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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포포 Oct 24. 2021

나는 아내이며, 엄마가 되었다

그것은 내가 한 역할들 중에서 가장 최하의 퍼포먼스로 기록되고 있다

토레 선생님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선생님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뒤라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경험했어요. 다른 모든 여성들처럼, 일에서 벗어나 휴식할 때 나를 곁에 두고 싶어 하거나 그냥 내가 집에 있기를 바라는 남자 곁에서 지치고 지겨워졌죠. 많은 경우 내가 글을 쓰는 곳은 바로, 집이고 부엌이었어요. 집에서 나간 남자들이 남긴 빈자리가 좋아지기 시작했죠. 거기서 비로소 생각을 할 수 있었거나, 아니면 결과적으로 마찬가지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p188, 「뒤라스의 말」, 마르그리트 뒤라스/ 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 마음산책 2021




나는 그게 늘 마음에 안들었다. 천사처럼 하얀 변기에 불쾌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얼룩들. 변기 뒤에 세워둔 락스를 꺼내 변기의 테두리에 살살살 붓는다. 청소 솔로 박박 문지르며 변기 옆 청소용 호스의 물을 힘껏 분사한다. 우리집은 남자가 세명이다. 매일 오전에 반복되는 이 일과를 마주하며, 과연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하얀 변기를 박박 닦아야 할까? 생각한다.


우스갯소리로 어느 가정은 서서 소변을 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자 여자를 막론하고 모두 소변은 앉아서 보는 것이 그 집의 룰이라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너무 달라서, 불편한 포인트가 너무나 달라서 생기는 일과의 번잡함, 매일 마주해야하는 그 냄새가 매일 내 처지를 일깨운다. 


장류진 작가의 단편 <연수>에 등장하는 일화는 매우 현실이다.


예전에 우연히 보게 된 어떤 커뮤니티의 글에서 남편의 팬티를 빨 때마다 미세하게 똥이 조금씩 묻어 있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푸념을 본 적이 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공감한다는 댓글들을 보고 한번 더 깜짝 놀랐다. 아마 내가 비혼을 결심하게 된 건 인터넷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전해주는 기혼의 삶을 들여다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끝을 알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디테일을 하나도 모른 채로 누군가와 결혼했으면 어쩔 뻔했나, 그 생각만 하면 그지없이 아찔했다. 안쪽에 똥이 묻어 있는 성인 남자의 후줄근한 트렁크 팬티를 상상하자 참혹함에 온몸이 떨려왔다. 나는 재빨리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브라우저를 닫았다. 남아 팬티 한 개 천원 열 개 팔천원의 세계로부터 황급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내 팬티만 빨면 돼. 그건 팬티 한 장만큼 가벼운 일이었다.


 p260, 261,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연수'」, 장류진, 문학동네 2020


남편의 똥 묻은 팬티를 문질러 빨아 세탁기에 넣어야 하는 일상은 너무도 현실적인 결혼의 면모를 보여준다. 비혼주의자이지만 지역 커뮤니티의 정보를 얻기 위해 지역 맘카페에 가입하는 주인공은 맘카페에서 오고가는 대화들을 통해 결혼에 대한 환상을 지우며 비혼의 의지를 더욱 굳혀간다. 뭐 묻은 팬티는 단편적으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한 예이지만, 실제 결혼은 그보다 치졸한 문제들과 마음 상할 일이 많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돌봄에는 가혹한 면이 있다. 자애롭고 헌신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여자일지라도 그 어머니의 동일시되지 않는다. 더욱 요즘처럼 자기인식이 강하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랐다면 더욱 그 반대 지점에 놓일 경우가 높다.


외출 중이더라도 5시까지는 돌아왔던 엄마, 돌아와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주방에 가스렌지 불부터 켜던 엄마의 모습. 술에 취해 방안 가득 술냄새가 나더라도 아빠 옆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자던 엄마. 여름 볕에 내도록 달궈진 남서향집에서도 에어컨 하나없이 좁은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 여름이면 꿈틀대는 팔뚝만한 장어를 사들고 와 큰 솥에 장어를 넣고 소금을 뿌려 푸다닥 거리는 솥의 뚜껑을 두 손으로 눌러 잡고 서 있던 엄마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보고 자란 것이지만, 나는 결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엄마처럼 고분고분히 여자이며 아내에게 기대되는 덕목을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결혼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자라면서 했던 경험은 내 생일날 차려진 생일상. 그러나 결혼 후 내가 처음 차려야 하는 생일상은 우리 부모님도 아닌 시댁 어른을 위한 생일상이었다.


불교신자인 엄마의 종교생활은 무교인 나와는 무관한 일이나, 시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행사는 마치 가족행사의 일환으로 참여해야하는 상황에 나는 미국의 종교적 자유를 가져다 외치고 싶었다. 여호와는 여호와를 따르는 사람끼리. '무교'도 신을 따르지 않는 의사를 존중받고 싶다.


가족여행을 다녀와도 시댁에 눈치를 봐야하고, 어느 날은 몸이 좋지 않아 집에 머무르는데도 아이들과 남편만 시댁에 왔다고 타박 받아야하는 모든 상황들에 나는 내가 훼손되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데, 왜 나는 ‘며느리’로서만 평가 받아야하는 거지? 아이를 키우는 건 나의 롤(role)중 하나인데 왜 나=엄마, 나=아내로 정의 내려버리는 걸까.


매일 일과를 해내면서도, 동시에 무언가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은 말하고자 하는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것에 도전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책을 다시 집어 들었고,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에 이름을 부여해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내밀한 감정의 바닥까지 다 뱉어내며 나는 자유롭게 썼다. 글쓰기를 하는 순간은 집안일도, 아이도, 남편도 아닌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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