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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Mar 22. 2017

소심한 여행자의 여행

초라한 여행자의 소심한 여행기

사실 난 이 글의 제목을 '초라한 여행자의 소심한 여행기'로 하고 싶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뭔가 근사한 이름의 여행기 제목이 필요하겠지만, 내 여행의 정의는 한마디로 초라한 여행자의 소심한 여행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학 막바지 시절 유럽여행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를 기웃기웃 거리며 산지가 이미 10년을 넘어버렸지만, 난 내세울 대단한 여행기가 그리 많지 않다. 주변 친구들은 '여행을 그만큼이나 했으면 책 한 권은 썼어야지'라는 핀잔을 주곤 하지만 별로 대단할 것 없었던 여행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나의 소심한 성격을 꼭 닮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늘 조용하고, 누구와 있던 적응기간의 속도가 너무나 느려서 최소 일주일은 지내야 누구와 겨우 말을 틀 수 있는 상태가 되고, 같은 장소에서 보통 한 달 정도를 살아야 친구들이 한두 명씩 생기기 시작한다. 남들의 여행기처럼 화려하고도 모험에 가득 찬 여행기이기는커녕 어쩌면 '대체 여행은 왜 다니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나의 여행은 언제나 좌충우돌이다.


게다가 난 세계 문화유산의 화려한 유적지에도 그리 관심이 없다. 이집트 카이로의 피라미드를 낮은 담벼락 너머로 보았을 때도 황량한 그곳에 마음이 가지 않아 들어갈지 말지를 문 앞에서 10분가량 서성인 뒤에야 '그래, 스핑크스를 못 보았으니 들어가긴 해야겠다' 하고 들어갔을 정도이니 말이다. 비록 거대한 피라미드를 바로 눈 앞에서 보았다는 데에는 큰 자긍심이 생겼었지만, 코가 부러져 휑한 스핑크스의 얼굴을 보고선 '아...' 하는 실망의 한숨을 쉬기도 했었다. 그것보다는 작은 골목길 여기저기를 그저 목적 없이 걸어 다니는 것이 더 좋았다.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커다란 밀전병 빵을 쉼 없이 만들고 있는 사람들, 카이로의 복잡한 도로에서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봉고차 안에 꽉꽉 들이차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같이 웃음 짓는 일, 그리고 작은 노천카페에 앉아서 물담배를 피우는 노인들을 훔쳐보며 홍차를 훌쩍대는 시간. 이런 시간들로 가득 찬 나의 여행기를 누가 흥미 있어 하겠는가. 커다란 모험도 없고, 흥미로운 사건이 많지도 않았던 나의 소심한 여행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심한 여행자의 여행기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여태껏 너무 나태하게 지낸 나에 대한 책임감과 그리고 나에게도 어떤 결과물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생겨서이다. 또한 나보다 덜 소심한 사람도 아니면 더 소심한 사람도,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기도 하였다. 


우리 모두의 여행은 각각 다를 것이며 그리고 각각 모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각자 다른 여행길. 


조금씩 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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