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6코스는 울진군 근남면 수산교에서 시작해 왕피천하구 오래된 소나무숲에 조성된 울진 엑스포공원을 지나 낮은 산길을 따라 연호공원으로 간다. 울진군 내륙의 길을 걸어 연지리에 이르면 다시 죽변항까지 바닷길을 걷게 되는 코스이다. 비가 오면 물이 넘치는 하천은 심술을 부리고, 바다는 파도로 마을을 위협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하천과 바다를 달랜다. 하천과 바다에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일상이 문화가 되는 곳이다.
물이 변화를 가져오는 곳(수산교-울진 엑스포공원-연호공원)
왕피천을 건넌다. 실직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안일왕(安逸王)이 피한 곳과 연을 맺어 지어진 이름. 이름만 보면 태평성대를 누렸어야 할 왕은 종묘의 문을 닫는 마지막 왕의 비애를 겪어야 했다. 이제 울진은 왕피천보다는 송이버섯, 대게, 소나무숲이 더 유명한 곳이 되어버렸다. 시간의 저울은 그렇게 세상 일의 경중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한다. 수산교의 북단에는 왕피천을 내려다보고 있는 늙은 굴참나무 한 그루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96호로 300살의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지도 벌써 60년이 되어간다. 길 건너로 보이는 엑스포공원의 소나무숲은 아직 건강한데 저들도 언제 시간의 덫에 걸려들지 모를 일이다. 왕피천하구는 2019년 가을의 비로 하천 안쪽의 시설이 많이 훼손되었었다. 하천의 안쪽을 '제외지'라고 하는데 이곳에 설치해 놓은 보도블록과 포장도로들이 물에 떠내려 갔다. 하천 내에 자라던 달뿌리풀을 비롯한 식생들도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식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폼페이 화산에 희생을 당한 사람들처럼 수마(水魔)에 휩쓸린 것이다. 그렇다고 물을 원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천의 안쪽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물의 영역이다. 이곳에 들어가 고정시설물들을 설치하고, 물길을 마음대로 조정한 것을 고려해 물이 흐를 수는 없는 일이다. 재미있는 일은 왕피천하구에 자연을 고려해 조성해 놓은 습지는 거의 피해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산교 북단에 있는 수산리 굴참나무와 울진 엑스포공원의 소나무숲
왕피천 하구 보의 홍수 전과 홍수 뒤의 모습. 식생이 대부분 떠내려 가고 많은 양의 모래가 퇴적되어 있다.
홍수에 의해 파괴된 왕피천의 시설들
왕피천하구를 지나 염전해변에는 홍수 이후 떠내려온 바다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쓰레기의 대부분이 나무쓰레기여서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바닷물에 절여진 나무들은 소금에 절였으니 단단하고 벌레도 안 먹을 것 같은데 막상 나무를 가져다 손질해 보면 안쪽이 썩거나 상해 목재나, 조각용으로 이용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도 외국의 경우 바다쓰레기로 나오는 목재를 잘 선별해 가구를 만들어 판매하는 곳들도 있으니 우리도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여러 사람이 활용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울진 남대천의 은어 다리를 건너 산길을 지나 연호공원에 도착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랄까 연호공원은 한창 정비 공사 중이어서 바깥쪽에 철재 울타리를 쳐놓아 내부를 들여다볼 수가 없다. 연호공원은 2007년 개장했지만 원래 자연 연못이 있던 곳을 정비해 이용률을 높인 것일 뿐, 새롭게 연못을 판 것은 아니다. 연호공원이 있는 마을의 이름이 연지리(蓮池里)인 것을 보면 과거부터 이곳에는 연꽃이 자라는 자연 연못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연못은 보지 못했어도 연못 옆의 낮은 언덕에 있는 연호정과 곧게 잘 뻗은 소나무숲을 볼 수 있는 것을 위로 삼으며 걷는다.
울진 남대천하구에 보행자를 위해 놓은 은어 다리를 건너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엔 산불을 막기 위해 놓아 둔 방화수가 있다
공사로 통행로만 열려 있는 연호공원. 그래도 다행스럽게 연호정을 볼 수 있었다.
눈이 시원해지도록 건강한 연호공원의 소나무숲
변하는 세상에서 지키고 있는 것(연호공원-봉평 해변-죽변항 입구)
연호공원을 떠나 전원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는 연지리의 언덕을 넘어가면 바다가 나온다. 울진에서의 바다 접근법은 언덕이나 산을 넘어서면 파도소리와 바다의 전경이 함께 다가오는 방식이다. 그렇게 마주한 바다는 언제나 싱그럽다. 대나리항으로 가는 길목에 낮은 블록 담에 기와를 얹은 서낭당 앞을 지날 때 짚 뭉치를 태운 것을 보았다. 서낭당 문 앞에는 양쪽으로 세 곳씩 황토를 뿌려 놓고 금줄을 둘렀다. 정월 대보름 때 마을 동제를 지낸 흔적이다. 서낭당 앞에 황토를 뿌리는 것은 이웃마을의 주민이나 부정을 탄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표시하는 것이며, 토양을 통해 정화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짚을 태운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낯설어 마침 이웃에 사시는 박용환 어르신께 물어보니 부정 타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신다. 볏짚을 태운 후 그 위를 지나가면 부정한 것들을 없앨 수 있는 '부정풀이'로 동해안의 동제를 지내는 많은 곳에서 행하고 있다. 그분께 마을의 동제 지내는 이야기, 용왕제 지내는 이야기 등을 들었다. 이분들이 아니면 이제 마을의 동제나 과거의 이야기들은 기록에 남지도 못한 채 사라질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해파랑길과 가능하다면 남파랑길과 서해랑길의 바닷가 마을의 서낭당과 동제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데 나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 조금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어르신의 잔잔한 미소로 배웅을 받으며 헤어졌다. 대나리항 바로 옆에 있는 서낭당에도 같은 방법으로 황토를 뿌려 놓았다. 한 마을이라 동일한 풍습을 이어받아 행하는 듯하다. 이 서낭당의 옆에는 바위가 있고 그 바위를 덮은 눈향나무가 이 서낭당을 지키는 신수인 듯 모양이 범상치 않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바다로 나가는 장비가 현대화되어도, 절대적으로 강한 바다 앞에서 겸손해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짚을 태우고 황토를 뿌려 부정을 타지 않도록 한 연지리 서낭당의 모습
같은 마을의 이 서낭당은 서낭당 옆 기암 위에 자라는 눈향나무의 기품이 주변을 장악하고 있다.
