한 명인 ‘조산사’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의사, 한의사, 조산사가 출생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는 출생신고의 근거로 사용되며, 의료법 시행규칙에 법령서식이 있다. (출처 https://namu.wiki/w/출생증명서) 그곳에서 자연주의를 표방한 출산을 경험하면서, 출산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여성 2명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종종 아이를 매개로 만났지만, 아이들이 취학을 하면서 자연스레 아이가 없는 시간에 만나게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 아이가-“에서 ”저는-“으로 바뀌어 갔다. 그것은 실로 오랜만인 경험이었다. 아이가 아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순수한 관심. 비정기적으로 조조영화를 보면서, 서로의 영화 취향을 알아가고, 영화제가 개최될때는 두 사람의 취향을 신중하게 고려한 한 편의 영화를. 봄을 여는 장범준의 콘서트에도 두 사람의 좌석이 예약되곤 했다.


때로는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은 이런데서 찾아왔다.

내일 아침에 영화보고 밥먹을 시간까지 될까요? 테이블 4개만 있는 다이닝이 있는데 미리 예약해 둘께요.


그게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그날의 메뉴에 맞는 식전 주를 한잔 씩 곁들이며 평소에는 지을일이 별로 없는 표정을 하고선 오늘의 날씨나 지난주에 읽었던 책이나 그녀를 찾아온 환자들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꺼내 놓곤 했다. 그 대화의 주고받음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우리의 대화는 오래도록 합을 맞춰 결코 공이 땅에 닿을리 없는 테니스의 복식조 같았다.


연인의 설레임은 결혼과 함께 사라진다. 그것은 결혼의 필연성이라기보다는, 결국 결혼 마저도 일상으로 수렴되고야 말기에 일상이란 것의 지난함은 마치 블랙홀과 같이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미세한 떨림, 순간의 기쁨, 빛과 같은 상대방의 존재 그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야 마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기혼여성에게서 발견되는 사랑과 존중, 설레임과 떨림은 보통 남편이 아닌 이에게서 발현되곤 한다. 그것은 굳이 섹슈얼리티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주는 각양각색의 감정 모두를 포함하는데 이러한 점이 결혼이 지닌 비극성을 극대화시키는 듯하다.


내가 맺는 안전한 관계 속에서 때로 나는 존중 받고, 사랑을 하던 때의 연인이 내게 가졌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다시금 체험하며, 그것이 내 인생을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내게 매우 안전한 일탈이며, 결혼 이후 내게 주어진 역할 속에서도 고유한 ‘나’를 잃지 않게 만드는 내면의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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