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면, 참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전국에 있는 마을숲을 찾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틈나는 대로 마을숲을 돌아보긴 하지만 10년이 한참 넘는 시간 동안 일상의 많은 부분을 숲을 찾아다니는데 썼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다니면 생활은 어떻게 하냐고 걱정해 주었습니다. 책을 내라고 재촉하거나 기다려 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오늘까지도 책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 지나가듯 "참 쓸모없는 일들을 많이 하시네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나는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거나 돈이 되지 않는 일을 꽤나 오랫동안 쫓아다녔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니 가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을 벌지 못했다는 것과 연관 지으면 더 심한 표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길가 전봇대 아래 한 무리의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가늘고 긴 줄기를 낸 바랭이였습니다. 줄기 아래에는 폭이 좁은 잎이 있고 위쪽에는 종자가 쌀알이 달리듯 촘촘히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 바랭이는 가치 없는 풀입니다. 도시의 도로변에 자리를 잡은 바랭이들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을 꾸려갑니다.
농촌에서 바랭이는 쓸모없는 정도가 아닌 해악을 끼치는 잡초로 평가됩니다. 자라면서 여러 개의 마디가 생기는데 그 마디마다 뿌리를 내어 더욱 견고하게 땅에 활착 하는 바랭이는 제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지만 발아율이 높은 종자는 바랭이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밭에 바랭이가 들어오면 농부들은 호미로 뿌리를 뽑아내고, 자란 바랭이는 낫으로 베어냅니다.
하지만 바랭이가 정말 쓸모없는 잡초에 지나지 않을까요? 땅이 단단히 굳은 묵밭에 개망초나 망초와 함께 빠르게 침입하는 식물이 바랭이입니다. 바랭이가 무리를 이룬 밭은 일 년만 지나면 부드러운 땅으로 바뀌게 됩니다. 바랭이가 땅을 덮어 습기가 증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자신을 바쳐 유기물을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바랭이가 덮인 곳은 다양한 곤충과 작은 동물들에게 좋은 서식처가 되어줍니다. 도로변 밭뚝에 바랭이들이 자라면 그곳에서 방아깨비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거미나 벌처럼 아이들에게 크게 공포심을 주지 않는 메뚜기 종류는 도시의 생태계를 건전하게 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로수 아래나, 도시의 공터에 바랭이, 까마중 같은 식물들이 자라는 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이들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겠지만, 이용도를 높이고 관리를 쉽게 하려면 키가 낮은 바랭이 같은 잡초들이 빽빽하게 자라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의 한복판 공터에서 아이들이 방아깨비나 섬서구메뚜기 같은 곤충을 쉽게 볼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바랭이는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은 식물입니다. 바랭이의 종자가 달린 줄기를 뽑아 종자줄기를 아래로 몰아준다음, 한 번만 묶어주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우산이 됩니다. 어릴 때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은 이 바랭이 줄기를 여러 개 뽑아 조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장난감을 사주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단순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놀이 도구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아이는 어려운 블록을 조립하겠지만 평범한 아이는 단순한 놀이를 하며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행복을 꿈꾸고 꾸준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나 행동하는 일들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열등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바랭이는 가치 없는 잡초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작은 식물에게서 소중한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다시 잘 살펴보면 쓸모 있는 사람들입니다.