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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Sep 11. 2018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을 때


나는 가끔씩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홀연히 혼자 있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거대한 도시인 서울에서는 어디를 가든 나를 모르는  곳을 찾아가기는 아주 쉬웠다. 집을 빠져나와 지하철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혼자이다.

하지만 이웃 사람들과 문을 마주 보며 열어놓고 쉽게 들락날락하는 인도는 조금 다르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옹기종기 붙어 앉아 어깨동무를 하고는 이야기를 나누는 인도인들을 볼 때마다 정말 대. 단. 한. 친화력이군 하고 놀라곤 하니깐.

여기는 인도라는 낯선 나라이지만 그래도 매해 오는 곳이라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인도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는 보통 작은 마을에 들어가 한 달씩 지내곤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얼굴을 익힌 동네 사람들이 있다. 인도는 혼자 여행하는 이들에게 친근하며 다정하여 외로움을 타는 여행자들에게 좋은 곳이지만 가끔은 혼자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고 싶다.
그럴 때 내가 혼자 조용히 가는 식당이 있다.

그 이름은 Ayur pak.



나는 이 식당 근처에 머물고 있었지만, 이곳을 전혀 모른 채로 스쳐 지났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길 안쪽으로 나 있는 예쁜 장식이 그려져 있는 문에는 이름만 쓰여 있었고, 게다가 입구는 골목을 돌아 안쪽의 막다른 길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때는 물감을 뿌리며 인도의 여름을 알리는 '홀리 페스티벌' 바로 전날이었는데, 요가를 마치고 친구와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떠들썩한 음악에 춤을 추는 한 무리를 보게 되었다. 인상 좋은 인도 여인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고, 얼굴과 머리에 붉고 푸른 가루를 한가득 묻힌 체 음악에 몸을 흔들고 있는 여행자들과 인도인들이 있었다. 나는 그때 때마침 인도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느라 한쪽 귀를 틀어막고 통화를 하며 그냥 지나가려 했지만 인도에 처음 온 내  일본 친구는 이들 무리를 보더니 움직이지 않고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지내며 로우 푸드를 만들어 팔고 있던 나의 일본 친구는 히피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곧 무리 안에 들어가 몸을 흔들기 시작했고, 나도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이미 춤의 세계에 빠져 있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홀리 페스티벌을 맞이하여 그날은 장사를 접고는 식당에서 마련한 축제 음식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식당의 주인인 듯한 여인은 인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음식 접시를 받아 드니 안에는 둥근 튀김인 카초리와 병아리콩 카레 그리고 작은 스위트와 인도 홍차 짜이가 정성스레 담겨 있었고, 난 뒤편에 마련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손으로 튀김을 쪼개어 한입 깨물었다.



그 뒤로 친구와 몇 번 이곳을 드나들게 되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던 숙소 근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저녁 요가를 마친 후에 간단히 저녁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일본의 돗토리현의 산자락에 살고 있는 내 일본 친구는 이곳에서 만드는 자연의 음식인 아유르베다 음식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음식으로 몸을 치료한다는 아유르베다 음식이라는 이름답게 메뉴는 건강식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다시 이곳에 와 있다. 비가 내리는 오늘 저녁은 왠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혼자 있고 싶었다.
나무 문을 빼꼼히 열고 조용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건물 겉모습만 봐도 자연 친화적인 건물에 특이한 문양들이 미소를 짓게 하는 곳이다. 정원에는 예쁜 동상이 있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뒤로 야외 테이블이 몇 개가 놓여 있다. 
물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신나는 음악에 춤을 추던 그 식당 주인은 조용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였고 난 정원의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이날은 때마침 비가 몰아치던 날로, 방에서 비가 그치기만 기다리다가 재빨리 탈출한 날이기에 더더욱 조용했고 식당에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메뉴판을 천천히 살펴보고는 "야채 달 (렌틸콩 수프)'을 골랐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마시니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 따스함을 주었다.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가 들렸다.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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