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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Jun 15. 2016

영혼의 휴식이 필요할 때

인도의 북쪽 마을 리시케시에서 머문다.

갠지스강이 새 차 게 흐르는 인도 북쪽의 수행자의 마을, 리시케시.

영혼이 이끄는 것만 같은 이곳으로 무언가에 홀린 듯 매년 이곳을 찾았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국경을 넘어 터덜터덜 흔들거리는 낡디 낡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3일째 되는 날에야 인도의 북쪽 도시 리시케시에 도착하였다. 이쯤 되니 내가 가려던 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버스가 어느 곳엔가 멈추어만 준다면 그저 내리고만 싶었고, 희미한 흙먼지가 가득 쌓인 배낭을 앞으로 껴안고는 길바닥에서 그저 늘어져 버리고 싶었다. 유난히 턱이 높은 버스를 뒤뚱거리며 내려가니 차가운 새벽바람이 느껴졌고, 이제야 다리를 뻗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걸음 한 걸음씩 나아갔다.


 거울을 굳이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먼지가 수북이 쌓였을 헝클어진 머리카락, 눈곱을 양쪽 눈망울에 가득 쥐고는 힘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다리를 내딛으며 걸어갔다. 이제는 오래 쓴 맛이 조금씩 느껴지는 자주색 숄을 몸 전체에 휘감고는 앞으로 무작정 나아갔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주위는 어두웠고 길에는 사나워 보이는 개들이 짖어대고 있었다. 대충 지도를 보고 들어가긴 했지만 어두움에 길을 몰라 방금 문을 연듯한 조그만 가게에 들어가 망고 주스를 사들고는 길을 물었다. 방금 잠을 깬듯한 주인은 그저 검지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켰고, 난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갠지스강이 있을 것만 같은 길 쪽으로 내려갔다.

 인적이 없는 어두운 거리를 10분 정도 걸으니 눈앞에 커다란 다리 아래 갠지스강이 반짝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약간은 출렁출렁 흔들리는 다리에 발을 디디니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 150 미터는 되어 보이는 출렁이는 긴 다리 아래엔 검게 보이는 강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리시케시에 도착한 것이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깨끗한 갠지스강이 흐르는 북쪽의 수행자의 마을.





 숙소에 가방을 던져 놓고 거리를 나서니 길을 쓰는 빗자루 소리와 경쾌한 인도 음악 소리가 흘렀다. 길가에서 김이 나는 뜨거운 홍차를 끓이고 있었고 주위엔 나뭇잎을 무심히 먹고 있는 거대한 소들이 그리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원숭이들이 보였다. 갠지스 강물을 따라 수행자들의 숲이라는 '사두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니 커다란 바위와 모래사장 앞에 깨끗한 회색빛의 강가가 뻗어 있었다.

왠지 이곳에 자주 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산과 강물에서 느껴지는 힘이 나를 다시 이곳으로 이끌 것만 같았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다리 한가운데에서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원숭이들이 다리 위를 날아다니는 인도 수행자의 마을 리시케시의 갠지스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혼자 오래도록 서 있고는 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강바람에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고요히 흐르는 갠지스강을 바라보았고, 물 안에서 열심히 뛰어노는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저먼 베이커리의 소년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였고, 커다란 덩치의 소들을 비켜가며 그냥 한참 동안을 서 있었다.

 매일 아침 작은 방에 해가 들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저 멀리 보이는 강 안에서 해가 올라오고 있을 때 밖으로 나가면 벌써부터 거리를 걷고 있는 오렌지 색깔의 옷을 입은 수행자들과 만나게 된다. 나도 그들의 곁에서 수행자의 숲을 품고 있는 거대한 갠지스강을 따라 길을 걸었다. 그리고 요가를 하러 요가센터의 작은 문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몸을 풀고 있었다. 검은 머리의 스페인 친구 루이스, 그리고 깡마른 일본 친구 호시 그리고 소년 같은 맑은 눈을 가진 벨기에 친구에게 눈인사를 하고 나도 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리시케시에서의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해가 떠오를 때쯤 수행자의 숲으로 산책을 나갔고, 아침저녁으로 요가를 하였다. 늦은 저녁에 가끔 명상 수업도 있었지만 대개는 강이 보이는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며 요가를 배운 곳은  커다란 망고 나무 아래에 자리 잡은 작은 요가원이었다. 내부가 온통 주황색의 천으로 둘러 싸인 그곳엔 눈빛이 맑은 요가 선생님 '산딥'이 있었고, 초보자가 하기에 적당히 좋은 요가원이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작은 공간에 항상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몸을 풀고 있었다. 요가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제일 끝에 자리를 잡았다. 나의 첫 요가는 무척이나 서투른 것이었다. 거의 모든 운동에 소질이 없던 내게 요가는 역시 어려운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요가 후 여기저기 아픈 몸만큼이나 나의 가슴은 기쁨으로 채워졌다.