온양리로 넘어가는 바닷가의 출입을 막으려 설치한 철책에 누군가 리본을 달아 두었다. 부부라고 밝힌 리본의 주인공들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금수강산 방방곡곡'이라고 쓰인 글처럼 걷기를 통해 전국을 여행하는 것 같다. 아마도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분들이 아닌가 싶다. 부부가 함께 길을 걷는 것은 스스로 행복한 일이고, 보기에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부부간의 취미나 체력이 맞지 않는다면 쉽게 실행으로 옮기기 어렵다. 이왕 나선 길, 해파랑길뿐만 아니라 남파랑길과 서해랑길도 즐기며 걷기를 바래본다. 단지 길에 리본을 다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길을 걷는 개인들이 리본을 달게 되면 무분별하게 많이 설치되어 미관을 해칠 수 있으며, 혹시 잘못된 길에 표시를 할 경우 다른 사람들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길을 걸으며 나의 소중한 기억을 남기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길을 공식적으로 안내하는 리본과 스티커, 안내판이 있으므로 자제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다. 해파랑길을 공식적으로 관리하는 비영리기관으로 (사)한국의 길과 문화가 있다. 한국의 길과 문화에서는 해파랑길의 노선을 관리하고 있으며, 스탬프와 길에서 만나는 리본과 같은 안내표시도 함께 관리하고 있다. 해파랑길을 걷다가 의문이나 불편이 생기는 이들을 위한 안내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으며, 해파랑길을 완주한 이들에게 완주기념 메달을 수여한다. 그리고 해파랑길 걷기여행자들을 위한 여권을 만들어 판매하고도 있다. 물론 여권 수익은 전부 해파랑길을 위해 재사용되고 있다.
양정항의 제방에 나무로 된 사다리가 제방에 기대어 걸쳐져 있다. 나무 몇 개를 대고 못을 친 견고하지 않은 사다리지만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보잘것없어도 누군가에게는 긴히 도움이 되는 사다리다. 내가 하는 일들이 요 사다리만큼만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가끔은 판단이 어려울 때도 있다. 판단기준이 모호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사람은 다 그런 거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처럼 이러니 저러니 하다가도 결국은 해를 향해 가지를 뻗고 잎을 내는 것이다.
개인이 리본을 여기저기 달기 시작하면 혼란이 생긴다. 해파랑길을 공식적으로 안내하는 리본(가운데)과 스티커(오른쪽)로 만족하자
제방에 설치된 사다리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모자르든 좋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는 삶 나의 모토이자 희망이다.
온양 2리 마을회관 옆에 벽에 깔끔하게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금줄이 새로 쳐진 서낭당을 들러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생각과는 다르게 자물쇠가 심하게 녹이 슬어 있다. 열린 문의 안쪽엔 신위를 넣어 놓은 함이나 벽에 바른 한지 등이 깨끗하다. 문제는 바닥이 모두 무너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관리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방치를 한 것 같기도 한 애매함이다. 그때 백사리의 서낭당의 마을 사람들이 해를 입을까 봐 서낭당을 함부로 보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곳도 다른 곳들은 정성스레 관리를 하지만 바닥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진 것은 그런 터부 때문 아닐까. 바로 옆이 마을회관이라 일손이 없어 방치한 것 같지도 않다. 수리비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겉은 멀쩡해도 속이 썩었다는 말이 왜 떠올랐을까. 분명 지금 하고는 다른 상황인데, 내실이 없는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해 씁쓸하다.
골장항을 걸어 봉평해수욕장의 솔밭에 있는 간이 탁자에 앉아 잠시 쉰다. 여기에서는 봉평신라비 전시관이 코앞이다. 길이 멀지 않다면 잠시 들러보면 좋은 곳이다. 봉평신라비는 법흥왕 11년인 524년에 세워진 비이다. 10행에 399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노인법을 비롯한 울진지역 촌락 이름, 소를 잡아 제사 지내는 의식 등 비를 세울 당시의 귀한 역사적인 상황들이 기록되어 있다. 대게의 조각물만 휑하니 서있는 죽변항 입구의 토양을 새로 쌓아 다진 지역을 지나 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현재시간이 오후 세 시, 잠깐 오늘 일정을 고민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스탬프를 찍는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니 고성에서부터 거꾸로 내려오는 길이라고 한다. 그나 나나 이제 절반 정도 걸은 상태이다. 부산에서는 맞은편에 오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 이만큼 걸을까를 걱정했는데, 이제 상대방을 걱정해 주게 된다. 해파랑길 26코스의 도착지점이자 27코스의 시작점에 있는 스탬프의 그림은 27코스에 있는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이다. 부산으로 향하는 그에게 무사한 여행길이 되길 인사로 전하며 나는 반대쪽으로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