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비라니
길을 가다 누가 부르면 멈추어 뒤를 돌아보게 되고, 약속이 있어 기다릴 때나 시간 때움으로 한 장소를 지킬 때는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별다른 이유가 없을 때 느릿느릿 길을 걷다 보면 가끔씩 걸음을 멈추기도 합니다. 오늘도 골목을 빠져나가 버스정류장으로 가다 잠시 발을 멈추었습니다. 익숙지 않은 목소리가 아저씨 하고 부르기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색함에 주변을 살펴보다 이 친구를 만났습니다. 발치의 약간의 흙이 있는 공간에 강아지와 뒤섞여 있는 털별꽃아재비였습니다. 이름부터 털이 있는 이 풀은 줄기와 잎 뒤면에 빼곡히 자란 털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많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도 이 털을 고려해 털별꽃아재비란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아재비는 아저씨라는 뜻으로, 고모부, 이모부 등 아버지처럼 생긴 다른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아저씨라는 말이 주로 쓰이다 보니 아재비는 아저씨라는 말을 비하하는 말처럼 쓰일 때도 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지을 때 아재비라는 말을 붙일 때는 비슷한 식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나리와 미나리아재비, 맥문동과 맥문아재비, 꿩의다리와 꿩의다리아재비, 등골나물과 등골나물아재비 등의 식물들이 그렇습니다. 이 식물들은 서로 유사한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공통점이 적은 것들도 있습니다. 별꽃아재비는 별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사실 그렇게 닮지는 않았습니다. 별꽃이 작다는 것과 꽃잎이 다섯 장이라는 정도가 닮은 것 같습니다. 별꽃은 한 장의 꽃잎이 두 개로 깊게 갈라지고, 별꽃아재비는 꽃잎의 끝이 세갈레로 얕게 갈라져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헷갈리지 않고 괜찮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젊었을 때에는 꽤 오랫동안 '학생'이라는 명칭을 많이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아저씨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것은 흰머리가 나던 시기와 비슷하게 겹치는 것 같습니다. 털별꽃아재비는 흰색의 빽빽한 털이 야성미가 넘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늙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털별꽃아재비는 남아메리카가 고향인 식물입니다. 사료나 퇴비를 만들기 위해 들여왔는데 원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전국의 길가나 나지, 산림 가장자리의 수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전국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도시의 흙이 있는 빈 공간에 자리를 잡는 식물 중의 하나입니다. 사료나 퇴비 보다야 거리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자유스럽고, 행복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라면 농장보다는 거리를 선택했을 테니까요. 거리의 아저씨들을 봅니다. 오늘도 바삐 움직이는 아저씨들에게서 야생성을 읽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