 여행을 오래 다녔지만 타고난 성격은 변화하기가 힘이 드는 것인지,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리시케시에서도 요가 시간 바로 직전에 자리를 잡고 요가를 하다가 끝나자마자 바로 빠져나오는 시간을 보냈기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오래도록 혼자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가에서 탐스러운 붉은빛을 자랑하는 커다란 오렌지 비슷한 과일을 파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나중에 알게 된 그 과일은 자몽이었다. )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고는 먹기 좋게 껍질을 칼집을 낸 그 과일을 들고 요가원에 가보았다. 요가 선생님은 홀로 책을 읽고 계셨고 그날 자몽을 나눠 먹으며 선생님과 조금 친해졌다. 요가 선생님과 친해지니 요가 시간이 더욱 편하게 느껴졌고 하나 둘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모두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요가를 하였다. 사실 이곳에서 그것 외엔 딱히 다른 할 일이 없기도 하였다. 오렌지 빛의 옷을 입는 요가 선생님 산딥은 우리를 항상 빛이 나는 미소로 맞이하여 주었다.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초보자 수준이었지만, 요가에 서투른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요가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함께 하고, 차를 같이 마시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나는 요가 선생님 산딥의 자칭 수제자가 되었다. 요가는 처음이라 무척 긴장을 하며 수업을 들었었지만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매일 요가원 입구 앞에서 수련자들이 잘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안내를 해 주었다. 누군가가 시범을 보여야 할 때면 앞으로 나가서 요가 동작을  해 보였고 학생이 너무 적은 수업엔 선생님의 요청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런 나를 좋게 보았는지 함께 요가를 하는 친구들과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 모두의 가슴은 뜨거웠고 열심히 요가를 한 덕분에 모두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길가 오른편에는 깨끗한 갠지스강이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강 바로 옆에서 요가 후에 뜨거운 홍차를 앞에 두고 앞으로 벌어질 우리들 각자의 삶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세계를 떠돌며 음악을 배우던 장기 여행자인 일본 친구 호시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 대한 불확실한 마음을 이야기하였고,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거리 공연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스페인 친구 루이스는 요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현재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또 다른 벨기에 친구 콜린은 5년 만에 다시 온 인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항상 기쁨의 에너지 안에서 살고 있는 친구였는데, 요가를 배우기 위해 온 장기 여행자였다.( 그는 벨기에에서 환경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당시 인도, 태국 등지에서 체류하며 틈틈이 여행 인솔과 여행 코디네이터를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을 만났던 그 시점 인도를 빠져나가 중동, 이집트 등을 통해서 남미로 넘어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궁리 중이었다. 물론 친구들의 커다란 응원 아래 내가 만들었던 그 계획을 실행하였고, 현재는 몇 개의 대륙을 넘나들며 여행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오래도록 리시케시에서 머물렀지만 항상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정말 운이 좋아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2010년 그해 봄에 만났던 우리들은 아마 운이 좋았었나 보다.

 우리는 그해 새로운 삶을 꿈꾸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려 갠지스강으로 모여들었고, 요가와 갠지스강이 우리들을 한 곳에서 만나게 해주었다. 같이 지냈던 그 두 달 동안 서로에게 의지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이후 모두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여 지금은 전과는 약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 후로도  나는 꽤 오래 동안 영혼의 휴식이 필요할 때면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쉼 없는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조금 익숙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며 지내고 싶을 때가 있다. 만일 그런 장소가 하나쯤 정해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나에게 그런 곳이 인도의 북쪽 마을 리시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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