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위로가 필요해
일 때문에 지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옳고 그름에 기준으로 평가되지 않거나, 인연의 카르텔을 이용해 묵시적으로 일이 이루어진다던가 할 때면 심각한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너는 방해꾼이라는 노골적인 눈치와 따돌림을 공정해야 할 장소에서 느끼게 되면 '나는 누군가? 내가 왜 이곳에 있는가?' 하는 현타가 찾아옵니다. 그런 날 집으로 가는 길은 한없이 멀기만 합니다. 골목의 이쪽에서 저쪽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거나, 창문 너머로 다투는 목소리가 장독을 깨는 것처럼 크게 들립니다. 무거운 발걸음에 억지 힘을 내 터덜거리며 걷다 골목의 중간쯤 지날 때 어디선가 향긋한 향이 다가옵니다. 그 향기는 4월의 따스한 봄날 햇빛을 등에 지고 연보라로 피는 라일락꽃 향기 일 때도 있고 8월의 여름 땀을 흘리며 걷다 만난 화분에 심은 로즈메리의 향일 때도 있습니다. 격려까지는 아니어도 위로가 필요할 때 식물에서 나는 향은 중요한 위로의 원천이 됩니다.
식물의 향은 꼭 꽃에서만 나는 것은 아닙니다. 산초나무처럼 열매와 잎, 줄기 모든 곳에서 독특한 향이 나는 식물도 있습니다. 쌀국수에 넣어 먹는 고수에서도 특유의 향이 나고 이 향은 음식이나 추억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기분을 전환시켜 줍니다. 그 내용을 조금 더 확대한다면 그것을 위로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풀냄새'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시골길을 걸을 때나, 이른 아침 공원을 산책할 때,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화단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풀냄새를 무엇이라 특정하기가 애매합니다. 여러 식물들이 뒤섞여 나는 냄새가 풀냄새이고, 비가 온 직후나, 햇볕이 쨍쨍한 날 등 기후 조건이나 시간, 상황에 따라 그 냄새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식물들에게서 나는 냄새도 다 다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풀냄새라고 하기 때문에 공식처럼 특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냄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격이 다른 각각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사람냄새는 그 냄새를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람냄새'를 기억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는 관계라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관계가 꼭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좋은 관계만을 맺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요. 저는 그 관계의 일부분을 식물과의 만남에서 풀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풀, 꽃, 열매 하나가 나에게 관계라는 의미로 다가오고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참 바쁩니다. 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힘들기도 한 것이 우리이기도 합니다. 가끔 우리는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빠르게 흘러가던 사물들은 우리가 멈추게 되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붉은 물이 번지는 느낌이 들던 꽃도 자세히 보게 되고, 주홍, 빨강, 노랑 등 다양한 색의 조화를 깨닫게 됩니다.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자신의 세계에서 얼마나 진지한지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는 잠시 멈추어 주변을 살피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흔히 잡초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신분을 뭉뚱그려버려도 아무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작은 풀꽃들이 얼마나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깨닫게도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만남을 당신에게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금 "잠시 멈추어 발밑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