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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포포 Oct 24. 2021

결혼은 모든 것에서 말도 안되는 것들 투성이다

집안에 며느리가 생기면 갑자기 가부장적 행사가 시작되는 현상.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재치 있는 사람들이 ‘시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는 제사, 명절, 김장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전통적인 가정 행사에서 비교적 자유롭던 집안도 ‘며느리가 들어오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그러고는 지금껏 생략하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전통 행사에 점차 시동이 걸린다. “우리 집은 제사 안 지내”라는 남자친구의 말 속에는 발화자조차 모르지만 ‘지금은’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 셈이다. 


p61, 「결혼 고발」, 사월날씨, arte 2019




‘가족행사’라는 명목으로 낮 시간부터 시어머니의 호출이 온다. 다같이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어머님 종교행사에 모든 가족이 참석하는 날이라는 짧은 설명이 달린다. 당시 6개월이 지난 첫째를 아기띠로 안아 매고서 시댁을 찾아갔다. 좀 있으니 아직은 신혼인 동서가 예쁘게 차려입고 들어선다. ‘만찬’이라는 소리에 어디가서 거하게 좋은 걸 먹나 싶었더니, 저녁은 집에서 조촐히 삼겹살에 김치와 버섯을 곁들여 구운 게 전부다.

머리를 올리고, 감색 원피스에 스카프까지 두르신 어머님의 모습이 퍽 멋을 내신 듯하다. (중요한 날인가보네) 바깥은 어둠이 내린 저녁인데, 이집의 아들들은 나타날 줄을 모른다. 남편은 본가에서 1시간 반을 가야 도착하는 시외지역에서 근무중이었고, 도련님, 즉 어머님의 작은 아들은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는지라 언제 마감을 하고 올지는 그때그때 달랐기에 그저 오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8시에 시작하는 행사에 먼저 어머님 차를 타고 떠났다. 그날의 행사는 1시간 가량 이어졌고, 사실 가족행사라기 보다는 종교활동을 하는 가족들이 팀으로 예배에 참석한 그런 날이었다. 어머님의 두 며느리였던 우리 역할은 어머님 곁에 서서 사람좋은 미소띄우며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아는 척을 해주시는 어르신들게 인사하는 것, 어머님의 아름다운 들러리들, 바로 그것이었다. ‘만찬’은 이 종교에서 하나님이 다시 부활함을 기리는 행사로 내가 생각한 ‘만찬’과는 아주 다른 의미였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저녁때 든든하게 먹고 나설걸 이라는 뒤늦은 후회만 맛보았다.


집에 가니 가게를 마친 도련님이 와 있었다. 아 이게 시가 스타트업이로구나! 결혼 전에는 두 아들 중 한 명도 이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때 모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남편은 이 행사의 전후사정에 대해서 나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본인도 이 행사가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가족의 범주에서 생계와, 직장 때문에 바쁜 남자는 자연스럽게 열외가 인정되고, 소위 집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재생산 노동에 참여하는 여자의 경우에는 별일 없으면(사전에 고지되지 않은 어떤 일, 약속) 반드시 참석해야하는 이 상황에 뜻모를 분노가 올라왔다.


