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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포포 Oct 24. 2021

내 젠더, 니 젠더, 세상 젠더

정상성에 집착과 좌절

젠더는 때때로 온유하다. 내 몸 안에 싸악 스며들어 비싼 가습기의 고운 입자처럼 뿜뿜한다. 나 역시 그것이 편안하고 무려 행복한 듯 하다. 안온히 수행한다. 게다가 이런 젠더와의 한시적 휴전에 걸맞은 파트너까지 이 시점에 마련된다면, 아 이거였네- 손뼉을 치며 수행 그저 또 수행한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으로 뭘 어떻게 해주진 않는다. 나도 내 젠더도, 너도 니 젠더도, 세상도 세상 젠더도 각자의 입체적 회전을 하던 중에 잠깐 맞물렸을 뿐이다. 그 맞물림, 그 일시적 정상성은 그래서 그토록 달콤하다. 거의 세상에는 없는 달콤함이라고 보면 된다. 드물다시피 없다. 


p179, 「이웃집퀴어 이반지하 에세이」, 이반지하, 문학동네 2021




내가 마치 앞에 놓인 과제를 하듯 쉬지않고 연애를 했던 이유는, 정상처럼 보이고 싶고,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반증하고 싶어서였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마치 대학입학 다음에 해야 할 과제는 연애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나섰고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두려워하지 않았다.내가 처음 사귀었던 남자아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내가 그를 좋아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든 그와는 편하게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남자든 여자든 할 것없이 베프가 되었다. 나는 그 아이를 선망했다. 마치 그 아이와 사귀면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 마냥.  5월 잔디 광장에서 열린 축제에서 함께 그 아이와 나는 뒷정리로 나온 어마어마한 설거지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어진 뒷풀이에 진땅 취해버린 나는 학생회관 2층의 여학우 휴게실에 엎어져 잠들어 버렸다. 어슴프레한 새벽의 빛과 함께 누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돌아보니 그 아이가 낡고 칠이 벗겨진 철제 의자에 내 가방을 안고 앉아 있었다. 아침이야. 집에 가야지. 얘는 왜 내 가방을 갖고 있는거지? 술도 약한 애가 밤새 어떻게 버텼을까. 하며 시작된 우리는 여름방학에 접어들며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연인도, 사랑도 몰랐던 그 아이는 주로 나를 외롭게 했고, 나 역시 그 아이의 사랑이 아닌 인정이 고팠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3년을 만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가 나를 사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맺는 여러 관계 중 좀 더 적극적인 내가 있어 가능했던, 그런 우정도 사랑도 아닌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후로도 연애를 했지만, 주로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늘 관계에서 도망쳤다. 관계가 오래 이어지기를 주저했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은 늘 공허한 상태로 지냈다. 


대여섯명의 남자와의 연애에서 2명과 잠자리를 가졌지만, 동정을 갓 떼지 못했던 첫 연애의 대상과는 거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서로를 취했다. 그리고 애석하게 한 명은 서지 않았다. 성적인 매력이 빠진 관계에서 오는 허허함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오래지 않아 헤어졌지만, 그도 나에게도 모두 상처로 남은 연애였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것이었다. 나는 남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처음 그가 내 안으로 들어올 때만 느꼈고, 그 다음은 대개 무감각했다. 상대가 점점 들뜨는 것과 달리 나는 점점 침잠했다. 가짜 기쁨을 연기해야 함에 지쳤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는데, 혼자서 심취한 그들과는 전혀 교감이 되지 않았다.


 이건 사실 결혼생활에서도 비슷한데, 절정에 닿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이 레이스에서 의무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사력을 다하며 그를 멱살잡아 오르가슴의 언덕으로 오른다. 10km 등산을 한 날보다, 오전에 가진 동반자와의 잠자리가 운동이 더욱 몸을 피곤하게 만든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며 두 주인공이 하얀 침대위에서 서서히 서로를 만지면서 같이 도달해가는 그 모습에 나는 혼자 달아 올랐다. 저렇게 서서히 같은 속도로 도달할 순 없을까. 부드럽고 서로를 소중하게 대하는 사랑법은 없을까.


내가 남은 날들을 살아가면서 늘 거짓된 오르가즘과 성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정말 자신이 꿈꾸는 사랑과 성생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어떤 날, 평범한 날이었다. 낮이었고, 남편의 컴퓨터를 빌려 쓰던 중, 곰플레이어를 실행 시켰다. 음악이나 들어볼까하고 최근 파일을 여는 명령어를 입력하니 낯선 폴더명의 경로가 화면에 뜬다. 남편의 사적인 저장공간이었다. 의도치 않게 남편의 성적 취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야동도 월별로 업데이트하며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서 실소가 나기도 했지만, 그 안의 내용들이 대학생, 몸캠, 기타 등등 살면서 내가 한 번도 검색해본 적 없는 키워드의 영상들이라 주욱 스크롤을 내리면서 점점 불쾌함이 커졌다. 내 취향은 아니네. 물론 남편에게도 나란 존재는 그렇게 여겨지겠지. 스크롤 끝에 도착한 감정은 내가 남편이 원하는 바를 이뤄줄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각자의 판타지는 판타지로 존재할 뿐이다. 그게 그렇게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지점에 결코 도달할 수 없겠구나.


그럼 뭐야. 그렇군, 형편이 더 나빠져서군. 돈 때문이니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건 돈이니까. 아녜요. 슬픔 때문예요. 종말에 대한 슬픔이 섹스를 만든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슬픔이 우리들의 섹스를 만들어요. 사람들은 슬퍼하고 있어요. (중략) 

그래요,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슬픔예요. 그 슬픔은 특히 남자들을 사로잡고 있어요. 그 슬픔이 남자들의 윤리를 허물어뜨려요. 윤리란 미래적인 거죠. 우리에겐 미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허물어진 남자들이 여자를 지배하고 있고요. 그래서 모두 슬픈 거예요. 


p15, 16 「차나한잔 - '서울의 달빛 0장'」, 김승옥, 민음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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