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난다
네 시, 한 시가 넘어 잠에 들었는데 세 번째 잠이 깼습니다. 이젠 열대야도 물러갔는데, 불쑥 올라오는 갈증을 털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니 정신이 더 또렷해집니다. 억지 잠을 자기 싫어 방으로 가 어둠 속에 앉으니 귀뚜라미도 울지 않는 주변에 잠 못드는 것은 나 혼자 뿐인것 같았습니다.그때 침묵이 안개처럼 내린 방에서 전깃줄이 뻗어 나오듯 다가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냄새였습니다.
냄새의 진원지는 휴지통이었습니다. 아마 얼마 전에 먹고 버린 복숭아씨에 곰팡이가 돋고, 그것이 퍼지면서 점령지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냄새의 뒤쪽에서 단내가 살짝 배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직 심각한 상황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휴지통의 뚜껑을 닫고 방구석으로 밀어 놓았습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은 현재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날, 자고 일어나면 입냄새가 심해지는 건 이를 닦지 않고 자거나 입안이 말라 그런 것 만은 아닙니다. 냄새의 원인이 입이 아닌 몸속의 이상 때문 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상태를 늘 주의깊게 관찰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주의만 기울이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ㄴ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식물입니다.
식물들도 냄새가 납니다. 박하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향이나는 식물도 있고, 누리장나무처럼 누린내가 나는 식물도 있습니다. 식물들의 냄새는 생활습관의 부산물 이라기보다는 천적에 대한 저항일 경우가 많습니다. "나 이렇게 강한 냄새가 나니 건들지 마"라는 것입니다. 산초나무의 향은 모기를 쫓기도합니다. 숲 속을 걷다 모기들이 달려들 때 '간혹 모기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때가 있는데 이때 산초나무 가지를 잘라 몸 주변으로 휘저으면 달려드는 모기들이 현저히 줄어드는걸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초향을 사용하는 모기기피제도 있습니다. 그럼 산초나무는 모든 곤충이 싫어하는 식물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호랑나비의 애벌레는 산초나무의 독특한 향을 즐기는 곤충 중의 한 종입니다. 유충시기에 산초나무 잎을 먹으며 자란 호랑나비는 성충인 나비가 되어서도 어릴 적의 추억을 잊지 못해 알을 낳을 때면 다시 산초나무를 찾아옵니다. 산초향이 강하긴 해도 산초향에 길들여지기만 하면 먹이 경쟁에서 유리해 지기 때문입니다. 또 줄기에 많이 달린 산초나무의 가시는 호랑나비애벌레들을 천적으로부터 지켜주는 훌륭한 경호원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도시의 길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식물 중에도 향이 나는 녀석이 있습니다. 녀석은 햇빛이 강한 도시의 거리에서 가로수 아래에 자리 잡고 사는 녀석입니다. 우리는 가로수 밑이라서 그늘이 시원할 것으로 생각살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도시의 가로수는 자신의 발치조차 그늘로 가리지 못합니다. 그이유는 가로수가 사는 환경 때문입니다. 전깃줄, 간판 등 제한요인이 많은 도시의 거리는 나무가 원래의 수관 모습을 유지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가로수의 발치는 불볕입니다. 뜨거움과 건조함이 극에 달하는 가로수 아래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으로 덮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얇은 이파리와 작은 키로 버티며 살아가는 녀석의 이름은 냄새명아주입니다. 녀석의 고향은 호주여서 호주명아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냄새명아주는 캥거루처럼 강펀치를 지니지도 못했고 코알라처럼 귀여운 구석도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새명아주는 도시에서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이름에도 들어가 있는 냄새가 녀석의 장점이기 때문입니다. 냄새명아주의 냄새는 구리지도, 톡 쏘지도 않지만 이질적입니다.이 낯섦이 곤충이나 새 같은 천적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냄새명아주는 다른 식물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지만 냄새라는 하나의 장점으로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단점으로 여겨졌던 작은 크기는 오히려 영양물질과 수분이 적은 도시의 거리에서 생존하는데 이점으로 작용합니다.
그는 대양을 건너온 먼 타국땅에서 성공한 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의 단점이 사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깨닫고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