종교가 있기에 명절의 제사는 프리패스겠네.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실 종교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머님이 해오신 요식업 덕분에 명절은 또 다른 의미로 대목이었다. 이바지음식을 만드는 가게를 운영하셨기에 진짜 대목은 설, 추석명절이었다. 이 시기가 되면 3일전부터 가게는 문을 닫지 않고 풀가동된다. 돌아가며 밤을 새면서 음식을 만들고 주문 받은 제품을 익일 수령가능하게 밤샘작업을 이어간다. 첫 연애를 하고 맞은 설날에 하도 남자친구(남편)이 연락이 없어서, 설연휴기간동안 엄청 사이가 틀어진적이 있었다. 알고보니 남편은 명절이 되기 3일전부터 가게에 투입되어 3-4시간 정도 눈을 붙이며 내도록 일을 하는 것이었다.(체험삶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고는 명절 당일부터는 가게를 닫고 3,4일은 내도록 쉬면서 재충전을 한다. 그렇기에 따로 명절을 챙기지도, 음식을 하지도 않고, 보통은 명절 다음날 여행을 떠나곤 했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만 들었지. 한 해에 며느리 두 명을 본 우리 어머님의 명절 그림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명절 전 날까지는 24시간 풀가동으로 일을 하지만, 명절 당일날은 우리도 다른 집처럼 제사를 뺀 나머지 세레머니는 하길 바랐던 것이다. 큰 상을 펴고 이것저것 음식을 예쁘게 담아 한상 떡 차려놓고 가족끼리 둘러 앉아 먹는 풍경. 우리가 생각하는 명절 풍경 바로 그것을 어머님댁 거실에서 구현해보자는 것이었다. 27살에 결혼 한 나와 동서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갈비찜 하나, 명절 나물 몇 가지. 한상 차리는 것 역시 일가족이 한 팀이 되어 음식을 장만하고, 썰고, 굽고, 지지고, 튀기고 해야 차려지는 것. 어머님 역시 이제껏 명절 상을 차려본 적이 없으니, 이 빈곤한 상 앞에서 솔직한 리액션이 나왔다.

“꼴랑 이것 뿐이가?”

‘아니 어머님 돈을 벌려면 명절상을 포기해야하고, 명절상을 차리려거든 전날 모여서 음식을 해야하는 것인데. 보통 다른 집들은 다 어머님이 진두지휘해서 하시는데.’ 라는 말은 입안을 맴돌며 웃지도 울지도 않는 묘한 표정만 짓고 앉았을 뿐이었다. 그 말이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명절 지나고도 한참이나 나를 괴롭혔다. 남편은 그냥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한 거고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고 했지만(우리 엄마가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니다.) 그 다음 명절에는 그저 갈비찜 한 솥만으로 내 몫을 다했소 하고 앉아 있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결혼과 종교가 만나면 참 재밌는 역학반응이 일어나는데, 그 중 하나는 생일이다.

생일을 챙기지 않는 종교다. 성경에서 부부됨의 가치를 중시하기에 부부의 결혼기념일은 챙긴다. 그러나 허례허식에 속하는 생일축하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나의 생일도, 아이들의 생일도, 생일축하합니다. 후- 하고 불을 끄는 행위는 일체 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의외로 생일케익이라는 것이 코어한 의식인데 한편으로는 손주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는 할머니에게 애들 입장에서는 약간 섭섭한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는 이것이다. 어머님의 생신이 3월에 있는데, 그날은 꼭 모인다. 어머님 가까이 사는 도련님의 주관하에 모이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어머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만나서 어머님 생신 축하드려요. 라고 표면적으로 인사는 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다음 해 맞이한 어머님 생신날 케익을 사들고 갔다가 어찌어찌 초에 불도 붙이고 하긴 했는데, 어머님은 우리는 이런 건 안한다고 웃음기 싹 뺀 얼굴로 말하셔서 사실 굉장히 상처를 받은 바 있다. (남편 본인은 왜 이런 부분을 이야기 안 해주십니까. 했잖아. 강력하게 이런 축하의식은 안한다고 말했어야지.) 아들, 며느리, 손자들 생일은 일절 모르쇠로 지나가면서, 본인 생일날이라고 모이는 것은 암묵적으로 오케이 하는 어머님의 태도에 홀로 언짢았다.

한 해 전 어머님의 환갑에도 환갑축하라는 명목은 괄호에 넣고 가족 식사라는 이름으로 호텔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고, 그 해 환갑기념으로 사이판 여행도 다녀오셨다. (저녁식사는 큰 집인 우리가, 사이판 여행은 동서네가 예약을 해드렸다) 이 모든 것에 물음표를 달아본다. 


나의 시부모는 대체로 점잖고 상식적인 분들이다. 젠더 문제를 제외하면 교류하는 데 큰 불만이나 불편이 없는 분들이다. 그러나


내가 그분들을 며느리로서 만난 이상

젠더 문제는 우리 관계의 전부나 다름없다.


p77, 「결혼 고발」, 사월날씨, ar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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